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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눈" "물"의 나라.. "여트" 겨울 캠핑(끝)



캠핑장 담당자가 호수가 바라보이는 여트를 원하느냐고 물어왔을때, "물론, 그래준다면 얼마나 고맙겠느냐"고 전화기 너머로 고개를 굽신거렸지만, 막상 여트에 도착하고 보니, 사이프러스 호수는 흰눈으로 덮여있었다. 넘실대는 물은 없었고, 호숫가에 숨구멍들이 한두군데씩 물빛을 보여준다. 


호수 한가운데서는 얼음낚시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올 겨울 날이 춥지 않아서, 그들이 대단히 위험해 보였다. 얼음낚시꾼뿐 아니라, 눈신발(snow shoes)을 신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부루스반도 국립공원은 겨울에도 한파를 녹이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적은 문을 개방하고 있었다. 사방팔방 뚫렸던 여름같지는 않지만, 겨울에는 잠잘수 있는 여트가 있었고, 죠지언베이 트레일을 따라 석굴까지는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보름이던 지난 2월7일에는 Full moon hike라 하여 달밤에 트레일을 걷는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부루스 반도 국립공원이 유명한 것으로 천체관측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둘째날 밤, 화장실 가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그야말로 영롱한 별이 하늘에서 떨어질 듯 촘촘히 박혀있었다. 별을 둘러싸고 있는 별무리들이 조팝꽃처럼 무리지어 피어있고, 흰 면사포를 길게 늘인듯한 별꼬리들이 끝도없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이런 별밤, 달밤에 트레일을 한다면, 아마도 하늘과 수평선이 되어 걷다가, 다음날, 목뼈가 아파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날 막내와 나만 먼저 일어났다. 집밖으로 나와서 한참을 산책하는데, 작은 새가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옆집 2번 여트에는 사람이 들지 아니했는지,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둥근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과, 따뜻한 눈이 참으로 포근해보인다. 



군불때면서, 화로에 밥해먹고,,, 눈 데워서 세수하면서 이런 집에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군불만 꺼지지 않고 지펴줄 누군가가 있다면 한번 생각해볼만 하겠지만... 결국 말 장난뿐이란 걸 가슴깊은 곳에선 이야기한다. 그저 하루이틀. 길어야 일주일 체험하는 것으로, 두손 두발 들게 될 것이 뻔하다. 


다시 돌아왔지만, 아직도 다른 캠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잠시동안 책을 읽고, 막내는 제 언니를 스케치한다. 다른 캠퍼들은 그동안의 피로를 먼곳에 와서 풀려는가 보다. 아침겸 점심으로 육식과 채식 구이를 준비했다. 육식팀을 위해선 오겹살을 채식팀을 위해서 아스파라가스와 고구마, 두부 구이로.. 저녁 메뉴를 일찌감치 다 소모했다.


불은 활활 타올라 천막안이 데워지고 있다. 밖의 공기가 그립다. 죠지언베이 트레일을 걷자는 말에, 아마도 트레일 길이 막혀있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그저 농담처럼 한 말이었는데, 나는 화들짝 놀란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막혔더라도 가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캠퍼중에 누군가가 여트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먹었는가 보다. 나는 모두를 채근하여 호기있게 밖으로 나왔다. 



결국 그랬다. 눈길을 걷는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름엔 아주 쉬운 코스였던 것이, 거진 행군에 가까운 체력을 요구했다. 가장 씩씩하게, 온 산을 휘저을듯이 덤벼들었던 나는 첫출발부터 헤맨다. 자꾸 처지는 나를 위해 아이들은 기다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쩌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가볍게 걷는 것인지, 의욕만 앞섰던 허약한 엄마의 기를 누른다.


사이프러스 호수 트레일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여름에 캠핑했던 곳이 나타난다. 물가엔 카누가 세워져있고, 아이들은 가게를 잡는다며 바지걷고 드나들었던 호숫물은 흰눈으로 완벽하게 포장되어 있다.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이 간간이 만나 인사를 교환한다. 날은 아주 쾌청했다. 사이프로스 트레일을 가다가 세군데의 트레일이 만나는 지점에 이른다. 가장 안전하면서, 평이한 죠지언베이 트레일을 선택한다. 다른쪽으론 사람들의 발길도 드물다. 원래 죠지언베이 트레일은 평상시에 1시간이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런데 눈길을 걸으니, 거의 배 이상의 시간과 힘이 들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왔다. 눈이 그나마 많이 오지 않아서 걷을만 했을지 모른다. 겨울 날씨의 산행은 언제나 같은 조건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올랐던 토요일, 하늘은 시퍼렇게 열려있었다. 금요일밤의 눈은 어느새 먼데로 마실을 간 것 같았다.



물이 거기 있었다. 시퍼런 먼데 물과, 시푸른 가까운데 물이 죠지언베이 호수의 물색을 two톤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눈과 얼음은 죠지언베이 물까지 얼리지는 못하고, 바위위에 엉겨붙었다. 여름이면 타올을 깔고 엎드려있던 넓적한 바위위에는 악어이빨깥은 고드름들이 달려있고, 가까이 오면 확 물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위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얘들아, 얘들아, 조심해라" 소리가 입에서 연방 나왔다. 좋은 풍경 구경은 구경이고, 그만큼 목숨에 대한 애착은 차올랐다.



인어석굴(grotto) 근방까지 갔지만, 나는 내려서지는 않았다. 석굴속의 물을 확인해보고 싶기는 했지만, 들쑥날쑥한 바위를 딛고 설 자신이 없었다. 큰애는 석굴의 입구를 확인한다고 내려간다. 혹여 그 구멍에 빠질까봐, 큰소리로 불러제킨다. "얘야, 얘야, 얘야...."하고.


숨이 찰만큼 걸었다. 그러다가 눈과 숲에서 물을 만났다. 세상에 "물"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고 서운할까? 물에서 마음에 쉼을 얻는다. 나뭇가지에 걸리고, 돌에 부딪치고, 산이 턱 막아서는 마음이 물을 만나야 비로소 풀어진다.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했다. 여전히 아이들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큰애는 아이들과 엄마아빠 사이에서 언제나 잠시 서서 우리를 기다려준다. 그애는 기다리면서 소리를 듣는다 했다. 새소리도 들리고, 어떤땐 낯선 소리들 때문에 귀가 아프게 느껴진다고도 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물었지만 제대로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내가 해석하기로, 소리의 질적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는 미처 쉴 사이가 없다. 언제나 앞서가는 아이들을 뒤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걷는자에겐 쉼이 있다는 것을 피부적으로 느낀다.


한 4시간 하이킹 하였을까? 우리들은 아무도 손목시계를 차지 않아서, 캠핑 내내 시간을 모르고 살았다. 몇시에 일어났는지, 몇시간 걸었는지, 밥을 먹을 때가 됐는지, 모두 대략 "인간시계"가 알려주는 대로 했다. 


그날밤, 나는 막내의 마사지를 받았다. 남편이 해주면 언제나 너무 아파서, 비명지르면서 끝내곤 하는데, 막내의 안마는 그야말로, "초코렛맛"이었다. 발 맛사지와 어깨 주무르기 등으로 나의 혼을 빼놓아서, "돈"을 주겠다고 했다. 지갑을 찾는데, "돈이 궁한" 대학생 딸들의 눈이 지갑을 쫓아다닌다. 그래서 "돈" 선물은 "언니"들이 없어진 다음에 하기로 하자 하였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는 밤, 아이들은 사진기 놀이에 열중하기도 하고, 요가 포즈, 체조등으로 온 방안에 더운 입김을 훅훅 불어넣었다. 여트에 쌓였던 눈은 캠퍼들의 호흡과, 굴뚝의 연기 때문에 지면으로 퍽퍽 떨어져내린다. 그날밤도 여전히 폭풍우같은 바람소리는 여트를 에워싸고, 사납게 부르짖었다.


둘째는 모두가 잠든 이후에 시험공부한다고, 밧데리 랜턴을 켜놓고 식탁에 앉는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도, 즐겁게 놀고,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몇자 들여다본다고 앉아있는 그애를 보니, 옛 생각이 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데, 자매들과 한방을 사용했던 나의 자취시절. 모두가 잠든 시간에 공부하느라, 남들이 놀때 잠을 자고, 남들이 잘때 공부했던 지난날이. 그때, 공부를 마음놓고 할수 없었던 환경에 짜증이 많이 났었던 것까지. 



그런면에서 둘째는 캠핑이 부담되었을텐데, 따라와준 것을 고마와 해야 하나. 하긴 잘 생각해보면, 그애가 제대로 놀지 못했던 것도 같다. 머리속에 뭔가가 꽉 들어찬 느낌이었겠지.


가장 불편했던 것은 역시나 화장실 가는 것. 한번 행차하려면 잠바와 장화까지 완전무장해야 한다. 밤에는 랜턴까지 들어야 하고. 간이화장실이었지만, 냄새도 나지 않고 쓸만했다. 불 피우는 어려움은 앞에서 말했고, 그런 것들만 빼면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체력이 좀되는 사람들이 가야 한다는 점... 눈신발, 크로스 컨추리 스키등 원한다면 그런 것들을 준비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