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
캐나다로 오면서 나이 계산에 혼란이 생겼다. 즉 한국에서 공인(?)되던 나이보다 많게는 2살 적게 먹는 계산법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진다. 나중에는 이 나라식대로 내 나이도 계산하게 되고, 그것이 이제는 편하다. 나이들면서 1살이라도 덜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나는 한국의 친구들보다 2년은 젊은 나이를 살고 있는 셈이다.
2000년 1월1일에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다면 그애는 몇 살인가?
캐나다식으로 하면 2007년 8월17일이면 7살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7살 8개월이다. 2000년 출생자로 9월생 이하는 6살이며 7살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계산법은 이렇다.
2007-2000=7
2000년 태어난 아이중에 생일이 지났으면 7살, 지나지 않았으면 6살이다.
피부적으로 다가오게 내 나이를 공개해보자.
나는 1962년 4월생
2007-1962=45
생일이 지났으므로 나는 45년 그리고 4개월의 세월을 이세상에서 보냈다.(그것이 캐나다 나이다)
한국의 1962년생은 너나 없이 46살일 것이다. (생일이 지나기전 석달간은 나는 44살로 살았으니, 친구들보다 2살이 적었다.
3년전 여름 한국에 갔었다. 그곳에서 이종사촌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화제에 한국친척들의 캐나다 방문이야기가 올랐다. 나는 그때 엄마의 8순 생일에 사촌과 이모(엄마의 여동생)가 와준다면 얼마나 엄마가 좋아하시겠느냐, 그때를 맞춰서 한번 오라고 맞장구를 쳤다.
계를 든다, 어쩐다 즐거운 이야기가 오고갔는데, 그때 엄마의 80세 생일은 2008년 5월이니, 그때까지 열심히 모으면 캐나다에 올수 있지 않겠느냐고 초대의 말을 던졌다. (엄마는 1928년 음력4월생)
그리곤 철석같이 엄마의 8순 잔치는 2008년이라 믿고 있었다.
엄마의 79살 생신이 가까와오면서 한국식으로 하면 올해가 엄마의 80세 생일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오래 산 사람들도 회갑, 7순, 8순은 다시 한국식으로 돌아가서 기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까지. 1년간의 차이를 작은 문제로 생각했고, 우리는 캐나다에 살고있으니, 이식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밖에도 엄마의 8순이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더욱 많기도 했다. 작년에 한국서 언니 오빠가 방문했는데, 엄마의 8순이라고 올해 또 올수는 없는 일이고, 선교차 떠나있는 동생가족이 내년이면 캐나다로 복귀하는데, 그 동생이 돌아온 다음에, 그리고 미국에 있는 가족들도 엄마 생일에 맞춰 오려면 여러달 전부터 계획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캐나다식으로 하면 엄마 8순이 내년인데 한국식으로 하면 올핸가봐. 여러 이유가 있어서 내년으로 생각하는데, 엄마는 어때.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캐나다식도 괜찮어. 라고 내가 들은 것 같다. 아니면, “난 상관없다”만 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일같은 것 차리지 마라. 나는 받아먹을 것 다 받아먹었다.” 그런 말씀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편하게 올해 엄마의 생일은 79살 생일로 하자고.
그런데 그 생일날 엄마를 조금 서운하게 해드렸다.
아니 글쎄, 엄마에게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퇴짜맞았고, 엄마를 만나러 토론토에 가겠다는 내게 오면 “도망갈거라”면서 극구 말리시더란 말이다.
그러니까, 보통 생일 기념을 하려는 우리에 비해서, 무언가 대단한 생일치레를 받고싶으셨던 엄마의 속욕망이 부딪친 것인지 모른다. 통 크신 엄마께서 시시한 제안들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하여간 찾아가 뵙지도 않고 생일을 보냈다. 다른 자식들 이야기는 그것대로 여러 사연들이 있다.
생일이 지나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부터 오는 기운이 심상치않다. 어쩌면, “단단히 틀어지셨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께 발병할 생각을 하고 토론토에 내려갔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한 자식들이지만, 엄마의 8순까지 그냥 넘겨버릴 그 정도는 아니다. 올해는 좀 급하다. 여러 사람 모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이르지 않다. 엄마도 내년 80살 생일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해서 올해는 좀 무심하게 넘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의 실망이 어느정도 였는지, 특별히 그런 면에 둔감한 내가 파악해 내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80생일을 거부하시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나저나, 1년을 벌어둔 엄마의 8순잔치...
그때까지 건강하셔서, 긴 세월 동안 맘에 담아두었던, 어머니께서 보기를 원하시는 모든 이들이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부터 초대장을 준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