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속으로

삼국지의 재미가 그곳에 있었다... 형제(전3권)

mindylee 2008. 1. 29. 04:03

삼국지 보다 재미있는 소설이 있을까?

삼국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쳤던 초등학교때의 기억이 종종 난다.

 

중국사람이 지어서일까?
위화가 지은 형제(전3권)를 읽으면서 "삼국지" 생각이 났다. 말발굽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광활한 대륙의 소설 "삼국지"와는 확연히 다른 소설이지만, 그 옛날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으려고 몸을 구부리고 읽었던 삼국지의 재미가 그곳에 있었다.

 

소설에서 리얼리티를 찾아내려고 하는 나의 오래된 습성같은 것도 잃어버리고, 빠른 열차를 탄듯, 열차밖의 풍경에 빠져들어가게 만든 위화 소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 그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중국사람과 한국사람은 생긴 것도 비슷하고, 옆나라에서 수없이 부딪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펼쳐지는 "징한" 상황들을 문화적 공감대가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아니 그건 나의 편견일 수 있다. 23개국으로 번역출간된다는 보도를 보니, 동서고금, 보편타당한 것들에 대한 이해는 공유되는 것이 맞는가 보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야기는 중국의 간극을 다뤘다. 역사적인 간극과 현실적인 간극.

 

역사적이란 문화혁명이 가져다준 사회와 자본주의가 들어온 이후의 삶의 모습이고, 현실적이란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두 세계의 다름을 말한다.

 

간극은 극단과 다름이 아니다. 한쪽은 너무 잘살고, 한쪽은 너무 못살고, 한쪽은 너무 악하고 한쪽은 너무 착하고, 한쪽은 너무 부하며, 한쪽은 너무 가난한...

 

형제의 삶을 통해 양 극단을 보여준다. 전자를 대표하는 이는 이광두이고 후자는 송강이다. 그들의 삶은 그 뿌리부터 달랐다. 태어난 근본부터, 살아감의 방법과 삶의 마지막까지, 그들은 엄마 아빠가 다른 의붓형제이다.

 

이광두와 송강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두 극단의 중간에 있는 이들이다. 지남철을 따라 모여드는 철부스러기들처럼 나중에는 모두 이광두쪽으로 치우쳐 몰리긴 해도, 그 양극단에 사람들이 편만해 있다.

 

광활한 중국대륙에는 이 극단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위화는 말한다. 북경의 아이가 어린이날 선물로 장난감 비행기가 아닌, 진짜 비행기를 기대하며, 서북쪽의 여자아이는 흰 운동화 한켤레를 선물로 원한단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가 싶다. 개구리들에게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위화가 발벗고 나선 것인지.

 

우물안 개구리가 볼때는 위화의 이야기가 "과장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닐 수 있다. 이 세상의 불균형의 정도가 그 정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렵게 끄집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걸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수용해야 하나 싶은데.

 

"이광두전"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이 소설은 이광두가 몰고 다니는 "돈"과 "여자"를 쫓아다니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거짓말처럼 돈을 만들어내는 이광두를 따라가면서 침을 흘리다보면, 내게서도 "돈" 냄새가 날 것 같다. 게다가 그는 의리까지 있다. 못살때 자신을 도와준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낭만파 자본주의자다.

 

꼬마때부터 전봇대와 거시기를 하던 이광두는 사랑에 버림받고는 섹스왕으로 아무 여자든지, 잠을 잔다. 결국엔 첫사랑이었던 임홍(형인 송강의 부인)과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는데, 이때 찬물을 붓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 형 송강의 자살 소식.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광두의 형에 대한 진심은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의기소침하고 무능력자가 된 송강은 몇푼을 벌기위해 사기꾼과 외지를 떠돌다가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고. 그 둘 사이에 있는 예쁜 여자 임홍은 두 남자를 겪고 나중에는 사창가의 대모가 된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몇 장을 할애하여 다룬 "전국처녀미인대회" 는 뱃살을 틀켜쥐게 만든다. 순수한 아가씨를 고르기 위해 개최한 미인대회에 진정한 처녀는 한명도 없고, 모두 처녀막 재생수술이나, 인공처녀막을 끼워넣은 가짜처녀들이었다는 것이나, 그 미인들을 보기위해 뙤약볕에 장사진을 선 주민들이나, 선발될 아가씨들과 속궁합을 맞춰보느라 얼굴이 해쓱해진 심사위원이나, 그 대회로 말미암아 돈도 벌고, 처녀와 밤을 보내보려는 이광두나 모두가 반쯤은 얼이 빠진 그런 상태.

 

미련하게 제 할일만 하면서 부인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송강은 사기꾼을 만나, 각종 가짜약품을 팔면서 돈을 모으는데 나중에는 바르면 가슴이 커진다는 유방크림까지 판매하게 된다. 판매를 원활하게 하게 위해 제가슴까지 성형할 정도로 미련을 떨게 된다.

 

그는 결국 폐병에, 성형복원 후유증도 가지고 임홍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임홍이 이광두와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둘의 사이를 편안하게 할 목적으로 자신은 죽음을 선택한다. 일말의 원한도 없이.

 

과장이다. 위화가 양극단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이광두에게도 송강에게도 과장을 입혔다. 그 "과장"에 빠져서 웃다보면 슬프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주민들과 독자들은 과장이 아니다. "돈"과 "섹스" 그것이 주는 쾌락에 목말라하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다.

 

위화는 어떤 인터뷰에서 중국청년들이 이광두를 가장 따르고 싶어하는 인물로 뽑고 있다고 말했다. 연애할 줄은 모르지만 천명 이상의 여자와 잠자리를 한 그리고 그 모든 여자를 녹인 초특급 부자가 그들의 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아니, 사실 누구도 이광두를 미워하긴 힘들다. 그의 캐릭터가 그렇다. 이광두는 송강의 자살소식후 "발기힘"이 무너져 더이상 여자를 찾지 않게 되고 그 많은 돈으로 우주유람을 계획한다. 미화 2천만 달러를 들이면서. 그리고 그 우주유람에서 형 송강을 추모하려고 한다. 그러니 그가 중국청년들의 우상이 된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위화는 간극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듯싶다. 도덕과 진실이 뒷골목에 팽개쳐져있는 중국현실을 잘 집어내기도 했고 말이다. 한국의 드라마가 중국전역에서 유행하는 것도 소설을 통해서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어쩐지 중국이 무섭다. 거짓이 판치는, 진실은 개뼉다귀가 되어버린 불균형의 사회, 중국이 무섭다. 중국뿐이 아니라고?... 

 

 "눈 가리고 아웅"일지라도,  나는 우물속 개구리로 그냥 남고싶다.

 

저자소개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 성(浙江省)의 항저우(抗州)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은 위화는 5년 동안 치과의사로 활동하다 환멸을 느낀 뒤 소설가로 전업했다. 위화는 카프카,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에서 스토리텔링의 새로움을 발견하였고, 이후 《산해경》, 《수신기》 속의 중국 전통서사를 다시 만나면서 동아시아 전통 서사를 재발견하였다. 1983년 첫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로 등단한 뒤 1987년 《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 등을 발표하였다. 1992년 《살아간다는 것》과 1996년 《허삼관 매혈기》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 중국 3세대 작가의 대표주자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침묵을 지키던 위화는 2005년 《형제》를 출간하며 '당대 중국 최고의 소설가'로 자리매김하였다. 《형제》는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 프랑스 등 세계 23개국에서 2007~2008년까지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옮긴이 
최용만
1967년 생. 1990년 한림대학교 중국학과 졸업. 2000년 북경대학교 중문과 대학원에서 당대문학(當代文學)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옮긴 책으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이 있고,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근간)를 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