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수술하셨다더니 어떠세요"
"라식수술하셨다더니 어떠세요"
적당히 대답할 말을 고르느라 숨을 한번 쉰다.
"어떤 것도 완벽한 것은 없는 것 같애요. 안경도 조금 불편하고, 렌즈도 그렇고. 그렇다고 라식이 그 모든 걸 보완해주는 건 아니에요."
"좋다, 나쁘다"는 선명한 대답을 원했던 질문자에게는 좀 석연치않은 대답이다. 그녀와 시간을 갖고 이야기한다면, 조금 더 그 말에 설명을 보탤 수 있었을 텐데.
라식수술을 한 것은 작년 10월달이었다. 뭇 사람들처럼 "수술"이라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내가 라식을 결정한 것은 약간의 "군중심리"가 들어가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가 라식수술을 한번 해보자는 방향으로 우리 자매들을 몰고갔다. 경제가 다운턴하기 바로 직전이라, 우리들도 그 거품의 와중에 있었는지, 어째 "돈" 쓸 궁리를 대고 있던 것처럼 모두들 똥배를 쭉 내밀고 그 정도의 지출은 감당할수 있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날 그런 회담이 오갔던 장소는 캠핑리조트의 핫탑이었다. 수증기 때문에 김서리는 안경을 연신 닦아내며, 이런 안경없이 핫탑에 앉아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쨋든 그날 회담의 결과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가까운데서 우리들의 결정에 찬성을 표시하면서 금일봉을 주시겠다는 약속도 떨어졌다. 80인생이신 엄마께서 "애프터 서비스" 차원에서 우리 3명에게 1,000달러씩을 보조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큰딸의 김치냉장고 장만을 위해 돈을 모아오셨던 엄마는 그 해 치러졌던 팔순잔치때 다시 돈이 모였다며, 김치냉장고를 사주고도 남는 돈으로 딸들의 "시력교정"에 희사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엄마께서는 10여년전의 교통사고와 최근의 무릎관절 수술로 놀라운 경험을 갖게 되어서 현대의학의 신봉자가 되셔서 딸들의 눈수술에 본인들보다 훨씬 긍정적이셨다.
문제는 "노안"이었다. 젊은이였다면 눈수술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컸을 것 같다. 라식수술은 노안을 개선시키지는 않아서 리딩 글라스는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안경"을 벗고자 해서 "큰 돈"을 들이며 수술을 하는데, 책을 읽을때는 리딩글라스가 꼭 필요하디니, 참으로 황당했다.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 신문은 물론이고, 요리할때 "음식조리법"이나, 통조림통에 붙은 내용물을 읽기위해 매번 안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니 골치가 아파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모노 라식수술이었다. 한쪽눈은 먼데 것을 보게 만들고 한쪽 눈은 가까운데 것을 보게 맞춰서 수술하는 것. 모노는 두눈의 시력차이가 커서, 우선 렌즈를 착용해서 그런 눈에 적응할 수 있는지, 실험해봐야 한다. 눈과 두뇌가 적극 협조해줘야 할수 있다. 언니는 "어질어질하다"며 실험과정에서 포기하고, 나만 모노를 선택하게 되었다.
수술후에는 안경을 벗은 것만으로도 황감하여 모든 것이 좋게만 생각되었다. 그리고 눈은 "계속 안정되고 좋아질 것"이라는 의사들의 말도 있어서 안심했다. 한 6개월 정도 지나면 어느정도 시력이 고정되는데, 텔레비전을 볼때나 컴퓨터를 대할때 화면이 썩 잘보이는 것같지 않다. 검안의는 먼데를 보는 눈이 자신들이 약속했던 것보다 약하게 나왔단다. 그러면서 다른 렌즈를 끼워주면서 만약에 다시 수술을 받는다면 "이정도일 것"이라데 정말 훨씬 잘 보였다. 그러면서 "사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더 좋은 눈을 원한다면 재수술해줄 수 있다"고 제안을 해왔다. 물론 수술비는 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지난 8월 재수술을 받았다. 처음 눈검사를 했을때 각막이 얇은 편이지만 수술은 문제없고 한번 더 수술할 정도는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두번 수술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재수술하기전에 수술후 부작용인지 왼쪽눈이 자주 충혈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매월 한번쯤 일주일 정도 충혈되었다가 없어지곤 했는데, 그를 위해서 안약을 처방받곤 했다. 눈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있지않던 현상이어서 여러 사람의 걱정을 사곤 했다. 어쨋든 재수술을 받았고, 첫번보다는 먼데 보는 것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매월 나타나던 충혈현상은 지난날 한번 나타났다가 없어졌다.
언니는 내가 두 눈의 시력이 달라서 어떻게 보면, 초첨잃은 눈처럼 보인다면서 "책읽기용 눈"을 "재수술"하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물론 두 눈의 시력차가 많아서 책을 읽을때도, 먼데 볼때도 두눈이 서로를 방해해서, 깨끗하지 않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검안의는 조심스럽게 "같은 수술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밤운전할때나, 공연장등에서 잘 보이게 안경을 맞춰쓰는 이가 있다"며 컴퓨터 앞으로 나를 데려다놓더니, 이 렌즈를 한번 써보라고 권한다. 한쪽 눈(왼쪽)은 빈글라스에다가 다른쪽만 시력을 넣어서 교정한 것이었는데, 정말 훨씬 잘 보였다.
마치, 예전에 수술하면 이렇게 된다면서 씌워줬을때 "온세상이 시원하게 보였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90% 정도는 안경이 필요없을테고, 불편할때만 착용하면 된다"면서 "시력교정서"를 작성해주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내게 질문한 그녀에게 들려줘야 했을 내용들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냥 사는데는 불편없다"는 그런 것. 그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 재수술할수는 없고, 안경을 착용해야 하는데, 안경벗자고 했던 수술에 다시 안경을 걸친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용납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눈이란 것도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때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서 글자 크기를 12포인트로 올리고 쓰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컴퓨터가 아니라 컴퓨터와 의자 사이가 좀 멀어서 그런가 보다. 글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눈이 적응하여 어느정도 불편없이 보인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재수술이나, 안경을 맞춰쓰는 방법을 택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자를 약간 당기고, 집중을 하는 방향으로 개선점을 찾는다.
둘째딸에게 위와 같은 눈의 현실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랬더니, 뭔 까닭으로 그렇게 긴 시간동안 설명하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뭔가에 완벽을 추구하는 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를 그애게게 알려주기 위해서 사실 의도적으로 "눈"이야기를 했는데 들통났다. 그애가 배워야 할 교훈이 그속에 있어선데...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