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그리고 우리

괜찮은 만남들.. 세엣,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mindylee 2010. 1. 9. 11:38

 

나이아가라 호텔에서 화투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상묵 선생님이었다. 특유의 억양으로 이 추운데 왜 나이아가라에 있느냐, 가게로 전화했더니 그곳에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동생네 가족들과 워터팍이 유명하대서 아이들 데리고 왔노라고 답했고, 그 다음날 시간이 있으면 점심때쯤 오라는 말씀에,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를 생각을 하던 중이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분은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을 수도 있지만, 어쨋든 점심시간쯤 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화투치는 소란한 틈에 받은 전화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었는지, 약간 싱숭생숭하기는 했다.

 

그 다음날, 나이아가라 폭포 가까운데 있는 포도밭과 포도주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 마을에 들려 아이스와인을 사자는 내 제안에 마뜩짢아 하는 남편,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지, 그쪽으로 차를 뺐지만, 포도밭은 모두 비어버렸고, 포도 냄새 하나 나지않는 길을 달려 포도주 공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갈길이 바쁜데 나의 무모함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타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나보다는 표정이 한결 편한 남편의 옆얼굴을 보며, 거의 포기하고 일반 가게로 가자고 할 즈음, 대궁전같이 생긴 포도주 아울렛을 만나게 됐다.

 

 호텔같아서 처음에 그냥 지나친 그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스 와인을 구입했다. 겨울이었지만, 포도 생산과정과 포도의 종류등에 대해서 투어할 수도 있는 그런 설비를 갖춘 곳이었다. 포도가 나는 시즌에는 포도밭까지 견학할 수 있는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아이스 와인은 포도가 아이스가 될때까지 기다려 포도주를 만든, 고급품으로 일반 포도주보다 몇배 비싸다. 맛은 달콤해서, 그저 기분내는 데 좋고, 특별히 몸에 더 좋은 지 그런 것은 공부를 해봐야 알것이다..(사진은 아이스와인 구입을 마치고..)

 

어쨋든 그렇게 구입한 아이스와인을 들고 이상묵 선생님네를 찾았다.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자, 예외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은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으나, 모든 것이 네개씩이었다. 냅킨, , 숟가락등.. 이정준 선생님은 아이고 어쩌나!!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보니, 초대자는 나와 남편, 두명이었고, 아이들 세명은 불청객이었던 것이다.

 

전날의 전화대화에 문제가 있었다. 이상묵 선생님은 나와의 전화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고,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다는 말에, 아이들 동행에 대해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내 마음대로 읽어버리고, 내가 전할 말도 그가 알아듣기를 원하는 대강주의, 세심하게 따지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확실하다.

 

난색을 표시한 이유를 조금 후에 더 자세히 알게 됐다.

 

식탁에 어떤 반찬도 없고, 부엌에도 눈에 보이는 차려진 음식이 없는데, 이정준 선생님은 일단 시작하자고 하셨다. 무엇을 먹으라는 말인지. 우리들이 자리에 앉자, 함께 기도를 해주신다.

 

음식은 한꺼번에 차려놓고 먹는 전통적인 한식이 아니었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처음에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새우 두마리, 아스파라가스, 치즈가 들어간 방울 토마토, 조개류(이름이 생각안난다), 약간의 야채 이 접시는 4접시가 6접시로 나뉜 것이다.

 

이정준 선생님 당신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선언하셨다. 4접시가 7접시가 되는 것보다는, 6접시가 되는 것이 보다 쉬었을 것이다.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 일이다.

 

 

 

 

 

이렇게 시작된 음식대접은 연이어서 우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동파육이라고 하셨다. 중국의 소동파가 즐겨먹어서 동파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돼지고기 요리였다.

 

이틀 동안 익히고, 재워놓았던 정성이 들어간 진한 색의 동파육에 신선한 야채와 함께 먹었는데, 참으로 맛이 특이하였다. 우리가 복초이라고 부르는, 아주 작은 배추처럼 생긴 야채와 보라색 양파, 그리고 파 길게 쓴 것에 동파육을 얹어서 먹는다. 동파육이 말하자면 메인 디쉬였다.

 

그리고 함께 나왔던 음식들, 다 기억하지 못하는데 특별히 골벵이와 소면, 가지요리가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요리 재료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가지를 보면서 들었다. 마지막 코스는 밥과 반찬이었다. 숙주나물, 연근 조림, 김치, 그리고 금방 구워나온 조기까지.

 

이정준 선생님은 이 음식은 퓨전식이라 하셨다. 말하자면, 외국식과 한국식이 섞인, 한사람이 계속 서빙하고, 음식을 재료별로 즐기는, 특별한 자리였다. 요즘 들어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첫째, 둘째 두 아이들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옆 사진은 라임이 들어간 물, 음식 사진들은 먹는 도중 큰딸이 촬영해서 이렇게 사진을 얻어쓴다)

 

음식 소개를 하느라, 정작 하고싶은 말은 뒤로 들어갔다.

 

 

이상묵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초대받지 않은 너희들이지만, 너희들은 환영받는 손님들이라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셨다. 너희 나이의 아이들은 원래 부모를 따라다니지 않아서, 엄마 아빠만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부연하셨다. 그리고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얼마나 세심하게 묻는지, 아이들의 마음이 완전히 열려지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은 그의 어떤 것도 약화시키지 못한 것 같다.

 

젊은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따뜻한 눈빛도 여전했다. 20여년전 우리 친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대접하시면서,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는 것이 그리 신기했는데, 그때나 이때나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대화안에 그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탁월하시다.

 

그는 올해 고희의 나이, 70이 된다 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요즘 들어 더욱 빛이 나는 것만 같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것으로 봐서 머리색을 염색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까?

  

너무 열린 마음이어서 간혹 곤란한 일도 겪으신단다. 여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말에 귀기울려주고, 가끔은 낭만적인 대화를 이끄는 그런 신사와의 대화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시인 이상묵씨만한 분은 없을 것 같다. 그걸 오해하는 이들이 없어야 할텐데. 너무 다정한 것도 가끔은 병이 되기도 할것이다.

 

이정준 선생님은 우리의 매치 메이커이시다. 중매장이? ㅎㅎ 그 죄로 이렇게 가끔씩 초대하지 않은 사람의 음식까지 담당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요리가 자꾸 나오니, 음식수가 많은 것 같지?하면서 웃으셨다. 그러면서, 먼저 먹은 막내에게 우리 모두의 식사가 끝나기까지 같이 있어줄 수 있는지 정중히 부탁하기도 하셨다. 우리들의 식탁에서의 특별한 대화는 그분이 기획하고, 준비한 대로 그렇게 잘 진행되어 갔다.

 

이정준 선생님은 그렇게 맑고 쾌활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식탁에서 떠나도록 허락하고 이어진 우리 네명의 한국말 대화는 정말 흥미로운 것이었다. 낭만주의자, 글쓰는 이와 사는 한평생, 위에서 말한 이유로 인기있는 남편을 지켜야 하는 부인으로서의 고충까지 우리는 끝을 보는 대화를 나눴어야 하는데, 세 마리 혹이 있어서 일찍 일어서야 했다.

 

두분은 그저 알고 있는 것만도 우리 어깨를 으쓱이게 만드는 힘이 있으시다. 중매라는 인연이 없었다면, 그분들과 이렇게 가까울 수 있었을까? 정말 인연은 알고도 모를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