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그리고 우리

3시간의 만남

mindylee 2010. 5. 9. 02:43

바람이 몹시 불었다. 봄이 무르익는다 싶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온은 급속히 떨어진 날이었다. 어떤 모임이 아니라, 단 한사람을 만나기 위해 밤늦게 집을 나선 적이 언제 있었든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추구하는 자본원리에 충실히 길들여져,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방법쪽으로 몰아왔다. 그리고 그건 나의 장기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대학 2학년때든가, 여름방학이었는데, 남학생 4명이서 제주 여행계획이 있었는데, 나와 많이 친했던 여자친구 둘도 제주도에 집이 있던 여자친구집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연관되어지지 않은 두 건의 여행계획을 내가 억지로 묶었다. 모두 아는 사람들인데, 왜 따로따로 여행을 가느냐, 함께 하면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여학생쪽에서 달갑지 않게 생각해서 온갖 감언이설로 그들을 설득했다. 결국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사이에 중계를 해주던 나는 그 두 팀을 붙이는 접착제로 갑자기 제주도 여행가방을 꾸려 7명이 여행길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여행은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도 있었고,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으니 딴에는 잘한 짓이었다 싶지만, 그런 식의 거간꾼 성격은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았다. 모임을 주선하면, 그곳에 한두명 더 붙여서, 자꾸 범위를 넓히려는 습성이 발휘되곤 한다. 대부분 성공적이었다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어쨋든 아직도 그런 성향이 농후해서, 누군가를 빼놓고 뭔 일을 도모할때는 죄책감같은 것도 느끼고, 한번쯤 낚시밥을 슬쩍 던져, 그쪽에서 거절을 해주면, 안심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작전을 펴기도 한다.

 

 

 

각설하고, 만남의 최소단위인 둘만의 은밀한 만남은 그동안 아주 멀리가버렸었다. 그런데 지난번의 인순언니와의 만남은 바로 그런 만남에 굶주려왔었던 게 아니었나 할 정도로, 내 마음에 춘풍을 심어줬다.

8시에 만나 11시에 헤어졌으니, 그리고 그동안 둘만을 바라보며 앉아있었으니, 뭐라 말할까, 마음의 먼지를 떨어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인순언니는 토론토에서 20여년을 살았다. 그리고 우리 옆동네로 작년 말 이사왔다. 작은음악회에 관한 글에서 그언니에 대해 약간 묘사했다. 그날 참 신선했다.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캐나다삶에 대해 자신도 생기고, 이민의 참맛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같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 같았다. 인순언니의 말투약간은 꿈꾸는 듯한,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로 말하는 듯한 문학적 냄새가 진했는데, 그 언니와 글쓰기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뒤로 인순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내 블로그의 글을 읽고 있다는, 자신에게는 신간도서가 많은데, 그걸 빌려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인순언니가 시간이 나는 밤 8시경, 내가 차를 달려 킨카든을 찾았다. 이제 매니저를 하기 시작한 가게일에 매달려, 책이나 신문도 읽지 못한 날들이 한참동안 지나갔고, 인터넷에 뜨는 글을 읽기에도 숨이 벅차다면서, 나를 아직 짐조차 다 정리하지 못한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그 언니는 내가 토론토를 떠나있는 사이, 캐나다 문인협회에 회원이 되었고, 그들과의 교류를 맺고 있었다. 본인의 소개를 깊이 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를 통해 등단한 것 같았다.

 

킨카든의 낙조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어, 혹시나 기대하고 갔는데, 그날은 언니의 집 창문으로 지는 해를 구경할 수 있었다. 조명이 잘되지 않아, 약간은 어둠침침해지는 작은방에 있는 책장에는 한국문학의 신간들이 아주 많이 꽂혀있었다.

 

이번에 내가 빌려온 책은 토론토 거주작가 김영수씨의 물구나무 서는 나무들(수필집),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박범신 연작소설 빈방, 전경린 소설 물의 정거장등이다.

 

이제 두권 읽기를 끝냈다.

 

사실 오늘 책상에 앉은 이유는 전경린 소설 물의 정거장 독후감을 쓰려고 했는데, 이 책이 어떻게 내게 들어왔나 사설을 풀다보니, 이렇게 길어졌다.

 

우리는 무슨 이야길 나눴을까?

 

호젓하게 떨어져있는 주택을 보면, 두려움이 앞선다는 그녀는 그런 집에 대한 욕심을 내본 적이 없다 하였다. 보통 여자들이 90%는 집에 욕심을 내서, 여러가지 일들이 발생하는데, 그렇지 않은 여인을 발견한 것도 참 신기했다. 나 또한 그런 "집바람 열풍"을 은연중 퍼뜨린 "죄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열풍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참인데, 마음이 주춤해진다. 책과 오래된 물건등을 빼고는 애착을 갖고 있지 않다는 그녀에게서 살짝 내 마음에 교훈을 새긴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예술적인 사람들의 성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사는 일이 안정되면 그녀는 글쓰는 일에 몰두할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 서막의 이야기를 나눴을뿐이다. 책을 다 읽고 갖다 주는 날, 킨카든 호숫가를 같이 걷고 싶다. 낙조도 찍고, 바람에 셔츠도 펄럭이면서 말이다. 인순언니의 킨카든 정착이 순로롭기를 기대한다. 언니(앞에서는 불러보지 못한 호칭)에게 내가 찍은 네장의 꽃사진을 선물로 드린다. 기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