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제정신이 아닌 곳.. 뉴욕 타임스퀘어의 카운트다운

mindylee 2011. 1. 5. 04:42

바둑판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뉴욕 맨하턴의 길은 숫자로 되어있다.

동쪽 1st Ave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가면서 숫자가 커진다.

7th Ave에 이르면 맨하턴의 중심부에 이르게 된다.

남쪽부터는 1st Street에서 시작된다. 1번가에서 시작되어 32번가쯤 오면 한인 거리를 만난다. 조금 더 가면 42번과 43번 사이에 뉴욕 타임스사의 건물이 있다.

이곳을 타임 스퀘어라고 부른다. 타임 스퀘어는 7번가와 42번가가 만나는 그 부근을 일컫는단다.


거리를 꽉 채운 사람들..


100년 이상된 전통이 있는 카운트다운이 이뤄지는 곳이다. 거대한 크리스탈 볼이 떨어지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세계 관광객이 모여든다 한다. 올해는 나도 그들중의 한명이었다.

 

뉴욕 맨하턴에 가면 이 거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31일은 예외다. 타임 스퀘어안에 발을 디밀었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 수 있다.

 

다시 바둑판을 생각해보자. 7번과 42번이 교차하는 작은 사각공간(스퀘어)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길들이 차도 사람도 들어갈 수 없게 막혀있다. 단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북쪽 59번쯤에 열려진 한곳을 통과해야 한다. 그 길로부터 들어간 사람들로 도로는 천천히 채워지게 된다. 일찍 입성한 사람은 타임 스퀘어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된다.

 

경찰은 일일이 가방을 확인하고 한명씩 들여보낸다. 그리고 한꺼번에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바리케이트를 쳐서 속도를 지체시킨다.

 

7명의 우리 일행이 54번가쯤에 내려 59번까지 올라간 다음에, 간신히 한길을 찾아 내려가는 인파들과 섞이게 된 것이 7시쯤이었을 게다. 한 블록은 보통 걸음으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7시부터 조금씩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만원 지하철같은 도로를 한발자욱씩 움직여 더이상 전진하지 않는 곳에 이르른 시각은 9 30분쯤, 그리고 그곳은 54번가쯤이었다. 5블록을 그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12시까지 기다리려면 2시간 30분이나 남아있었다.

 

타임스퀘어까지는 아직도 멀고멀어, 전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연 알 수 없었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시바 선전광고에서 가끔씩 화면을 바꾸어 보여주는 것뿐. 그나마 한걸음씩 움직일때는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고, 동참하고 있다는 그런 설레임같은 것이 있었지만, 같은 자리에서 벌서듯 있으니, 갈등이 생긴다.

 

급기야 막내는 이렇게 미련한 일이 있느냐하면서 불만을 작을 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의 품에서 잠을 잔다. 그쯤에서 포기하고 옆길로 샜다면 좋았으련만, 끝을 봐야 또다른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모두들 숨을 죽였다.


 

7번가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파티를 하고있던 일행들이 베란다에 나와 우리들을 내려다 본다. 약간의 취기도 있고, 멍청한 인파들을 보면서 희열도 있었을 게다. 별다른 볼것이 없는 우리 구간의 인파들은 그들과 호루라기를 나눠 불고, 초대장을 적어 종이비행기로 날려보내는 그들과 화답하며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


마침내 12시 되기 1분전이다. 사람들은 전광판에 새겨지는 숫자를 보고 따라하기 시작한다. 20, 19,..... 해피 뉴이어!! 그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들, 서로 부둥켜안고 뽀뽀를 한다. 찰나의 기쁨을 위해 여러 시간들을 낭비하고 사는 것 맞다. 어쨋든 최고 번잡스러운 방법으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폭죽이 터뜨려지고 있다. 거대한 크리스탈 공은 언제, 어떻게 떨어졌는지, 먼곳에 있던 우리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5시간의 고생이 끝이 아니었다. 맨하턴은 카운트다운을 함께 한 인파들 때문에 차들의 통행이 제한되어 있었다. 새벽, 택시도 부를 수 없는 낯선 도시에 우리 일행이 남겨진 것이다.

 

54번쯤에서 32번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곳에 기차역이 있다는 것이다. 간이 화장실은 하나도 없었다. 화장실을 개방한 가게들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인이 경영하는 가게에서 신세를 질 수 있었던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도 서브웨이와 혼동하여 몇번의 헛걸음끝에 도착했다. 서브웨이를 타고, 기차로 갈아타면 조금 덜 걸었을 것을, 한번만 타려고 기차역까지 내처 걸었던 것이 좀 잘못된 결정이었기도 했다.

 

가이드가 준 설명서에 의하면 기차도 끊어졌을 시간이었다. 그래도 확인해보자하고 32번가에 있는 Penn 역에 들어섰다. 표 사는 곳에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뉴욕에서 뉴저지에 있는 호텔 근처의 역까지는 1정거장이었다. 그리고 기차는 아직 운행중이었다.

 

뉴욕시티에서 연말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는 젊은이들은 한껏 풀어져있다. 머리는 산발하고, 하이힐을 벗어 손에 든 아가씨부터,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며 악수하자고 하는 극성 젊은이들과,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수작거는 맛이간 청년까지..

 

기차역에서 내려, 택시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그 때가 이미 새벽 3시 가까이 되었었고, 빈 택시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중에 한대가 와서, 타려고 하니, 한명당 10달러씩 내라고 한다. 호텔까지 지척일텐데, 아무리 지쳤어도 일행 70달러를 내고 택시를 탈 순 없었다.

 

가이드가 적어준 한인택시 회사에 전화하니, 차가 없다고 하고, 일반 택시회사와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연결이 됐다 한들, 부르는 게 값인 택시값을 내야 했을 것이다.

 

택시를 기다리는 이중에 같은 호텔 숙박자가 우리 일행 외에 4명이 더 있었다. 그쪽도 호텔측에 전화하고, 우리쪽도 호텔쪽에 전화해서 택시를 보내든지, 셔틀버스를 보내든지 해달라고 부탁했다. 셔틀버스 이용시간은 지났다면서 택시를 보내겠다고 하더니, 여러 사람이 전화해서 그랬는지, 셔틀버스를 보내주었다.

 

이날 같이 들어온 다른 일행중 아주머니 한분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어떻게 지냈느냐는 물음에, 그분은 아침 7시에 타임스퀘어에 가서 14시간을 기다려, 쇼를 보고왔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더욱 대단한 이들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미처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소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모양이다.

 

호텔방에 들어와 보니, 3:33분이다. 결국 숫자에 놀아난 날이다. 2010 12 31 24시를 보내고 2011 1 1 0시를 특별하게 맞는다는 그것 한가지 때문에 이런 미련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가 그날 보았던 것은 새해 축하 모자를 썼던 앞사람의 뒷통수와 그들이 뭐라도 찍기위해 팔을 올려들고 사진기를 누르던 모습들이었다.

 

조금 다른쪽으로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들과 밀착해서 장시간을 같이 보냈다는 것이 기억에 남을까. 둘째는 가장 혐오스러운 도시로 뉴욕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시는 찾아오고 싶지 않은 도시라고도 말한다.

 

그러고보니, 4년전 맨하턴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도 난다. 12 31일의 뉴욕은 제정신이 아닌 것을 벌써 잊었던 게다. 곳곳마다 길을 막아놓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갈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뉴욕 여행 가이드는 너무 자상한 것이 탈이었다. 정규일정은 한인타운에서 저녁식사를 먹고 호텔로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남아있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호텔로 다시 들어오는 법을 알려주었었다. 새벽에 호텔 찾아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아마도 몰랐던 가 싶다.

 

어떤때 여행지에서 용기를 내야할때도 있지만, 이번 타임스퀘어 이벤트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었다. 그 미련함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것을 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