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밤, 교민사회 자체 인력으로 성황리에 치루다
신나는 날이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함"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건 OKBA 2011 여성의 밤이 지난 금요일 저녁 토론토 마캄지역의 힐튼 호텔에서 열렸다.
회원의 자녀들과 기타 몇몇을 빼고는 가장 젊은 회원들이 30대고, 일반 회원들중에서 70대도 보이는 그런 자리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운운하는 문구를 넣으니, 모두가 "내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인가 보다 하긴 했지만, 그랬거나 말거나, "아름다움"이란 단어에 하루 몸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회원들의 권리옹호 단체인 온타리오 한인 실업인협회(OKBA)가 매년 주최하는 여성의 밤에 그간 절반 정도 참여한 것 같다. 그중에서 올해의 행사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들을 보완하고 실질적인 행사의 주인공을 여성참석자들에게 돌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중 가장 컸던 것은 초청가수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가수와 진행자들을 섭외하느라, 경제적인 비용뿐 아니라, 실질적인 행사진행면에서도 큰 도움이 안되었었다. 말하자면, 초청가수가 주가 되고, 여성회원들은 들러리가 되는 그런 행사로 전락했었다. 이번 행사에서 느낀 것이지만, 여성들은 초청가수가 아니었어도 이미 열정적으로 기를 발산할 준비들이 되어있었다.
힐튼 호텔 로비.. 이날 결혼식 사진촬영도 있더라.
이번 초청가수는 캐나다 교포인 선우혜경씨였다. 한국에서 가수생활도 했고, 사회자 경험도 있다했다. 선우혜경씨는 처음부터 참석자들과 한마음임을 강조했다. "여성인 나를 진행자로 세운 것은 여성회원들의 대변자를 하라는 뜻"임을 알겠다고 선포했다. 그녀는 우리를 대신해 그날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했다. 노래도 일품이었고 사회진행도 거칠것이 없었다. 편의점 경영의 일선에 선 한인여성들의 씩씩함이 그녀에게서 나왔다.
또한명의 진행자였던 김민수씨는 뮤지컬배우로 "명성황후"에 출연했다 한다. 그도 선배 여성진행자(선우혜경)에게 살짝살짝 눌리면서도, 여성들에게 웃음을 주기위한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다.
76년 "그리워도 이제는"이란 노래도 가요계에 데뷔한 가수 선우혜경씨.
이제는 돋보기를 써야할 연세였지만, 여전히 카랑카랑하고 아름다운 목청을 소유하고 계셨다.
뮤지컬 배우 김민수씨, 열정적인 노래와 은근하고 재치있는 언변으로 좌중에게 웃음폭탄을 선사한 교민사회 엔터테이너.
뒤에 보이는 오대영 밴드.. 반주만 있어도 아줌마들의 흥을 돋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중 왼쪽 두번째 지영씨는 연주자겸 가수로,
식전에 여러가지 노래로 분위기를 띄웠다.
선우혜경씨와 김민수씨의 공동 사회.. 둘다 교포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회진행이 돋보였다.
사실 캐나다 아줌마들이 춤에 열정적이긴 하다. 올해는 아예 댄스 타임이 있어, 지칠때까지 홀에서 삼삼오오 무리지어서, 혹은 개별적으로 춤을 출수 있었다. 으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나도 누군가에 의해 끌어내어졌다. 그런데, 그전에 나는 어떤 여자를 유심히 보고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온몸으로 리듬을 타고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다. 그녀가 눈을 끈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의 표정에 있었다. 음악에 맞춰, 표정이 악보처럼 변하는데, 그녀의 몸동작과 표정을 홀린 듯 바라봤었다. 무대에 끌려나간 김에 그녀곁에서 흉내내면서 함께 춤을 추는데, 웬걸 춤이 재미있었다.
한참 신이 오르는데, 누군가 그녀를 낚아채간다. 그녀가 다른 무리속으로 들어가자, 어미잃은 병아리처럼 기운이 쭉 빠진다.
마침 그녀가 비어있는 우리 좌석에 합석하게 되어, 그날 나의 기분이 최고조에 올랐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나의 찬사에 "춤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며 내게 코치를 해줬다. 그러나 그 코치를 쉽게 알아들을 내가 아니었고. 그녀에 이끌리어 슬로우 댄스를 추기까지 했다. 뒤로 옆으로 옆으로... 뭐 그러면서.
그녀뿐 아니라, 춤추는 회원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흥미롭다. 어깨가 구부정한 연세드신 분들도, 슬몃슬몃 춤들을 잘추신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 꽃단장한 아름다운 여인들도 눈에 띄인다. 날씬하게 흰바지와 청자켓을 받쳐입고, 긴 퍼머머리를 휘날리는 이도 눈에 들어온다. 군살이 많은 몸이지만, 반짝거리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하이힐을 신은 아줌마도 눈길을 끈다. 그녀의 표정과 몸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인사말을 한 강철중 실업인협회 회장은 "꽃보다 아름다운 여성 회원님들"이라고 표현했다.
"코웃음"이 나오는 멘트였지만, 언제 귀 간지러운 그런 인사를 들어볼 수 있겠는가, 접수하고 볼 일이다.^^
이날 행사에 모두가 열광한 건 아니다. 뒤에 앉아서 긴 시간을 보내는 회원들이 그렇다. 1천여석중에서 자리를 뜨는 이들은 20% 미만이었을 테니, 이날도 어떤 이에게는 재미없는 행사였을 수도 있다. 바라기는 춤을 바라보면서라도 흥겨운 시간들을 가졌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줌마들의 노래경연도 벌어졌다. 그녀들의 노래실력도 수준급이다.
예년처럼 테이블 한편을 차지한 귀빈들의 인사소개가 있었지만, 그들의 면면이 모두 남성들이라, 언제나 만감이 교차한다. 당신들이 이렇게 하루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런 "귀빈들" 때문이니, 잘 알아두시오 라는 메세지로 읽힌다. 사실 아줌마들이 모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것은 그런 남자들 때문이긴 하다. 집에서 가게를 보는 남편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봐준다 하더라도, 행사에 큰 관계가 없는 한인사회 유지가 매년 초청인사로 와야하는가, 그런 의문은 든다. 그들이 행사를 후원하고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이들이 있다 한다면, 그들의 부인들을 초청인사로 부르는 건 어떨까? 여성의 날에 남성들이 귀빈석에 앉아있는 건, 좀 불편하긴 하다.
경품으로 내걸린 한국행 왕복비행기권은 그날의 행운의 여인들 5명에게 돌아갔고, 기타 값비싼 선물도 추첨을 통해 뿌려졌다.
오웬사운드 지구협회에 속해있는 필자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쪽 지역 7명의 아줌마들이 모여서 함께 갔다.
임신한 새댁부터 60대 언니까지, 우리의 공통분모는 단지 가게를 경영한다는 그 한가지 인데, 그게 작지 않다.
토론토까지 3시간 여행길이라, 오고가고, 보통 큰 행사가 아니다. 마침 운전기사로 선출된 내게는 긴장을 풀수 없는 하루였다. 작년에 작은 운전결함이 있었는데, 올해는 무사히 제시간에 잘 도착했고, 오는 길에는 새벽 1시가 넘어 팀호튼스에서 마무리 수다를 떨고 3시가 넘어 집에까지 잘 왔다. 작년 멤버에서 1명이 바뀐것 외에는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라, 작년의 대화에 이어, 올해도 이민인생에 대해 왕언니의 경험을 경청할 수 있었다.
편의점이라는 게 그렇다. 부부가 힘을 합해서 경영해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도매상도 때때로 다녀야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대로 일을 해야한다. 요즘처럼 인건비가 올라서는 일하는 사람 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여성들이 많은 시간을 가게에서 보낸다. 이런 여성들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발상은 어쨋든 좋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노고를 치하받아야 할 여성인력"들은 그날 그 시간도 가게에 매여있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 그날 그자리에 나왔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찾아먹어야 하는 권리는 누릴 줄 아는 그런 "억척 여성"들이었다는 것. 순진하고, 일터외엔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못하는 그런 회원들이 내년에 함께 나들이를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