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의 진수 터버모리(2) .. 떠남을 준비하는 아이들
찬물에서 스노쿨링하다
아이들은 이번 여름에 그 장소에 꼭 다시 가자고 몇번씩 말했다. 작년에 갔을때는 추수감사절 연휴였는데, 그때는 수영을 하기는 너무 추운 시간들이었다. 그 맑은 물에서 하염없이 수영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애들의 희망사항이었다.
한번뿐이더냐, 몇번이라도 다녀오자고 장담을 했던 건 나였다. 그런데 겨우 한번 그 장소에 갈수 있었으니, 마음과 행동 사이에는 언제나 간격이 있기 마련이다. 둘째날 도착해서 저녁을 해서 먹은 다음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사전답사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저녁시간이 되어가지만, 캠핑장에서 걸어서 갈수 있는 곳에 Grotto(석굴)가 있고, 이제는 부모 대신 큰애가 보호자가 되니, 가서 살피고 오라고 일렀다.
이틀동안의 강행군으로 몸이 무거웠던 우리 부부는 늦은 낮잠을 청했다. 화들짝 놀라 깨어난 건 어둠이 슬슬 밀려오는 시각, 아직도 아이들에게선 소식이 없다. 남편과 나는 모닥불을 펴놓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제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저희들끼리 보낸 것이 잘못된 일이었나, 울창한 산속길인데, 길을 잃은 건 아닌지,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후레쉬라도 가지고 갔어야 했는데, 그런 걱정들이 뭉게뭉게 몰려오고 있는 즈음, 캠프 사이트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 엄마야" "그래, 왜들 이렇게 늦었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석굴 안의 물은 너무 맑다 하였다. 방문자들도 모두 내려가고, 오는 길은 거의 저희들뿐이었는데, 중간쯤에서 길을 잠시 잃었었다고.
다음날은 터버모리 선착장에 가서 식품쇼핑을 하고 돌아와서 예전에 석굴을 방문한 이상묵씨가 이름붙인 "인어석굴"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이날을 위해 스노쿨링(snorkeling) 장비를 마련했다. 5가족 5개를 사고 싶어했지만, 나는 수영도 하지 못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최소한 4개를 사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만 즐기면 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많이 필요하겠느냐, 3개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딴지를 걸어, 몇십달러를 절약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이번에 가서 보니, 모두 4명이 물속에 있는데, 4개가 필요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잠수해서 호수속을 볼수 있는 스노쿨링을 하면서 세 자매와 그애들의 아빠가 잘 놀았다. 나는 사진이나 찍겠다고 했는데, 석굴안은 너무 어둡고 밖은 밝기도 했지만, 큰 동굴에 둘러싸인 형상이라, 빛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남편말로는 호수속은 그야말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작은 고기들이 있다 하였다. 낮은 물가여서 작은 물고기가 서식하는가 보다. 그 작은 물고기들이 어른 물고기가 될 것이니, 죠지언베이 호수속의 세상을 우리들은 모를 일이다. 너무 아름답다는 남편의 찬사가 이어졌지만, 영 상상이 안된다. 보지 않은 것은 믿기도 어렵다.
터버모리 선착장.. 오리들이 빵을 줬더니 많이 모여들었다. 이제는 더이상 흥미가 없어진듯.
Sweet Shop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아침기운을 북돋고 있다.
그날 날씨는 영상 26도쯤이었을 것 같은데, 호수의 물이 생각외로 차서, 모두들 입술이 새파랗게 얼어있다. 남편은 한참동안 손에 마비증세같은 것이 왔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너무 찬 물에서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큰애의 종아리에는 닭살이 돋기 시작하더니 크게 부풀어 올랐다. 식중독 증세처럼 말이다. 그것도 너무 찬물에 오래 있어서 생긴 일이라면서 징그럽다며 크게 웃기만 한다.
북에서 왔수다.. 남편이 스노쿨링 장비를 갖추고 내게 브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
저녁을 마친 후였겠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이들 셋이 좀더 이야기하고 오겠다며 물가로 나갔다. 우리는 캠프 사이트를 정리하고, 모닥불을 피웠다. 어둠은 급하게 내려앉았다. 잠시 이야기하고 오겠다는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남편과 물가에 나갔더니, 세 아이가 옹기종기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 들어오냐고 했더니,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들어온댄다. 캠핑을 와서, 엄마 아빠를 왕따시키고 있는 아이들이 우습기도 하고, 뭔가 많이 변했구나 싶기도 하다. 예전같으면, 마쉬맬로우를 구워먹는다, 옥수수를 굽는다, 모닥불 주변을 오가며 난리를 쳤을텐데, 기다리다 지친 우리가 옥수수를 굽기로 한다. 모두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옥수수를 굽고, 감자도 2개를 싸서 구웠다. 감자는 아무래도 내 차지가 될 것 같다.
옥수수가 다 익고, 감자가 다 익을 때까지 아이들의 발자욱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길어지고 있는지. 엄마 아빠와 함께 나누지 못할 저희들끼리의 세계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가 싶다.
드디어 천둥소리도 들리고 비도 듣기 시작한다. 그러고도 한참을 있어서야 아이들이 들어온다.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것이 큰애의 설명이다. 큰애는 이제 대학3년차가 되고, 둘째도 대학생이 된다. 인생의 큰 전환기가 아닐수 없다. 서로의 앞날에 대해서, 관심있는 "보이"들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나누었겠지. 그 시간에 늙어가는 우리 부부는 무엇을 했나. 옥수수를 잘 굽느라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결국 2개는 태우고 말았다. 늦은 밤, 옥수수는 하나씩 먹었지만, 감자를 먹을 사람이 없다. 잘 구워진 파삭파삭한 감자를 그냥 둘수가 없어서, 나는 트레일러 주방에 서서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 말없이.. 그랬더니 그 모양이 처량했는지 모두 한마디씩 한다. "그렇게 먹어 없앨 필요 없어요"라고.
아이들은 부모 울타리안에서 홀로서기를 연습하느라 바쁘다. 매순간이 그런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남는 우리들은 뭔가 허전하다. 그애들의 큰 발자욱을 볼때마다 나는 왜소해진다. 어르신들과 여행할때는 내 자신이 "거인"처럼 느껴졌는데, 아이들과의 여행에서는 아이들의 표현대로 "겁많은 치킨"이 된 것 같다. 물건을 들어날르는 것도, 장작을 사오는 것도, 나는 뒤로 처진다.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1인이 되어가고 있다. 세월이란 게 참으로 무섭다. 작은 새들이 언제 그렇게 커서, 그 날개를 퍼득이며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인지. 이번 캠핑은 서로간에 떠남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시한번 강조해야 겠다. 부루스 반도 국립공원(Bruce Peninsula National Park)은 최고의 캠핑장이 아닐수 없었다. 전기가 안들어오는 것도 점수를 주자면 후하게 줄 수 있다. 캠핑의 제대로 된 맛은 되도록이면 흙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피크닉 의자가 있는 곳이 부엌이고, 화롯불가가 거실이다. 맨땅에서 자지 못하니, 잠잘때만 inside로 들어가 신세지는 것이다. 국립공원의 캠핑사이트는 전나무등으로 한팀 살자리를 잘 만들어놓았다. 인심좋게 피크닉 의자도 2개가 있어서 한 테이블은 식사준비용으로 한 테이블은 식탁보를 깔고 고급(?)스럽게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뿐인가? 국립공원안에는 마 트레일, 호스 트레일, 죠지언베이 트레일등 세개의 메인 트레일이 있어서 캠핑장내에서 걸어갈수 있다. 숲을 올라가면 지금까지 설명한 석굴도 만날수 있고, 인디언 헤드 바위들도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방문 코스로 이곳에 와서 소풍을 하고 간다.
호스 트레일의 한구간같다..
산속에서도 세상과 소통하느라 바쁜 아이들.. 문자 메세지 확인을 하는중인지, 정말 이 세대는 우리들과 다르다.
예전에는 블랙 플라이가 있어서 힘들었는데, 작년 올해 벌레없는 깨끗한 물을 볼수 있었다. 공원에서는 캠핑장 사용자들 외에 일일 방문자는 숫자를 제한한다. 주차장이 만원이 되면,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가 없다. 나중에 캠핑장을 떠나면서 보니, 주차장이 꽉 차서 더이상 받을수 없다고 입구에 표지되어 있었다. 차 한대가 빠져나가는 대로 다른 차를 받는, 그래서 적정인원이 넘지 않는 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공원 안내원은 주말에 트레일을 돌려면 오전중에 오는 것이 안전하다고 귀뜸해주었다.
이렇게 때문에 국립공원 내의 여러 트레일을 섭렵하려면 공원내에서 묵으면서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트레일러보다는 텐트촌이 많았고, 텐트에서 자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Yurt를 빌릴 수도 있다. 야트에 대해서 다음편에서 더 설명하기로 하자. 한가지 더, 목욕하는 문제가 남는다. 공원 바로 밖에 샤워장을 제공해주는 주유소가 있었다. "왠 샤워장이?" 했었는데, 야영의 시간이 길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마춤이다. 나는 매일 아침과 저녁, 사이프러스 호수에서 세수를 했다. 물론 비누등을 사용하면 안된다. 비누없이 하는 자연세수의 기쁨을 아침저녁으로 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