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의 진수 터버모리(3).. Yurt는 무엇이라고?
초복, 중복, 말복에 대해서 아시는가? 단시간내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한자 세대거나, 족보있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혹은 미풍양속을 잘 지키는 양가집 자제라면 어쩌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운날들을 일컫는다"로 아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선이 아닐까싶다. 잠깐 검색해보았으나, 이곳에 옮기는 것은 더큰 혼란을 초래할 것 같다. 여름의 삼복더위라는 말처럼 더운날들을 의미하는데, 매년 그 날짜가 변한다는 점에 있다. "하지 이후 세번째 경일"이라거나 "입추후 몇번째 경일" 이런 식으로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큰 고민을 하지 않는것이 좋겠다. 나도 그럴참이다. 어쨋든 중복을 즈음한 그때, 제대로 날짜도 모르면서 중복의 음식을 먹었다. 여름철 떨어지는 식욕과, 처지는 원기를 위해서 보양식을 먹어둬야 한다고 정옥언니는 모임의 의미를 설명했다.
휴론 호숫가에 새집을 지어서 이사한 정옥언니네에 5 내외가 모여들었다. 원래 한 음식솜씨하는 정옥언니이기에 기대를 품고 왔으나, 그날의 삼계탕은 참석자 모두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온갖 한약재등 귀한 것들을 넣고 삶아낸 삼계탕은 그저 냄새만 맡는 것으로도 피와 살이 될 것 같았다. 해외에서, 유명한 명절도 아니고, 날짜개념을 생각하려면 골치가 아파오는 중복의 날에 토종 한국식 식탁앞에 앉아있는 참석자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보얀해졌었다.
원기보충을 하고, 휴론호숫가로 산책을 갔다. 비치웨이를 잘 정리해, "다목적 산책로"를 조성해놓으니, 저녁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걷거나 뛰어다닌다. 주인과 산책나온 애완견들은 친구 견공들과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짖어대기도 하고 나름대로 신호를 보낸다. 이길을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고 싶다. 한편엔 호수, 한편엔 아름다운 별장들로 이뤄진 이길을 걷는 우리들의 평균나이는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한 석양의 눈금과 같다. 고즈넉한 초저녁, Port Elgin이라 이름하는 마을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어느분은 해운대를 생각하셨다 한다.
서론이 길어진다. 캠핑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날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조한다. 돌아가면서 가정에서 식사를 대접하며, 즐거운 수다로 하루해를 보냈던 모임이었는데, 특별히 주관자가 우리 부부가 되는 8월 모임은 캠핑으로, 그것도 그레이 부루스의 절경인 부루스 반도 국립공원에서 캠핑과 하이킹을 하기로 서로간 입을 맞추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일정이 잡혀졌는데, 첫날은 임교수님 부부와 우리 부부의 공원내 캠핑, 둘째날에는 백선생님 내외가 합류하여 사설공원 캠핑, 마지막날은 장선생님 내외가 참가한 국립공원 전체 하이킹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모 아니면 도의 방법을 좋아하지 않고, 개와 걸과 가능하다면 윷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내 스타일이 적용된 일정이었다. 형편상 2가족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여름이 아니면 언제 다시 날을 잡을 수 있겠느냐 하면서 강행을 했다. 그러나 3일간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 이렇게 피라미식 일정이 된 것이다.
이를 편의상 "개" "걸" "윷"이라고 부르자.
"개"와 "걸"의 날
터버모리 캠핑 (1)에서 "친구들과의 캠핑을 꿈꾸었다"고 적었지만, 사실 편한 친구들이 있기나 한가? 친구도 없으면서 그런 꿈을 꾼것도 좀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리 캠핑 트레일러가 있다고 하지만, 집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결심을 요구하는가? 허물없는 친척들도 우리집에서 하룻밤 을 자지 못해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때도 많다.
그것이 나이먹는다는 것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자면,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너무 풍족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맛도, 잠맛도 까다로와 졌다는 것이고. 작년에 함께 했던 분중에 트레일러에서 잔 것이 아주 불편했다는 뒷말도 들려서, 아무에게나 캠핑제안을 할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임교수님댁은 정말 조금 틀렸다. 우리들의 제안에 아주 기뻐하시며 응해주셨다. 그리고 며칠후 내게 한통의 이메일이 왔다. 사모님에게서 온 메일이었는데, 가지고 올 물품을 적은 것이었다. 메일이 잘못왔나 느꼈을 정도로 너무 많은 식품과 많은 장비들을 준비해 오신다 하셨다. 게다가 더 필요하면 소식을 주라는 말씀까지..
그렇게 번잡해질 캠핑이었다면 정말 권유하는 게 실례가 될 정도였다. 쌀 한포대, 라면 1박스, 수박 2통, 빵 2롤, 계란 2다즌..... 도마 칼 냄비.... 나는 이메일을 받은 즉시 재발신을 했다. 그렇게 많은 것, 필요없으나 이왕 가져오시겠다고 하시니, 그중 몇가지만 가져오시면 되겠다고. 그랬는데 캠핑 전날 전화가 왔다. 이메일이 안보내져서 걱정했었다면서, 전에 말한 것 다 가져오시겠다는 말씀이셨다. 급하게 전화하신 이유는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고..
임교수님 내외가 도착했을때 나는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수제비를 해드시겠다고 밀가루 거의 한포대까지, 정말 너무도 많은 물품을 가져오셨다. 그리고 음식들까지.. 우리들의 캠핑 역사에 그렇게 호화로운 캠핑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임교수님에 관해서는 허락하신다면, 따로 글을 한편 쓰고 싶어지는 그런분이다. 한국에서 교수생활을 일찍 은퇴하시고,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오셨다. 그리고 넓은 에이커의 농장이 포함된 시골집을 사서, 주말마다 사모님과 오신다. 당신은 작년 이곳 아이들의 캐나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셨다. 그리고 그 점수로 올해 토론토대학에 합격했고, 1학년 프레쉬맨을 시작하시려 한다.
공부를 좋아한다는 말로 설명이 될것인지. 우리는 임교수님으로부터 캐나다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이 어떤지를 듣곤 하는데, 캐나다에서 학교교육을 받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부모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날은 마침,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8.18. 바로 판문점에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일이다.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특별한 이유로 이날을 기억한다. 바로 나와 남편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며칠전에야 그날이 그날임을 안 남편은 말끝에 기어이 "기밀"을 흘리고야 말았다. "결혼기념일"은 그야말로 두 사람이 자축하는 날이지, 그것으로 축하받고 말고 할 것은 없는 "다른 이들에겐 큰 의미가 없는 날"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자상하신 임교수님께 그걸 틀켰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임교수님은 우리 부부를 위해 이야기를 선물해 주셨다. "용감한 수탉"이라는 제목의. 주인에게 잘 보여 밥을 빌어먹고 사는 개와 제멋대로이면서 제 잘난맛에 사는 수탉의 대화를 통해 인간을 깨우치는 이야기??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수탉같은 저돌적이며 용감한 삶과 수동적인 개같은 삶이 내용속에 잘 녹아들어있다. 임교수님은 옛 민화에서 가져와 첨삭을 거쳐 내용을 만들었으며, 이것을 영어로 만들었다고 부연하셨던 것 같다. 학구적인 임교수님의 선물다왔다.
임교수님댁과는 국립공원내 두개의 트레일을 더 돌아봤다. 부루스 트레일 마지막 구간인 Brunt Point loop과 Singing Sand Beach. 브런트 포인트 룹은
부루스 반도 방문자 센터에서 갈수 있다. 전망대도 있고, 숲길를 지나다보면, 옥빛 죠지언베이 물을 만나게 된다. 사모님은 전망대에서는 현기증을 느끼시는 듯하였는데, 다른 구간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선도하는 길잡이가 되셨었다. 사모님은 1등만 했었을 것 같은 범생 기질이 다분했고, 그렇기 때문에 힘드실 것 같기도 했다. 사모님에게 부엌의 전권을 드렸고, 어찌 할까, 모두가 물어보기도 했다.
"노래하는 모래" 비치는 휴론호숫쪽으로 있었다. 부루스반도가 휴론호수와 죠지언베이 호수를 양옆으로 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싱잉 샌드 비치는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있어서 물을 만나려면 한참 들어가야 했다. 물은 생각대로 따뜻해서, 추위를 타는 나같은 사람도 수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죠지언베이 물이 한국의 동해와 같다면 휴론호수의 물은 서해와 같다고 보면 되겠다.
싱잉샌드 비치 트레일이 끝나니, 입구쪽에 "자연전시관"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희귀한 야생화와 갖가지 개구리들이 자연서식하는 곳에 나무 길을 만들어놨다. 유리관이 없는 전시가 그곳에 이뤄지고 있었다. Dorcas Fen이라고 불리는 묘하게 생긴 꽃이 아주 많았다.
우리에게 맛있는 한식을 가끔씩 제공해주는 정옥언니네가 밤늦게 도착했다. 포트 엘긴에서 일을 마친 백선생님은 토론토로 다시 가서 정옥언니를 데리고, 다시 터버모리로 올라온 것이다. 아마도 그날의 총운전시간은 8시간 정도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길을 마다않고 달려오신 백선생님네를 뵙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사랑이 엄마"로도 불리는 정옥언니와의 인연이 길어지고 있다. 언제나 예의를 지키는 편이라,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가끔은 불시에 방문도 하고, 방문도 받고싶은 그런 이웃이다. "사랑이"는 정옥언니가 한국서부터 데려온 개다. 모녀간이었는데 엄마개는 암으로 죽고 이제 사랑이가 10살이 되어간다고 한다. 사랑이에게 사람에게 하듯 애정을 주는 언니를 우리들은 가끔씩 놀리기도 한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 아니면 못할 일 같다는 게 정옥언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어쨋든 그날은 사랑이까지 7명이 캠핑사이트에 있었다. 메노나이트들이 경영하는 캠핑장이었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독일계 빈틈없는 원칙주의자같아 보였다. 캠핑장에서 잠을 자지 않고, 일행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얼마를 더 내야하느냐 물었더니, 캠핑장 3시간 정도 사용료를 하루치를 다 계산해야 한댄다. 전화로도 그런 인상을 받았지만, 우리가 6명이 묵으면서 빈 텐트 사이트 하나를 더 예약했던 그 "인정머리 없음"에 자꾸 입이 삐죽여졌다.
캠핑장을 수시로 돌던 마차.. 그중 볼만한 풍경이었나?
3시간을 쓰던 하루를 쓰던 그 캠핑사이트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없으니 그런 계산법이 당연하긴 해도, 많은 사이트가 놀고있더니만, 어째 그리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캐나다의 경제가 요동치지 않는 것은 그런 맥힌 사람들 때문이라고 애써 좋게 해석해보기도 했다.
이 캠핑장은 나름 편리한 부분도 있었다. 물과 전기와 하수도가 한곳에 있어서 가정에서 쓰듯이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화장실을 쓰면 바로 비워지니,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입구쪽에는 카누타는 곳도 있었고, 아이들 물놀이장도 있었다. 나름 공을 들인 캠핑장이겠지.
저녁에 밖에서 한참 있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트레일러안으로 들어왔다. 잠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임교수님의 독일유학 시절, 가난한 학생의 여행이야기는 추억의 시간과 미지의 곳으로 우리들을 유인한다.
늦은 시간 잠들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거진 꼴찌에 가깝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분 여성 캠퍼들은 잠을 설쳤다고. 트레일러 안에 있는 화장실 사용을 거부하시더니, 한번 잠이 깬 이후로 다시 잠들지 못하셨단다. 정옥언니는 닫혀진 트레일러 문을 여는 방법을 잃어버려, 침대에 한참을 앉아있었다고. 그러길래 캠핑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고생할 각오를 해야한다. 다음에 같이 캠핑할때는 내외없이 서로 더 편해지면 좋으련만.
"윷"의 날
캠핑을 하면서도 아껴두었던 Grotto(석굴)을 가는 날이다. 공원 안내원의 조언에 따라 10시쯤 일찍 모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않다. 이날을 위해 그이전의 날들이 길게 늘어졌던 것인데, 막상 세차게 비가 오니, 마음이 심란하다. 그래도 우선 공원에 들어갔다. Head of Trail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트레일 입구에는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오픈 정자가 많이 세워져있다. 비오는 중에도 트레일을 포기하지 않고 도착한 사람들이 꽤 된다. 우선 우리는 정자 하나를 맡았다. 점심으로 먹을 밥을 지어왔고, 밑반찬들이 아직도 창창히 남아있었고, 고기만 구우면 점심상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흩뿌리는 곳에서 식사를 마쳤다.
옆사진은 차우차우라 불리는 고가의 견공. 혹자의 말로는 1억이 넘는다고.. 믿거나 말거나, 나는 관심없는디.
그러다 보니, 날이 개기 시작한다. 캐나다 여름날씨의 전형이다. 비가 오랜시간 오지 않는다. 70대 중반에 들어서신 장선생님 내외분이 오셔서 분위기가 또 일신된다. 장선생님 사모님께서 트레일에서 넘어지신 적이 있으시단다. 그래서 장선생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한번 넘어지면, 이제 나 혼자 다닐거야" 며 반 협박도 하신다. 사모임께는 조금 무리겠지만, 호스 트레일로 올라가서, 마 트레일로 내려오기로 결정한다. 호스 트레일은 난이도에서 중간, 마 트레일은 "조금 어렵다"고 나온다. 장선생님께서도 사진기를 가져오셨다.
오랜 시간 체슬리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신 그분들은 두 아이를 "시골서" 키웠고, 그 아이들이 의사와 약사가 되었으니, 시골에서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을 저어하는 부모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분들을 보면 그것이 편견임을 알수 있다.
캐나다 이민생활을 오래 하셔서 우리들중 가장 케네디언화 되셨지만, 아직도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맛을 잊지 못하시는 것은 우리들과 같다. 사모님의 걸음이 불안해 보이시는지, 장선생님은 사모님의 손을 꼭잡고 다니셨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늙으면 부부가 손을 꼭잡고 함께 걷고 싶다고. 바로 그런 모습이어서 나는 그분들 등뒤에서 셔터를 많이 눌러댔다.
터버모리 물에 대한 찬사는 이번호에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수십번 간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제안한다면 나는 또다시 그곳의 바위들을 밟을 것이다. 언제나 같은 모습일테지만 말이다.
원래는 저녁식사를 식당에서 우아하게 하고싶었다. 우리가 대접해야 할 순번이기도 했고 말이다. 남은 음식이 많으니, 어느 공원이라도 들러서 음식을 먹고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야 "돈"도 절약되고, 남은 음식 싸들고 가는 것보다는 소비하는 게 경제적이어서 그러자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 속 마음중에 하나는 자연에서 자유롭게 있다가 어디 마을이나 도시의 한가운데로 끼어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도시가 나를 얽매는 것 같은, 그런 답답함이 스며든다. 5박6일간의 마지막을 도시의 한 식당에서 마감하는 것은 캠핑 전체의 줄기와 맞지 않는 것이었단 말이지. 그래서 그런 제안을 해주신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식사의 첫번째 물망지로는 라이온스 헤드라 불리는 작은 마을. 우리는 사자머리를 찾기위해 이 비치에 들어섰는데, 저멀리 보이는 암석들중에 사자머리를 닮은 것이 없다. 나중에 안내서를 보니, "사자머리가 있을 것이란 생각들을선조들이 했다"는 것에서 마을의 이름이 유래한다고 적혀있다.
참으로 우스운 선조들이고, 후손들이다. 사자머리를 찾기를 포기했는데, 어쩐지 이 마을에서 저녁을 지어먹을 마음이 나지 않는다. 일행은 다시 한번 움직이기로 했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면, 막판에는 식당에라도 찾아들어가야 한다..
와이어튼이었다. 자주 캠핑했던 곳인데, 공원의 안쪽 깊숙히 그런 장소가 있는 줄이야.
마침 날이 안좋아, 비를 피할 수 있게 지어진 큰 쉼터에 우리 외에 2명뿐이다. 40-50명도 수용할 만한 공간이었고, 전기시설까지 되어있다. 물도 있고, 그만하면 캠핑에 숙달된 조교들이 식사준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생겼다.
처음엔 가볍게 라면만 끓여먹자고 했다가, 정옥언니가 준비해온 꽁치 통조림과 양념으로 김치 꽁치 찌개를 더하기로 했다. 점심에 남은 밥도 있었고. 그래서 다시한번 만찬이 차려졌다. 임교수님댁에서 준비해온 많은 반찬들이 소비되어가고 있다. 밖은 비가 촉촉히 오니 와이어튼의 콜보이 베이에 옅은 안개가 서린다.
한가지만 말하면 된다. 결국 임교수님이 일을 벌이셨다. 그 모임의 따까리일뿐인(최고 어린나이에다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 케잌을 준비해주셨다. 빅이벤트여서 눈물이 날뻔 했다. 장선생님께서 뭐라 말씀해 주셨나. "이렇게 오래 결혼생활 해보니, 젊었을때 여행많이 다니시고, 아이들에게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본인들을 위해 살아가라"셨던가?
누구에게나 있는 결혼기념일을 이렇게 단독적으로 축하받고보니, 보통 계면쩍은 게 아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분들이 내년에는 모두 함께 결혼기념을 챙기자고 하셨다. 그게 좋을 것 같다. 내년에 별일이 없다면, 모두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를 곁들여 비슷한 여행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때는 Yurt에서 숙박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이프러스 호숫가에 만들어진 야트는 "몽고 유목민들의 천막"에서 따온 거주 개념으로 야영의 맛을 느끼면서도 또 야영이 벅찬 사람들에게 적합할 것처럼 보인다. 특별히 사이프러스 야트는 새로 지어졌고, 며칠 놀기에 환상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텐트촌으로부터도 간격이 있고. 하룻밤 자는데 100달러, 4-5명이 함께 묵을수 있다 한다. 덩치 큰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는 것도 사실 좀 스트레스가 있긴 하다. 그래서 나조차도 유혹을 받긴 하지만, 트레일러 여행을 일년에 한번밖에 못했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하다. 이제사 철이 들었는지, 매달 몰게지 내는 것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러니 나와 남편은 트레일러를 끌고와야겠지. 다른 분들이 얻어놓으면 놀러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