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그리고 우리

글쓰기에도 재고품 활용이 있다

mindylee 2011. 12. 28. 05:47

매해 12월이 되면 신문사 편집실은 분주해진다. 한해를 마감하는 특집기사를 발굴해내야 하고, 1년간 있었던 주요 뉴스들을 정리해서 보도하게 된다. 신문 발행부수가 늘어나는 이때가 되면 넘치는 광고를 소화하고자, 편집면수를 늘리기도 한다. 그러자니, 여느때보다 여러가지 특집판들을 기획해야 하고, 그를 맡은 기자들은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적절한 미담기사를 찾아, 이곳저곳을 쑤셔보기도 하고, 미담이 없다면, 그럴싸하게 미담을 포장해야 하는 일까지도 발생한다.


여러가지 기획안중에서 회고기사는 그중 쉬운 편이다. 그동안의 취재수첩과 신문을 뒤적여 정돈하고, 현재의 상태를 살짝 덧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까지는 신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되지만, 새로운 기사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지나간 신문을 뒤젹여보라는 선배의 조언은, 그 말을 듣는 즉시 마음이 찡그려지던 생각이 난다. 그 선배의 조언인 즉슨 같은 때, 같은 시간의 기사를 뒤적여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기사를 만들 수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느 단체에서 어떤 선행을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볼수도 있고, 10년전의 화제의 인물이 현재는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 조사할수도 있고 말이다.


사실 새로운 사건이 터지기만을 바랄수는 없는 일이다. 편집 책임자는 여러 소스를 통해서 새로운 기사들을 발굴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젊은 시절, 노회한 신문사 선배의  "새 기사를 찾기위해 옛 기사를 뒤적여라" 는 그 발상이 참으로 "진부"하고 "게으르게" 느껴졌었다. 새로운 소식이라는 뜻의 "news"는 이렇게 옛것이 다시 옷을 입고 태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고싶은 곳, 먹고싶은 곳, 기념일 등등은 옛 기사를 약간만 바꾸면 새 기사로 태어나게 되는 고전적 이슈들이다.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하다 보니, 내글이 때로는 다른 곳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캐나다 홍보물 블로그에서 말끝만 바꾼채 사진까지 도용된 경우도 보게 된다. 또한 컴퓨터를 검색하다보면, 같은 내용이 여러 사람의 블로그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올려져있는 것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남의 글을 갖다쓰는 재고품 활용의 수준이다. 소위 "의식있다"는 어떤 역사 카페에는 내가 소개한 "해외 독립운동가 박용만 조명"의 글이 카페지기가 쓴 글로 둔갑되어 있었다. 독립투사 박용만을 소개한 이상묵씨의 연재글을 나름대로 소개한 글이었다. 나는 카페에 불만을 제기하려 등록하였고, 카페지기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날렸다. 출처를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소식도 없었고, 여전히 내 의견은 묵살된 채로 그 글은 카페에 남아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내면서,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는데, 사실 내가 한 것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박용만"을 조명한 이상묵씨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을뿐이며, 따라서 내가 정리했지만, 그 글이 "내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는 데 인식이 도달했고, 그렇다고 생각하면, 출처를 밝히지 않은 그 글에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그 카페에는 내 글처럼 여러 곳에서 모아놓은 글들이 출처도 묘연하게 실려있는 것 같았다. 조명당하는 역사적 인물이나, 그 인물을 대한 글을 쓴 사람이나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고, 또 여러 사람의 글을 조합해서 만들어졌을 경우 그 표절의 한계가 불분명하니, 마디를 뚝 끊어 카페지기가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올리면, 다시 그 글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어, 또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게 되겠고, 본인의 글이 아니니, 출처를 밝히지 않고 누가 도용했더라도, 항의하지도 못할것이니, 주인없는 글이 되어 이리저리 떠돌고, 그또한 책임질 사람이 없는 무자격 글이 되어 이세상의 한곳에서 숨을 쉬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는 어느 누가 퍼트린 글인지 모르는 "좋은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종종 그 글의 작성자가 누군지 궁금해하곤 한다. 이런 글들은 재고활용에서 가장 빈번히 이용되는 것들이다.


글에 대한 강박관념이 오랜 동안 있었다. 내 글이라 할지라도, 인터넷 이곳저곳에 떠도는 것을 되도록이면 피했었다.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만나는 카페에서 블로그의 글을 복사해서 올리는 일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카페를 키우고싶은 그들은 내 블로그의 글들을 올려주기를 은연중 원했지만 말이다.


그랬던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어쩌면 더이상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일지, 아니면 블로그에 찾아오지 않은 이들에게 지나간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런 모든 것들이 그런 일들에 얼굴을 조금씩 두꺼워지게 됐다. 타인의 것을 도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것을 갖다쓰니, 이건 괜찮은가?


인터넷으로 너무 많은 연관을 맺기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다. 인터넷 신문 제주인에 기사를 송고하기로 하고나서, 많은 글들이 블로그와 "제주인"에 동시에 실린다. 최근에는 뉴스거리가 없어서, 옛 글중에서 골라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책과 영화 부분 카테고리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하나씩 빼내어, 깊이있는 시선으로 봐주는, 내가 새로 드나들게 된 카페에 한편씩 복사해서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도 부족하여 내 스스로 인터넷 카페방을 하나 만들었으니, 이곳에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새 살림들로 차릴 생각을 못하고, 블로그 글들중에 어울릴만한 것이 없나 호시탐탐 살피고 있다. 이 카페에는 여행 카테고리 중에서 하나씩 골라 보내고 있다.


재고가 떨어지면, 그때 다시 자판을 두드리는 손에 힘을 주게 될까? 


블로그 지난 1년간의 성적은 최하위로 떨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없다. 낚시질하러 들어오는 스팸성 블로거들을 빼놓는다면, 하루에 몇명이나 블로그에 들어오는지 아주 헐렁한 숫자이다. 나조차 새글을 쓸 생각보다는 재고품을 뒤적이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좋게 말하면 정체기이고, 나쁘게 말하면, 문을 닫을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글은 못썼어도, 카페글을 쓸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블로그 글쓰기판을 연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다만, 최근에는 좋은 블로그를 발견하여, 나들이하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그의 샘솟는 창착열에 매번 감탄을 한다. 망설이지 않고, 쏟아내버리는 그의 말발에도 점수를 주고싶다. 포장하지 않고, 가끔은 욕설도 포함된 그 글에서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하니까 말이다.  "속사프레서의 영미작가 소개"란 블로그인데, 그의 이야기마당의 글이 재미있다. 영미작가 소개는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http://blog.daum.net/cho3237


내 글의 가장 큰 문제는 내 목소리가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지적해줬다. 그의 지적이 아니라도 나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다. 타인을 너무 인식한 나머지 그런 것일지, 아니면 나 자신의 의견을 갖지 못한 것일지.. 두번째 의견이 조금 더 센것 같다. 또하나 나의 글쓰기는 "리포트식"이었다. 아마도 신문사에서 일했던 습관이 이런 글쓰기 위주로 나아가게 한 것 같기도 하다. 불편부당한 것을 묘사하는 데서 조금 나아가 내 목소리를 포함시키려 노력해보자. 나의 의견을 갖는다는게 무엇인지, 그를 파악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구태의연하지만 연말정리와 새해다짐을 마침내 해보기로 하자.


신문사 제주인과는 그만 끝을 내는 것이 좋겠다. 1년 6개월 정도 끌어왔다. 몇번 공들여 쓴 기사들도 있지만, 뉴스의 산실과 멀어진 환경에 있으면서 뉴스글을 작성한다는 게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뉴스식으로 글을 변형시켜 내보내야 할때도 있었고, 신문사에서 내글을 앞뒤 자르고 몸뚱이만 실었던 적도 있었다. 신변잡기가 필요없는 알맹이만 보겠다는 잘려진 내글에서 정체성을 잃고 흔들려야 했다. 신문사의 글은 그야말로 "신변잡기가 포함된 내 목소리"는 밖으로 표출되면 안되는 것이었다. 


글의 재고품 활용을 하면서 무언가 떳떳치 못한 감정들이 있었다. 아직 추억의 상자를 뒤적일 때는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글의 산실은 하나이고, 나누어야 할 곳은 많으니 나를 조금 용서해주어야 할까? 캐나다 나이 50살이 내년이다. "50살 낱낱이 기록하기"를 한해의 글쓰기 목표로 잡아볼까? 결심을 공표하고 본다는 "떠벌이" 옛친구처럼 나도 떠벌여보자. 그래야 1년이 지나고 나면, 뭔가 반성거리가 손에 잡힐 것 아닌가? 재고품에 연연하지 않고, 새글이 퐁퐁 나오기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