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외출
집을 나서기 한 10분전쯤이었을까?
남편이 엊저녁에 내게 준, 쑤세미 봉지를 가르킨다.
그는 가끔씩 집안에 필요한 물품들을 잘 사온다. 내 부탁이 없어도, 알아서 사오기 때문에 그런 물건들은 상비되어 있지 않아도 내가 신경쓰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다. 내게 준 그 쑤세미를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소파 팔걸이에 올려놨었다.
- 이게 아직도 여기에 있네. 당신은 제때 할 때가 없어.
나는 머리 드라이를 막 마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그의 말이 흘려들어지지가 않았다.
- 그만 좀 하지..
쌀쌀한 목소리로 말하니, 그의 화를 자초한 것은 당연.
- 이러면 이걸 내가 꼭 갖다놔야 해, 그렇지?
그러면서 쑤세미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간다.
긴 여행을 둘만이 하는 날, 아침.. 이렇게 썰렁하게 시작했다.
그가 먼저 밖에 나갔고, 나는 아침 먹을거리를 챙기고 있었다.
이제 가자, 는 둥 말이 있어야 하는데,
말없이 밖에 나가니, 음식을 챙겨서 나도 나갔다.
그는 밤새 부러진 나뭇가지를 갈퀴로 긁고 있다. 그래서 떡, 고구마, 커피를 차안에 넣어놓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고구마를 먹자면, 휴지가 필요할 것 같아 크리넥스를 한통 가져오리라 하고.
조금 후에 보니, 차의 엔진이 켜져 있다. 그리곤 나오라는 말은 없다.
나는 신호에 반응하는 동물처럼, 다시 밖으로 나가 차를 탄다.
이제 토론토를 가게 된다. 토론토를 간다는 말은, 차를 탄 8시부터 집에 돌아올 밤시간까지 최소한 12시간 이상을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째 시작이 영 좋지 않다.
"사안"으로 보면, 토론토에 도착하는 3시간 미만에 풀어질 일이긴 했다. 그는 가끔 농담반 진담반 나를 "지적질" 하지만, 내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쉽게 끝나는 일이다. 애교스런 말을 흘리며, 재빨리 쑤세미를 제자리로 갖다놨다면, 사랑이 돈독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그걸 거부한 것이다. 가면서 내가 챙긴 고구마도 먹는 걸 보니, 화를 길게 낼 의향은 없는 듯 보이긴 했지만, 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는 운전만 했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고 졸음이 오기 시작해서, 미안함없이 잠으로 그 순간을 넘기고 있었다.
그에겐 상당히 중요한 외출이었다. 그는 학사장교 출신이다. 군대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비슷한 유형의 강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난 동류의식이 있는가 싶다. 그는 토론토를 떠나 멀리 이사왔고, 최근에 토론토에도 학사장교 모임이 있다는 걸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됐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는 마치 짝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그 카페에 글도 올리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궁시렁 대기도 했다. 회계사를 만나러 내려가야 하는 그날, 학사장교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내려가는 그시간까지 몇명이 올지 그는 알수 없다고 하였다. 아무도 답글을 다는 사람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나는 혼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아무도 애닯아 하지 않는데, 혼자 짝사랑하는 건 아닌가? 어쩌면 한명도 안나오는 건 아닐까? 그러면 우리 둘이 그 식당에서 뭘 하나? 지금 이렇게 분위기도 싸한데. 어쩌다보니, 남편과 외식하는 것이 하나도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되었나?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면 실망이 클텐데, 좀 안됐다, 그러나 나는 그와 약간의 언쟁이 있었던 터이니, 그를 얼마나 불쌍히 여길지는 가봐야 안다 뭐, 대충 이런 생각들.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남편이 들어가자 주인이 찾는 손님이 있느냐고 한다. 그가 한명의 이름을 대자, 이쪽으로 오시라면서 자리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6명의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직 아무도 와있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여섯명이나?" 하면서 따뜻한 차를 따라서 마셨다. 조금 있다가 한명이 나타났다. 남편은 바로 말을 놓았고, 그는 바로 형님과 형수님으로 우리를 호칭했다. 그가 총무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2명이 입장한다. 그중 한 사람이 약간 낯이 익다. 어쨋든 인사를 하면서 들으니, 그들은 남편과 동기생들이었다. 첫 만남에서 호칭이, 야,자로 급친숙해진다.
낯이 익었던 그는 토론토 갤러리아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민병훈 사장이란다. 신문이나, 그런 데서 본 얼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난 것이 기대 이상이었고, 또 먼데서 온 우리를 귀빈 취급해주었으므로 금새 마음이 풀렸다. 남편과의 티각태각은 내 마음에서 녹아없어졌다.
갤러리아 슈퍼마켓은 한국식품을 공수해오는 유통업체인 코리아 푸드 트레이딩(Korea Food Trading Ltd.) 주식회사와 갤러리아 슈퍼마켓 2군데를 경영하는 큰 사업체이다. 갤러리아 슈퍼는 온타리오 거주 한국인이면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들리는 한국식품점이다. 갤러리아가 토론토에 정착하면서, 한국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일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사보에 실린 민병훈 사장을 다시 촬영했다. 직접 만났는데도 사진을 찍어오지 못했다.
현재는 300 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형회사로 성장, 한국인의 자랑이 되고 있다. 현지 유수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도 갤러리아와 한국음식이 자주 소개되었으며, 민병훈 사장은 지역봉사와 소수민족 경영선구자로 여러번 수상한 경력도 있다.
나와 같은 교회 교인 한명은 갤러리아의 경품권 추첨에서 현대 소나타가 당첨돼 현재 타고 있기도 하다. 나는 그 차를 볼때마다 갤러리아가 생각나기도 한다. 토론토를 비롯한 온타리오 거주 교민들은 식탁의 교제를 나눌때 아줌마들의 흔한 대화에 갤러리아가 고명처럼 끼기도 한다. 식품재료의 출처를 "수사"하다보면, 갤러리아에 안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갤러리아 이외에도 크고 작은 한국식품이 있다는 건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자. 갤러리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하면, 식품 판매뿐 아니라, 각종 문화센터를 운영하여, 한국적 취미와 교양을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어떤 때는 노래자랑같은 것도 열린다. 하여튼 여러모로 캐나다내 한국문화를 창출하는데 갤러리아가 공헌한다는 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 제가요, 갤러리아와 조금 인연이 있어요. 최근 사보 만들었지요? 그곳에 제글이 "이민자 이야기"로 실렸는데..
- 아 그분이세요? 이거 너무 반갑습니다. 5월호에 "티켓"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이구 사진을 찍어야 하겠네.
그러면서 그는 나와 남편이 앉아있는 쪽으로 건너왔다. 앞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내 뒤에 선다.
남편은 바로, 그럼 나도 같이 찍어야지, 해서 세명이 함께 인증샷을 찍었다. 휴대전화 사진이었을 뿐이지만.
갤러리아 에서는 지난 4월 "The WITH"라는 사보를 첫호로 발간했다. 한국어로는 "함께 만드는 세상"이라는 뜻이란다.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제목이다. 이 책의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내 블로그글에서 글을 써도 괜찮냐는. 그래서 동의했고, 첫호에 "캐나다 공인 회계사 김영희씨"에 대한 글이 실렸다. 갤러리아 사보의 첫출발에 이런 인연으로 합류하게 되었고, 그 회사의 사장이 남편의 군대 동기라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옆사진은 토론토 스타 에디터 제니퍼(Jennifer Bain)씨에게 이 회사 하원석씨가 직접 생산한 뻥튀기를 소개하는 장면으로, The WITH 표지를 장식했다.
남편은 두명의 후배와 두명의 동기와 함께 학사장교 당시의 이야기를 신이 나서 말한다. 다섯 남자는 멍석피고 군대이야기에 열중한다. 남편은 박박 기고, 얻어맞고(장교였는데도), 졸병들에게 무시받았던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두명의 동기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는듯, 빙긋빙긋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육체는 편했지만,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중에 남편말에 따르면, 장교중에서도 보병은 힘들고, 특수병과는 군대 행정, 기계정비, 보급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 배우는 것이 많은 보직이라고 전한다. 군대내의 로얄패밀리란다. 내가 다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꽤 고생한 축에 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학사장교로 갔지만, 공수부태로 착출되어 그곳에서 "단증"(태권도)이 없는 장교로 별별 무시를 다 당하면서 단증도 따고, 중대원들도 인솔하고 해야 했다고 한다. 그가 제대로 대접받은 장교가 되기까지 힘들었다는 것.
그런데, 군대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 고생했던 것을 즐거워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그 시절이 전성기 였던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나는 가끔은 군인의 아내로 사는 것같은 느낌을 받기는 한다. 정리정돈에 서툰 부인을 만나 많이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그의 정리벽은 꽤 수준이 높고, 한번 결정한 사항을 번복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 시간관념이 몇분씩 앞장선 것(언제나 30분 전에 일터에 도착한다) 등등이다.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함께 내무반 생활을 했던 다른 장교의 승진, 말하자면 "별"을 달았다는 뉴스를 접하면, 꼭 그때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럴때는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외수의 "훈장"이라는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랑할 것이라곤 전쟁후 받았던 "훈장"밖에 없는 쓸쓸한 노병의 이야기가 담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만났던 스틸스 서울관에서는 "추어탕"이 메뉴에 있었다. 민병훈씨에 의하면 (그의 회사에서) 한국에서 산 것을 공수해온 것이라 하였다. 갤러리아에 가면 야채부터 생선까지 한국에서 바로 온 것들이 진열대에 가득하다.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며 비행기를 타고 왔을 생각을 하니, 몸이 근질하다. 그중 세명이 추어탕을 먹었다. 남편은 오랫만에 한국적인 음식을 먹은 셈일거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볼에 홍조가 서린 남편과 단칼에 형수로 대접받은 나는 기분이 들뜬다.
인간이란 내 주변을 화려하게 포장, 나를 돋보이는 도구들로 이용하는 데 능숙하다. 갤러리아 사장이 남편 군대 동기에요, 라는 말을 앞으로 얼마나 하게 될지 모르겠다. 어쩌다 사보에 글 실린 사람으로서 갤러리아 객원 홍보원 자격을 자처하는 나의 푼수를 누가 말릴까?
남편과 새로운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조금 생각하고 있던 중이다. 새로운 무엇이 오랫동안 없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그가 갈고 닦던 훈장이 잠깐 빛을 발했다. 소년같은 그 모습을 볼수 있었다. 6월에는 내무반에서 함께 지냈던 한국에 살고 있는 동기생 가족이 우리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때쯤 토론토 학사장교 가족들도 함께 모일 수 있기를 남편은 기대하고 있다. 남편의 배경에 주목해야 할때가 왔나보다. 남편의 훈장에 감추어진 의미를 알아챌수 있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