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묵상

예수안에 있는자

mindylee 2014. 10. 4. 08:34

뜨거웠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태생이 그런 것처럼 언제나 차고 냉정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당신은 냉정한 사람은 아니다. 따뜻한 적도 많다, 이렇게 말해줄 사람들을. 결국 겸손한척 하는 거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남이 말해주길 기다리는.

 

이런 것이 죄의 속성일까?

 

예수안에 있는가 나를 저울질해본다. 건물로서의 교회안에 있는 사람인 것은 맞는데, 예수안에 있는 사람이 맞느냐는 거다.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닌다.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다. 착한편이다. 봉사도 가끔씩 한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다.

이런 것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이라 증명해주나? 남들이 그렇게 믿어주길 바라는 그것인가?

 

그랬다. 단도직입적으로 몰아부치는 사람을 나는 싫어했다. 너처럼 믿어서는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입에 예수님과 하나님을 달고사는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켰다.

 

옛날 이야기부터 하자. 교회다니기를 포기했던 때가 대학교 다닐때다. 언제든가, 언니를 따라서 기도원에 갔었다. 그 기도원 강사 목사의 설교, “이세상은 악에 속해있고, 당신들은 이세상에서 발을 빼어내어야 한다는 요지의 그 설교에서, 이세상에 태어났는데, 이세상에 속하지 말라는 말씀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뒤로 교회순례라는 방황과, 성경읽기를 한 다음에, 확신이 들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리라 결심했었다. 그래서 한 10여년간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은 결혼 즈음이었다. 결혼 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사무치는 회개없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목사님이었는데, 나중에 그 목사님이 떠나고, 교인들이 헤어졌었던 것같다. 그당시의 기억이 희미한데, 어쨋든 우리 가족은 다니던 교회보다는 젊은부부 교인이 많은 곳으로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는 어린 아이를 키우던 또래의 부부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친분을 맺기 시작한다. 성경공부뿐 아니라, 또래들과 가정을 돌며 즐거움을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 그럴때쯤 시골로 이사오게 되는데, 이때 기도를 많이 했다. 이사를 허락해주십사 하고. 이사하려면 가게건물 구입에 돈이 필요했는데, 돈은 하나도 없었지, 주변에서 빌릴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오로지 은행만 쳐다봐야 했다. 은행융자가 나와서 이사를 오게 된다면,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약속했었다. 거진 90% 융자가 나왔고, 우리 가족의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때 성경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가족의 이주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해왔다.

 

시골에서 만난 목사는 약간은 다른 종류의 목사였다. 지난 10년간 성실한 목사라고 믿고 떠받들어왔던 목사가 교회에 분탕질을 일으키고 떠나갔다.

나는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의 분별력은 무엇인가? 그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나는 왜 못했던가? 그가 가르친 것을 진리로 믿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니, 그는 언제나 인간은 믿을 수 없다. 벌레같은 존재들이다. 죄악덩어리다. 심판받을 자들이다이렇게 말해왔다. 그가 떠난 뒤에 생각해보면, 무지몽매한 인간으로 만들어놔서 거의 바보가 되었었던 것 같기만 하다.

 

교계에  파렴치 목사들이 난무한다. 큰 교회 목사들이 주로 그렇고, 심지어 우리같이 아주 작은 교회에서도 그런 목사가 있다. 목사가 그렇다고 복음을 의심할 수는 없다.

 

완전히 새로와진 교회에서 나는 새로 배우고 있다. 무엇이 복음이고, 무엇이 믿음이고, 무엇이 회개이고, 무엇이 이웃사랑인지를.

 

신앙의 길에 서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나는 흔들리는 갈대다. 지금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면, 몸이 떨린다. “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느냐?” 하면. 이렇게 떨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단이 판친다. , 확신이 없지? 확신이 있어야 한다면서.

 

하나님이 없다면, 이세계의 질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답이 없는 세상에서 과연 단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나야, 이 세계를 해석할수 있게 된다.

그의 창조, 세상에 대한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오심, 그의 죽으심, 부활, 성도들의 예수님 전함이 하나의 끈으로 묶여져있다.

 

하나님의 흩어진 양들을 불러모으는 게 성도들의 일이라 한다. 나는 내자신이 달아나려는 양이어서, 누군가를 불러모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믿음이 헛것이고, 만약에 내가 하나님없는 삶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그럴 수 있을까? 내 가슴이 먹구름으로 덮여 나는 더이상 세상을 살 흥미를 못느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 없는 삶,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을 생각할 수 없으니, 이것을 역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수 있는 것일까?


 

요즘엔 많은 꿈을 꾼다. 꿈에서 생각도 못한 범죄를 저지른다. 현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잘살고 있지만, 나의 육신은 언제든 죄를 지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갖고있는 염색체이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교회는 완전히 물갈이가 되었다. 목사님부터 신도들까지. 나를 포함, 옛물인 사람은 몇 안된다. 옛사람이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또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신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도의 기쁨을 누리는 자들과 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깊은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회개에서 믿음이 시작된다고 배웠으므로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