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시간, 3개월간
이날을 위해 그전의 40여년이 존재했던 것 같다. 과장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지난 3개월간 하루에 1시간을 투자해서 정독에 가까운 성경완독을 끝냈다. 내안에 보물이 쌓였음을 느낀다. 이를 함께 나누고 싶다.
하루아침에 성경읽기를 결심해서 끝마춰진 것은 아니다. 내 믿음과 삶의 전 존재가 그쪽으로 쏠렸었다.
위기에 처한 신앙을 건져올리고 싶었다.
신앙의 방황을 하는 동안 인내를 갖고 말씀을 듣고 공부하며 시간들을 참아냈다. 그리고 여러 설교문들도 찾아읽었다. 혼돈을 주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신앙생활이 그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전 존재를 바치지 않으면 안될, 매우 심각한 어떤 삶의 결정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 성경을 읽지 않고는, 의심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성경에 나를 맡겨보자,,,,, 그래서 시작했다.
지난 연말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컴퓨터가 있던 선룸을 치웠다. 컴을 다른데로 옮겼다. 작은 소파를 갖다
놓고, 그곳에 카페트를 깔았다. 그 앞으로 원탁 테이블과 의자를 한군데에 놨다. 반사형 전기히터가 의자 뒤에
놓여있다.
그런대로 새로운 공간이 하나 마련됐다. 집안의 중심으로부터 멀고, 부엌과 가까운 곳이다.
매일 저녁 8시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등 뒤에는 주황색 빛을 발하는 히터가 켜져있다. 등어리에 따뜻함이 감돌면, 마음에 안정이 오고 집중이 된다. 앉을때는 대충 시간을 확인하지만, 마칠때는 시계를 쳐다보지 않는다. 대충 한시간쯤. 대부분 이 시간이 지켜진다. 몸의 시계가 아주 정확해짐을 살아가면서 느낀다.
성경을 읽기전에 잠깐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성경곁에는 노트가 준비되어 있다. 중요한 구절은 기록한다. 이해못하는 부분에서는 브레이크를 건다. 한글자라도 건너뛰지 않도록 노력한다. 빨리 읽을 필요는 없다.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도를 내고 싶은 욕구와 잡념을 잘 다스리는 것이 관건이다. 마음에 깊은 감동이 있는 부분에서는 한참 멈추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읽어버릴려고” 하는 마음을 없애는 일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정리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축복과 사랑의 개념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액자화되어서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많은 성구들이 연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런 내용들이다. 말하자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등의 구절.
그런데, 그런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용서가 없으셨다. 참으실만큼 참으시지만, 그래도 회개하지 못하면, 그들을 다 쓸어버리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함으로 인해 마음 상하신 하나님, 진노하는 하나님을 구약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소돔과 고무라를 멸망하실때나, 노아의 홍수때, 죄된 인간들을 벌하시면서 하나님은 탄식하시고 슬퍼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하실때 의인들을 옆으로 갈라놓으셨다.
하나님을 믿는 가족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셨다. 그것이 소망이
된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의 회개에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기도 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완악하여 그 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가령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함으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때도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번 경고를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했다.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아 애가서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해서 받는 고통이 자세히 나와있다.
여러번의 경고가 먹히지 않으면 하나님은 징벌을 내리셨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음행한 두 자매로 표현한 에스겔서를 보면 그들의 죄의 추악함을 알게 된다.
구약성경을 먼저 읽고 신약성경을 연이어 읽는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뤄진 것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설교는 더욱 어렵다. 말하자면 네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말도, 그것이 말이기에 쉽지, 가능한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것이다 하는 말도 어렵다. 가시에 찔려도 아픈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깨닫는다.
성경은 “세상사람들아,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세상을 창조했고, 내게는 인간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
너희가 나를 모른다고 하든지, 안다고 하든지, 나는 존재하는 너희들의 신이다. 그를 알라”고 주장하신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아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과 관계를 맺으셨는지, 그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안에 머물수 있는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보이는 것도 의심하는 마당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어떻게 생기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며 성령의 인도를 간구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동안 세상에서는 여러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성경말씀을 들려주고 싶었다. 잠언 같은 것.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도 잠언 말씀에 따라살면 세상에서 승리할 것 같다. 완전히 바르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승리해서 무엇하겠는가? 인간세상에서의 승리는 풀의 꽃같아서 풀도 시들고 꽃도 시든다는 말씀이 전도서에 있었다. 허무하다는 것.
우리가 이뤄야 할 것은 인간세상의 승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아채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일을 믿고 기다리며, 전하는 것이다.
1월부터 3월까지 매일 저녁 시간에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하루 이틀 토론토에서 유숙한 것을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 전화가 많이 오지 않았고,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다.
사실은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밤 8시로 성경읽기 시간을 잡았었다. 나혼자 있는 시간에 모르게 하는 것은 나의 노동?이 적절히 이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교육이 되리라는 기대도 있고 하루를 정리하는 의미도 있고.
그런데, 사실 그다지 좋은 시간은 아니다. 일단 조용하지 않다. 아이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자주는 아니나 전화도 오고, 집중을 방해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내가 가장 아끼고 즐기는 시간이 있다면,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난 다음, 8시30분부터 시작되는 아침시간이다. 티를 마시면서 밤사이 컴퓨터속 모든 친구들이 안녕한가 확인한다. 세상의 뉴스에 휩쓸리고 하면서.
그 시간은 말하자면 나의 “프라임 타임”이다. 누구하고도 나누고 싶지 않은. 아무래도 그 시간을 성경읽기로 돌려야 할 것 같다. 필요하다면 다른 시간을 이용해 나의 “엔터테인먼트”에 활용할 수 있다.
하나님과 모처럼 가까와지기 시작했는데, 나의 오래된 습관을 바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내게 더욱 유익해지지 않을까 싶다.
3월 27일에 성경을 끝냈고 그담날부터 아침시간으로 옮겨 그동안 적어놓은 노트를 훑었다. 성경읽을 때의 감동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정하고나서 보니, 매일 밤마다 어쩌면 일이 그렇게 많은지. 아침에 읽지 아니했다면, 성경말씀 읽는 시간을 지키느라 애를 써야 했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90일 동안 하루 1시간 투자하면 성경을 정독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나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을 어찌 그리 어렵게 생각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반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도 아주 많이 반복되어진다. 지루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복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나열하기에 지면이 부족하다. 밥을 매일 먹듯이 성경을 매일 읽을 것을 나자신과 약속해본다.
내 영혼과 생명을 위하는 기초적인 돌쌓기, 앞으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계속되어지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