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말할까?
우두두둑 창을 때리는 빗소리와, 그 빗소리보다 더 크고 살벌한 바람소리 때문에 새벽에 잠깐 깨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졸린 눈으로 집안의 문들을 점검했다. 어떤때는 바람에 덜 잠긴 문들이 휑하니 열어젖혀진 때도 있었다. 어쩌면 집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그런 성긴 문들이 반증하는지 모르겠다. 여력이 생기면 문의 잠김상태를 조사해서 고쳐야 할것도 같다.
그렇다.
이렇게 많은 생각의 줄거리가 집으로 흐른다.
이 "집사건"은 지난해의 가장 큰 내용을 형성한다. 남들 안가진 집을 처음 장만한 것처럼 떠벌이가 된 것이 창피해질때가 많다.
부끄러움도 나의 기록이라는 "용기"가 그런 글들이 삭제당하지 않고 무사한 이유가 된다. 설사 지운다 해도 이렇게 다시 거론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으니, 그건 나의 의지 저밖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집에 오면 정말 글을 많이 쓰게 될줄 알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도 이제는 "글다운 글"을 쓰라는 주문을 해주기도 하였다. 눈을 들어 밖을 보면,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를 가득채우는 이곳에서, 나는 자연에 도취하든지, 생각에 도취하든지 그런 글들을 양산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조잡한 "집"에 관한 글밖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내딴에는 변명도 있다. 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타자에 익어버린 내 인터넷 글쓰기는, 컴퓨터의 위치와 상관이 있다. 아이들이 주로 자리를 지키는 지하 컴퓨터실에는 가고싶은 생각이 안든다. 그러고 남은 공간은 남편의 공부방인데, 그건 남편이 없는 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고, 책상의 위치가 또 마음에 안든다. 노트북을 전망좋은 곳으로 이동해보기도 하였지만, 노트북이 내는 전자음에 질식당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는 "소리 알레르기"가 있는듯 싶다...
어떤 환경에 처하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것들이 갖고 있는 함정들을 이곳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밖을 볼수 없고, 아이들이 바로 곁에서 떠들어대는 그 전의 집의 환경에서도 나는 딴에는 열심히 타자를 치곤 했었다. 무언가 영감을 받은 것처럼 새벽에 일어나 밀린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 같다.
내 자신의 소리가 없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그래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이니, 없는 음성을 모아서, 하나의 소리로 만들어서 발표해왔다. 내 작은 공간이 썩 알려지게도 되었다. 물론, 내 방의 거품을 나는 안다. 몇번의 블로그 기사가 확대 소개되어 낯선이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리곤, 그 낯선이들과는 질이 다른, 낯익은 분들도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 회전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관계로, 누구의 험담을 대놓고 하지 않았으며, 나의 치부도 적당히 가려가며 이 공간을 꾸며왔기 때문이다.
주몽과 연개소문을 본다. 이제 초반이다. 주몽은 상당히 짜임새가 있다. 그들은 한가지에 자신들을 몰두시킨다. "나라의 이익"이다. 그 나라라는 것이 현대에는 없는 그것이다. 그들이 피를 흘리고 싸워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나? 의문이다.
그렇게 몰두할 가치있는 것이 어디에 있나? 시대를 넘어, 공간을 넘어 의미를 가지는.
그것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목청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억지로 입을 연다 한들, 누구 하나 알아듣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내 마음안이 정돈되었으면 한다. 내가 제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면, 주인의 자리를 비워놓아야 한다.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세상일에 분별력이 있기를 기도한다. 필요할때 사용되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나를 단련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