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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수술

"평소에도 그렇게 참을성이 없으신지?"

"물리치료를 바로 하지 않으면 뻗청다리로 살수도 있는데, 왜 운동을 거부하시는지."

"이렇게 비협조적인 환자는 처음본다. 아무래도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엄마를 돌보는 막내여동생에게서 심각한 톤의 전화가 왔다. 엄마가 물리치료를 거부해서, 큰 곤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물리치료사가 엄마에 대한 염려가 심하다면서 그녀의 걱정을 전해준다.

 

무릎관절 교체수술을 받으시고, 재활병원에 옮기신 후로 벌어진 일이다. 물리치료를 바로 하지 않으면, 뼈가 굳어서 수술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 물리치료사의 협박(?)이었다.

 

팔순의 고령에 두 다리 무릎관절을 인공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결심한 것만도 큰 일인데, 수술을 향해가는 과정도 복잡다단하였다. 전문의와의 만남, 수술에 앞선 교육, 여러가지 검사 등을 거쳐 지난 4월30일 수술날짜가 잡혔었다.

 

수술전날 엄마집에 가서 함께 지냈다. 그날밤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잠이 들었는데, 엄마는  상념때문에 한잠도 주무시지 못하셨단다. 수술실에서 마취하면 오래  잘테니 상관없다고 하신다.

 

 

 그날, 나와 큰언니 부부가 갔었고, 교회 목사님과 권사님등이 기도해주신다며 방문했었다. 집도의는 인상좋아보이는 백인의사였다. 그는 "지금부터 내가 이분을 돌본다. 걱정하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내게 말한다. 의사소통이 영어로 되지 않는 엄마를 수술실앞에서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밖에 나왔다.

 

아침을 거른 나는 김밥을 사가지고 병원복도에 언니와 앉아 담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술실에 들어간지 1시간 반쯤 후에 보호자 대기실로 돌아가 한참을 기다렸다. 수술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 어떤 간호사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엄마의 보호자를 찾았다. 그러면서 외마디로 알려준 사실은 "수술이 취소되었다. 어디 있었느냐, 한참 찾았다. 3층에 가봐라. 엄마는 괜찮으시다"라면서 간호사 가운을 펄럭이면서 사라진다.

 

3층에 가니, 병원침대에 누워계신 엄마가 보인다. 간신히 눈을 뜨신 상태시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짧게 설명해준다. 마취를 마치고 수술에 들어가려고 하니, 심장이 불규칙하게 박동해서, 수술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심장의의 보호관찰이 필요하단다. 수술은 그후에 다시 거론할 것이라는 말이다.

 

마취에서 깨어난후 보호자(나)를 찾지 못해 한인간호사에게 통역을 부탁해서 엄마께 수술이 취소되었노라 알려주었단다. 이런 모든 일을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난후에 알게 되었으니. 수술 보호자로 참석하여, 내가 필요할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고 딴전을 피웠으니 나(와 언니)는 얼굴을 들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어쨋든 그런 경과를 거쳐 그날 심전도를 다시 찍는등, 몇차례 더 검사를 받아야했다. 다리 수술하러 들어갔다가 심장병 환자가 되어버린 엄마는 정신적 공황상태처럼, 의욕이 없고 기진해가셨다.

 

이틀후에 심장의의 퇴원명령과 함께 심장병약을 먹게 되었는데, 이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심하고, 매주 채혈하여 피의 농도를 살펴봐야 하는등, 노인이 감당하기엔 어려운 주문들이 많았다.

 

"그깟것 수술 안하고 심장병약도 안먹는다. 나는 심장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하셨다가도, "의사 말을 들어야 한다"는 자식들의 권유 때문이었는지, 약복용과 채혈을 한달 이상 하셨다. 꾸준히 심장 치료를 받은후 심장전문의의 확인 사인이 떨어져 엄마의 다리 수술이 6월 27일로 잡혔다. 첫 수술 결정후 두달후의 일이다. 기다리는 날들 속에 엄마의 팔순잔치도 끼어있어서, 엄마의 마음이 포근해지셨고, 두렵던 마음이 많이 풀어져서, 다시 수술해준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겠다는 각오까지도 더욱 굳어져갔던 것 같다.

 

첫 수술에서 "푼수"를 떨었던 "나" 대신 미국의 동생이 매해 캐나다 친정방문겸해서 오는데, 시일을 앞당겨 일찍 오기로 해서 엄마의 수술을 지켜주기로 하였다. 간호사의 말을 거의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시니, 언제나 엄마곁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어려움 이라면 어려움이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수술후 사나흘 후에 재활병원으로 옮겨 물리치료를 받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재활병원에 옮기기까지 종합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엄마가 고분고분하고, 모든 게 순조로왔던 것 같다.

 

먼곳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귀는 엄마를 향해 열어놓고 있었는데, 재활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그리고 미국동생에서 막내동생으로 간병인이 바뀌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엄마가 통증을 호소하고, 재활운동을 거부하신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은 "엄마가 당장 운동을 하지 않으면 다리를 쓸수 없을 것"이라며 급전을 보내왔다. 엄마의 병문안 갈 날을 고르던 먼거리 자식들이 불에 덴 것처럼 모두 일제히 몸을 움직여 토론토의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의 호소인즉, 재활병원에 오니 가기로 되어있는 병실에 있던 환자가 나가지 않아, 임시로 구석에 처박아 놓더니, 이제는 또 언제 옮길지 모른다면서 병실에 넣어졌는데, 그것이 2인 특별실이다. 아무리 방이 좋대도 임시로 넣어놓으니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될뿐더러 갖고온 짐도 풀지 못하고 있단다. 그런 와중에 물리치료사는 아직 아픔이 성성한 무릎을 보호하고, 관심쓰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의 실적을 채우려 엄마를 억지로 치료실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신경을 많이 쓰면 "혼수상태"가 되는 병이 있는 엄마는, 마음에 차지 않는 물리치료사가 와서 떠들면 속이 뒤집히고, 혼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런 것들에는 아랑곳없이 물리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난리라고 푸념하셨다. 간병한다고 와있는 딸이 엄마의 상황을 대변하지는 않고 물리치료사의 말을 안듣는다고 구박하니, 얼마나 야속한지 모르겠다고도 하신다.

 

무릎관절 수술을 받은 한국의 언니와 긴급통화를 주선하고, 온 가족이 진정으로 엄마를 위로하자,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하였다. 어쨋든 이날의 회동 효과와 수술후 극심했던 통증이 조금씩 완화됨으로 인함이었든지, 엄마는 물리치료에 열심을 내시기 시작하셨다. 다른 이들은 다 보내고, 나는 병원과 가까운 엄마의 집에 머물면서 아침일찍 출근해서 엄마와 보내고, 저녁에 퇴근하는 간병인 생활을 했다.

 

병원생활을 해보니, 엄마가 물리치료사를 왜 그리 싫어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스스로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서, 주변을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까다로운 환자(우리 엄마)를 맡게 되어서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 그렇지만 얼마나 잘해내고 있는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태도이다. 뭐 좀 오해해서 보자면 말이다.

 

엄마의 처지를 설명하고, 어지럼증 때문에 그랬다, 이제 괜찮아지실 것이라고 말해도, 자신의 병원생활중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썰썰 흔들어대곤 하였다. 게다가 그 환자의 딸(막내동생)이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환자를 닥달하니, 기고만장해지기도 했을법.

  

주말에 하는 물리치료사와는 호흡이 맞아서, 엄마는 열심히 하셨다. 한 3일간 있는 동안 엄마는 완전히 평정을 찾으셨다. 말 잘듣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신 것이다. 엉덩이뼈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중인 옆 침대의 환자는 자신을 가정의라고 소개했는데, 그녀는 "당신의 엄마가 너무 귀엽다"고 몇번이나 말하곤 하였다. 1달간 혼자 병원생활을 잘 감당하셨고, 가까운데 자식은 엄마 음식을 챙기고, 먼데 자식은 가끔씩 얼굴을 비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퇴원할 때는 그동안의 경과가 좋아, 병원 환자들과 관계자들이 박수까지 쳐주었다면서 흡족해 하셨다.

 

이런 긴 과정을 거치고 엄마는 지금 많이 회복되셨다. 집에서도 교육받은 대로 물리치료를 열심히 하시는 모범환자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역시 우리 엄마시다.

 

그러나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플때, 마치 딴사람처럼 변한다. 재활치료 초기에 엄마가 보여줬던 극심한 불신과 공포 등을 보면서 그런 걸 느꼈다. 그럴때 주변에서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미덕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주에는 우리들과 캠핑도 함께 가셨었다. 밤새 고스톱을 치는데,  자식들의 웃음을 모두 당신 속에 담아두셨다가, 엄마안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뎃셈을 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즐거움을 표현하신다. 

 

그동안 고스톱을 치면서 놀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오락이 이렇게 히트할 줄 몰랐다. 아니, 엄마에겐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운 것 같다. 예전같은 무릎통증은 없다 하신다. 엄마의 수술과 재활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