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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괜찮은 만남들... 두울, 작은 음악회

지난 11월 여자 다섯이 만났다. 매월 돌아가면서 한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그날 마침 우리집에서 열렸었다. 12월 모임을 계획하면서,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신체의 여러가지 변화로 고통을 호소하던 경순언니가 최근에 많이 명랑해지고, 다정해지고, 정성스러워 지는등...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되어졌었는데, 그런 이유의 하나가 "플룻 배우기"에 열중하고 부터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순언니에게 툭하면 "플룻 한번 불어주면 안돼에~`"하고 부탁하곤 했는데, 음악연주는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부탁하는 것은 실례라는 것도 그 언니를 통해서 알게 됐다.

 

어쨋든 경순언니 플룻연주도 듣고, 피아노에 재주있는 인경언니 연주도 듣고, 그리고 종화 언니의 독창도 듣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좀 특별한 모임을 준비하자는 의견이 무게를 얻기 시작했다.

 

"연주"라고 생각하니, 당연 드레스가 떠올랐다. 누군가 한국 여자 탤런트들이 인사할때 왜 가슴을 부여잡고 인사하느냐고 물으니, 아는 것 많은 정옥언니가 그들이 그렇게 인사하는 이유는 파인 드레스를 입어서 굴곡을 감추느라  그렇게 가슴을 살포시 누르며 인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들도 그런 인사를 좀 해보자고, 드레스입고 하는 우아한 파티 계획을 조금 더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여자만의 만남이지만 특별한 때이니만큼 남편들도 부르고, 가까운 이웃들도 초청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바로 규모가 커져 버렸다.

 

복장은 여자 드레스, 남자 양복, 음식은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파티음식과, 음료수와 약간의 포도주.... 이런 것이 초안이었는데 파티날짜가 가까와오면서 약간의 굴곡이 있었다. 우선 내가 담당했던 초청인사들이 "초청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조금씩 마음이 움추러들기 시작했다. 남편도 "양복은 무신!!!"하면서 옆에서 "딴지"를 걸었고, 우아한 홀에서 할것도 아닌데, 음식접시를 들고 왔다갔다 몇시간 동안 그렇게 하는 것도 영 마땅치 않게 생각되고.... 그래서, 전화오는 사람들에게 "그저 편하게 입고, 음식은 일단 잘 먹어야 하니, 국도 준비하고..." 이렇게 모임의 원칙을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

 

인경언니네가 모텔을 비울수 없어서 그날 참석하기 어렵다는 전갈을 주었기 때문에 장소를 모텔에 있는 살림집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인경언니네는 집은 고더리치에 있고, 모텔집은 가끔씩 이용하는가 보았다. 어쨋든 약간의 눈발을 헤치고 달려가니, 처음 보는 얼굴들까지, 많은 분들이 와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열고 등장하신 분들은 2부부였는데, 그분들 모두 처음 우리가 계획했던 "드레스 파티"에 맞는 복장을 하고 나타나셨다.

 

"옷이 날개라더니.."

 

자신들만 빼고 모두 평상복인 우리들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지만, 경순언니네와 유진이씨 내외가 없었다면 그날 모임은 평범하게 끝이 났을 것임에 틀림없다. 유진이씨 남편은 그날 막내 참여자로 한국에서 플룻연주를 해온 베테랑으로 경순언니와 그동안 듀엣연습을 하는등, 이번 자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오셨었다.

 

매월 만나던 여자들과의 인연으로 그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진지한 자기 소개를 했다. 그중 인상에 남는 분은 이민 3일만에 가게를 오픈했다는 플룻주자. 자신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고생좀 했노라며 "꽃미남"같은 웃음을 웃는다. 모두 50대 아래위로 걸쳐있는 우리들이 보기에 아직도 30대의 호리호리한 그는 "꽃미남"으로 보이기에 족했다.^^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면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려자를 만나야 될 것 같아서 한인모임을 수색했는데, 교회 모임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평생하는 공부(부인이 학업차 캐나다에 와있었댄다)니, 그것보다 중요한 동반자를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꼬셨단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만드는데,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데서 또한번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인구 200명 마을에서 가게를 경영한다는 연화씨 부부. 도시에서 살다, 너무 작은 시골에 오니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마을의 "유지"가 되었다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인구 1,000명의 마을에서 장사하는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대도시에 속한다 할수 있을 것 같다. 내노라 하는 비지니스업체는 자신들의 가게밖에 없다고 말한다.

 

토론토에서 살다가 우리가 파티하는날 시골로 이사온 "인순언니"도 있었다. 그 언니는 오랜 이민살이에 남은 것은 없지만, 비로소 이민생활이 할만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색적인 발언을 했다. 비지니스로 벌었던 돈을 다 까먹는 불상사가 발생해서 시골로 이사오게 됐지만, 이민생활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그런 이들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다.

 

이날 모인 이들은 모두 시골생활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게, 모텔업등 비지니스를 하고 있었고. 회사생활을 하는 정옥언니네는 "좋은 회사생활을 하는 능력있는 남편"이라고 모두가 추켜세우는 가운데, 정옥언니는 자신이 "일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 안타까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서로를 잘 알게된 후 벌어진 작은 음악회. 피아노가 없는 관계로 인경언니가 반주하기로 한것은 무산됐지만, 경순언니와 미스터 꽃미남씨의 듀엣, 그리고 경순언니의 열정에 찬 연주...

 

지난 3년간 꾸준히 레슨받고 연습했다는데, 손가락 길이가 짧은 자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연주는 훌륭했다. 연주의 문외한이 듣기에도 그녀의 음악은 힘이 있고, 정감이 있고,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종교음악을 전공한 종화언니의 독창 보리밭과, 주기도문도 그날 밤을 수놓으며 모텔지붕위로 울려퍼졌다. 단순하고 맑게 살아가는 그 언니의 삶과 음악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언니라고 이렇게 점수가 후한 건 아니다.^^

 

 

 운동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유명한 사람, 잘하는 사람들이 잘 꾸며진 무대(운동장)에서 하는 것도 멋스럽지만, 이렇게 가까운 지인들끼리 모여서, "생" "음"을 듣는것은 대단한 영광이자 즐거움이었다. 이민온후 처박아 두었던 양복을 처음 꺼내입었다는 고수환씨(이름이 맞는가 모르겠다)가 반주음악 씨디도 들고오고, 무대를 빛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의 전문적인 연주도 일품이었다.

 

오래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부부 동반 모임에 "술"이 주가 되진 않는 것 같다. "술"이 없어도 꽤 흥미로운 모임들이 이뤄지고 있다. 요즘 나는 그걸 유심히 관찰중인데, 이것이 더욱 깊어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