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한인교향악단의 41회 정기연주회가 있었던 16일밤 토론토 아트센터에는 토론토뿐 아니라 온타리오 인근 각지의 한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국악과 서양음악이 협연한다고? 어떤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가 공연장을 향하는 한인들의 표정에 서려있다..
국악 협연자 장문희(판소리), 박달님(가야금), 이향윤(대금)씨를 소개한
프로그램 안내책자. 왼쪽 밑은 지휘자 리차드 리씨.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대한 관심도 물론 있었겠지만, 판소리, 가야금, 대금 공연이 있다는 말에 표를 예약한 한인들도 다수는 되는성 싶었다. 필자와 동행했던 5명도 순전히, 시원한 판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고향의 소리꾼들이 오니, 향수를 달랠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들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정갈한 공연장, 공연 시작전임에도 카메라를 누르지 못하게 하는 완벽한 실내 통제와 프로그램 도중에는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고, 곡이 끝났을때 늦게 도착하는 이들을 자리로 인도하는 것등, 공연장의 면모에선 흠잡을데 없었다.
매해 두번 정기공연을 갖는 캐나다 한인 교향악단은 말 그대로 한인들로 구성된 악단이어야 하겠지만, 절반 가량이 백인 흑인등 타 인종이었다. 프로 세계에서는 국적 불문, 태극기를 가슴에 달면 그가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쯤 알지만, 음악계에서 이렇게 다시 그런 현상을 대하니, 뭔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진다.
연주가 끝나고 인사하는 전라북도 도립국악원의 이향윤, 박달림, 장문희씨.(왼쪽부터). 그리고 왼쪽 끝은 지휘자 리차드 리씨.
공연은 동양적이며 이국적인 분위기의 곡을 많이 삽입해서 준비했다고 지휘자 리차드 리씨는 소개했다. 특별히 그가 애정을 갖고 언급한 John Psathas(1966년)의 Abhishkeka(1998년)란 곡은 상당히 특이했다. 서양악기가 연주하는 동양의 소리라고 할까? 곡해설에 보면, 작곡가가 스님의 책에 감명을 받고 느리게 작곡한 곡이란다. 박진감 넘치는 선률대신, 반음의 효과를 최대한 살린 굴곡이 없는 음악이었다. 곡 흐름상 평안함을 느꼈어야 했건만, 개인적으론 좀 늘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교향악단이 이번 연주회의 주제에 맞춰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장내를 가득채운 캐나다 교민들.
두번째로 전라북도 도립국악원 대금수석 단원인 이향윤씨의 대금연주가 있었다. 이생강류 대금산조 협주곡인 “죽향” 이었는데, 대금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소리가 이씨의 화사한 하얀한복과 어울리며 울려 나왔다.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소리에 익숙해진 귀가 순식간에 대금 악기 하나의 소리에 몰두해야 했기에 약간은 왜소한 느낌도 들었다.
이런 상황은 가야금 연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25현 가야금 협주곡 “한오백년”은 오케스트라와 가야금의 협주였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묻혀 가야금 소리가 살아나질 못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잦아들때, 박달님씨는 혼신을 다하여 가야금을 뜯었지만, 소리에 있어 적정 비율이 이뤄지지 못한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절반의 외국인 연주자들이 한오백년을 바이올린으로, 첼로로, 플룻으로 가야금 소리에 맞춰서 연주했다. “한의 음악”이라는 한국음악의 정서상, 눈물짓게 만드는 한오백년의 곡조는 서양음악과 만나, 평이한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드뷰시의 곡을 후배 작곡가가 편곡해 지어진 모음곡(Petite Suite)이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끝나고, 마지막 국악의 피날레로 춘향전 옥중가중 “쑥대머리”가 공연되었다. 판소리 자체가 아니라, 이곡도 오케스트라의 보조연주를 곁들이며 했는데, 많은 순간 판소리의 소리가 묻혀버린다. 판소리를 들으며 그간에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보고자 했던 사람들에겐 아쉬움이 많이 남을 공연이었다. 그래선지 앙콜을 부탁하는 박수소리가 이어졌지만, 판소리를 열창한 장문희씨는 다시 나와서 인사만 더했을뿐, 앙콜송을 주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특별출연으로 캐나다로 건너온 세분과 교향악단이 서로 소리를 맞춰보는 시간이 짧았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가야금 1명과 오케스트라, 판소리 1명과 오케스트라, 우선 그 환경이 서로를 잘 드러내줄 수 있는 구성이 아니었던듯싶다. 동서양의 소리의 화합이란 측면에서는 너무 역부족이었던 것이 아니었나.
마지막으로 교향악단이 들려준 차이코프스키 호두까끼 인형 모음곡이 연주될 때는 바이올린을 손으로 톡톡 튕겨내듯 연주해 마치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같은 음향효과를 내기도 했다. 하프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면서, 가야금 소리와 비교하게 되기도 하였다. 국악기에 큰 점수를 주고싶은 마음은, 음악에 앞서 국수주의자의 모습이 아닐까 씁쓰레한 웃음도 짓는다.
동서 음악의 만남은 그렇게 쉬운 과제가 아님을 이번 연주회를 통해서 보게 됐다. 국악에 주안점을 둔 협연이었지만, 국악이 소리의 크기에서라든지 협주자를 뒷받침할만한 역량이 되지 못할때, 불협화음이 일어남도 보았다.
가야금 연주는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맘놓고 튕길때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도 풀어지는 것인지, 이번 가야금 연주는 서양악기 연주처럼 의자에 앉아서 하니, 가야금도 서양악기의 하나로 편입되는 인상을 받는다.
프로그램의 곡 해석에 보면 “한오백년은 기존의 가야금의 음계적, 음역적 가능성을 넓히기위해 개량되어진 25현 가야금의 다양한 연주기법과 기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한국종합예술학교 서양작곡자이신 이건용 교수님이 국악관현악으로 작곡하신 곡이다. 이 곡을 다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위해 재편곡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사실상 동서양의 음악이 서로 만나는 작업들이 곳곳에서 진행중임을 알게 된다. 퓨전음악이 제 맛을 지닐려면 시간이 걸릴 것같다.
영어가 편하다는 2세 지휘자 리차드 리씨는 연신 땀을 닦으며, 열정적으로 연주단을 이끌었다. 음악선곡부터 모든 감독을 맡은 그는 교향악단의 고등학생 단원으로 활동해 성장한 한인음악계의 대들보중의 한명으로 보인다. 그의 시도와 이를 따라준 연주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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