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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슬로우 모션의 날들..

12월이 들어서면서, 날은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아직도 한 해를 다 보낼려면 몇 시간이 남아있고, 그안에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면 된다. 그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들도 일정에 쫓기는 사람들이라면 하루이틀이면 해결될 것들을, 느린 걸음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처럼 아주 조금씩 손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해 안에 다 못한다고 해도 큰 문제될 게 없다. 숙제검사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이 해의 혜택이라면, 어떤 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 며칠, 행동 몇시간 이런 식으로 해왔으니, 그 생각 자체를 물고 있으면서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음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행태들이 너무 게으르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느슨한 삶같아서 조바심이 났다. 반은 즐기면서, 반은 조바심하면서 그렇게 보냈다는 말이다.


나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넘치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한다. 감정도, 행위도, 쇼핑도, 음식도, 말도, 글도, 패션도.... 흠, 말하자면 쪼잔함을 넘어서, 너무 심심하고 지루해 죽을 정도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심심함을 바탕에 깔아놓으니, 작은 파장들을 깊게 느끼는 부가수익을 얻기도 하는 것일지.


어쩌면, 나는 나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것들도 넘치지 않게 하고 있으니, 언젠가 넘치는 일들이 내게 달려들면 나는 그것들을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너무 덜 바쁘다고 생각하고 있고, 힘껏 생활하진 않는다고 믿고 있다. 


12월은 마치 보내기 위해 있는 달처럼 그것 자체의 의미가 아니고, 2011년의 마지막달로서, 2012년을 맞이하기 위한 달로서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바쁜 12월에 만나는 시간들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스케줄이 꼬일만큼 그렇게 많은 일들이 줄나라비 서있지도 않았고, 모든 지인들이 다 만나자고 해도, 그 만남들을 그간의 경험으로 일목요연하게 배치할 능력도 있다. 말하자면,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울 사건들이 부족했다.


매년 있던 가족들 모임이 올해는 신정으로 옮겨졌다. 크리스마스를 무력하게 만들기 시작한 게 몇년전이었다. 서양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온 가족별로 선물을 준비하던 때도 있었는데, 한해는 선물을 없애고, 그 돈을 모아 가족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던 적도 있었고, 한해는 아이들에게만 선물하기도 했고, 어떤 해는 퀴즈와 게임으로 준비된 선물들을 나누기도 하였다. 선물에 비중을 두지 않는 크리스마스날이 되니, 사실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재미없는 캐나다를 떠나 가족중 절반 이상이 시카고 가족들을 찾아 여행을 떠났으니, 올해야말로 최고로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아이들은 우리 핵가족이 모여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었다. 아이들마저 없다면, 심심함의 극치를 이룰 뻔 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비건들을 위한 터키 두 팩을 구해서 오븐에 구웠다. 두부로 만들어진 그 터키는 굽는데만도 3시간 이상이 걸려 기분낼만 하였다. 쫄깃쫄깃한 고기맛까지 있어서 우리집의 두 비건(야채주의자)들은 즐거워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육류를 먹지 않기로 했으면 "깨끗하게" 포기할 것이지, 고기맛처럼 만들어진 두부 터키를 맛보면서 좋아하다니. 비건 그레이비까지 만들었다. 나는 묵과 야채탕, 호박죽등으로 크리스마스 가족 식사를 준비했다. 후식으로는 엄마가 선물해주신 아이스와인을 준비했다. 


가게문을 닫고 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저녁시간 엉뚱한 공상을 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모든 가족이 즐거운 만찬을 앞두고, 음식을 준비하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그 집의 가장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 그리고는 한통의 전화..


남편의 귀가 시간에 맞춰 음식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배가 고파 손가락 시식을 주저않는다. 모든 준비가 끝나서, 서성거려도 남편의 차 불빛이 창문밖으로 보이지 않았다. 8시 30분에 도착해야하는 사람이 9시가 가까와오도록 흔적이 없다. 나는 마치 공포영화의 그 장면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웃으며, 음식앞에서 서성이고,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그러다가 그가 왔다. 엔딩은 단란한 한 가족의 특별한 저녁시간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이틀전에는 가벼운 talk로 2011년을 마무리하는 행사를 마쳤다. 


모두 제길에서 충실히 나아가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새해 포부들을 밝혔다. 대학생이 된 두 딸들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래는 겨울 휴식을 맞아 집에 와서 하는 말이, 3달러 남았단다. 누구도 어떤 선물도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그애는 9월부터 12월 초까지 자취방 월세부터 생활비, 교재비까지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 학비만 우리가 내주었을 뿐이다. 11월 중순쯤 돈이 많이 남지 않았대서, 보내줄까 했더니, 한번 견뎌보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단지 3달러를 남기고 모든 것을 알뜰히 썼다는 것이다. 여름방학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은 이렇게 잘 사용했고, 올 겨울 몇주 만이라도 일을 할까 했는데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없어서, 집에서 쉬면서 보냈다. 나름대로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부모가) 만족할만한 성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1년 반 남은 학기동안의 학자금 걱정을 한다. 지금까지 제길을 열어나갔듯이 잘 마무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1월부터 4월까지의 월세와 생활비는 우리가 대줘야 하겠지만, 어쨋든 한도내에서 생활한 그애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줄 모르겠다. 


저돌적이지 않고, 한 박자 느리게 가는 것같은 큰애지만, 모난 성격이 갈수록 둥글어지고 있는 것은 느끼겠다. 어렸을때 나와 으르렁거리고 많이도 싸웠는데, 이제는 그럴 사안들이 없어져간다. 제 친구들이 놀러오기로 한 날은, 집에 들어와보니 집안이 반짝거린다. 부엌부터 온 집안 청소를 했단다. 모든 것을 제자리를 찾아 가둘 건 가두고, 닫혀있어야 할 문은 닫고, 삐딱한 것 정리해놓으니, 집이 한결 정결해 보였다. 남편도 나도, "엄마보다 더 청소를 잘하는 딸"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무리 제자리를 찾아넣어도 몇개는 꼭 있지 않아야 할 곳에 있게 만드는 내 청소법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되어있다. 엄마가 없을때 음식도 곧잘 해먹고, 막내동생에게 "라이드"도 해주니, 집안에 성인딸이 있는 것이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어쨋든 나래가 제몫을 찾아 하는 것을 보면서, 그애가 어렸을때 했던 걱정들이 많이 풀어져서 감사한 마음이다.


루미는 한 학기 코스가 아닌 일년 코스의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아직 전공과목도 아니고, 교양과목들인데 배우는 것들이 흥미롭단다. 철학을 특별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철학을 우습게 알았던 엄마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는지, 철학의 유용성을 때때로 말해 내 기를 죽인다. 고등학교때 했던 공부들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고. 어떤 과목의 시험성적은 90점 이상이라고 해서 우리를 놀래키고 있다. 제 언니는 1학년때 완전히 헤맸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2주간의 겨울방학 동안도 대학친구들이 보고싶다고 엄살을 부린다. 나보고는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것이 낫겠단다. "병약한 늙은 엄마"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그애가 있을때 한 이틀 좀 아프기는 했지만, 병원가서 검진받을 정도는 아닌데, 진지하게 권유한다.


요즘 나의 각진 눈은 막내 미리를 관찰하는데 많이 이용된다. 아직은 미덥지 않아서 말이다. 본인은 올 한해 친구찾아 뉴욕을 2번이나 갔다오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긍지심도 높아졌다고 자평했는데, 뉴욕갔다온 것도 친구들과 너무 어울리는 것도 영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사항이다. 학업에 충실해야 할 때인데, 아이들에게 인기나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아직도 어린 그애를 어떻게 잘 구슬르면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심심하다고 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던가? 


참 조용한 마무리다. 루미는 친구들과의 파티를 향해 떠나면서 엄마는 무얼 할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와.... 했더니, 당장에 어떤 친구냔다. 그래서 아빠... 했더니 웃는다. 남편과 여느날처럼 하루를 마감할 것이다. 작년 마지막날,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뉴욕 맨하턴 그것도 타임스퀘어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몇시간 갇혀있었던 것보다 훨 고상한 마침이다. 뭐 사실 날짜가 하루 달라지는 것뿐이다. 그래도 2011년의 마침표를 찍어야, 2012년으로 발걸음을 옮길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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