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나, 그리고 우리

같이 아팠다

같이 아퍼봤다.

남편은 오웬사운드 전염병이라 불렀다.

우리들의 행각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뭔 행각씩이나... 하겠지만 사랑의 도피행각만 행각이 아니다.

우리들의 행각은 "한솥 행각"이었다.


사건은 금요일날 벌어졌다.

금요예배 시간이 1시에 시작, 2시 30분에 끝났다.

평소에는 특별히 누군가 "제안"하지 않는한, 2부 모임이 없었다. 모두 꽁지빠지게 각자의 길로 줄행랑을 쳤다. 아니,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의 경우엔 그러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예배가 끝나고, 오웬사운드에 있는 목사님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나 보다.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자리. 경기가 좋을때는 여유있는 교인중에 점심을 사는 경우도 있었지만, 갈수록 몫돈 들어가는 게 어려운 형편들이 됨을 모두가 슬슬 깨닫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런 다음부터는 몇가지 반찬에 집에서 먹는 방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모님 댁에 있는 것들로 부터 시작했겠다. 나물과 밥을 먹기도 했고, 시레기국을 먹기도 했고,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매번 한집의 음식만을 동낼수는 없는 법, 음식거리들을 싸갖고 와서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한끼 식사로 간단한 떡만두, 칼국수, 비빔국수, 단팥국수, 짬뽕등을 만들어 먹었다. 각색으로 야채물을 들인 수제비를 먹기도 했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디어가 없어서 한번도 준비하진 못하고 얻어먹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지난주 금요일날, 모두의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는지, 결국 라면이 메뉴로 잡혔다. 

7명의 어른들이 10봉지의 라면에다가 양파, 복초이를 넣고 끓여먹었다. 라면이 당기지 않는다는 언니 한명을 억지로 붙들여 앉혀서 여느날처럼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라면이라지만, 함께 먹으니 얼마나 흥겨운가? 그날 나누었던 세세한 이야기는 잊었지만, 언제나처럼 만나서 즐겁고, 함께 음식을 나눠서 살가운 한솥 식구들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와서 컴퓨터앞에 앉아있는데, 아무래도 몸이 으슬으슬하니 춥다. 그리고 자꾸 라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오려 한다. 이불을 덮고 누웠다. 한참을 누워있는데도 발이 따뜻해지지 않고, 냉기가 온몸에 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별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들어오고, 그를 위한 상을 차리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신물이 자꾸 넘어온다.


그날 밤새 배가 뒤틀리고, 머리도 어질어질, 명치끝이 아프다. 체한 것같은 증상이었다. 라면을 먹고 체했다는 말에 남편이 믿지를 않는다. 다른 것을 먹었나 자꾸 생각해보란다. 귤과 가래떡 조금, 그 정도였다. 전부 토해내면 훨씬 속이 편하겠지만, 넘어오게 하는 것이 힘들다. 손가락을 집어넣으니, 속만 아프다. 힘이 들더라도 그저 삭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정수리, 양 손가락에 침을 놓고, 등도 두드려주고, 바쁘다.


새벽에 남편이 죽염물을 마시라고 갖다주었다. 약간은 비릿한(?) 죽염물을 마시고 났는데, 속이 장난이 아니다. 바로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욕"이 나오려고 했다. "왜 이따위 소금물을 줘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햇!" 하면서. 그런데 그나마 토하고 났더니 속이 조금 편안해 졌다. 그후로 몇번의 설사가 있었다.


그 다음날 저녁에 중요한 모임, 오웬사운드 실업인협회 송년파티가 잡혀있었다. 나는 그날 경품에 쓸 노트북 컴퓨터 2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 모임 홍보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라 "별 중요인물은 아니지만, 빠지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도록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아플때 내 친구가 되던 텔레비전 드라마도 볼수가 없다. 인터넷을 작동시키면서 드라마를 감상할만한 기력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임박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갔다가 일찍 오더라도 가긴 가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 질테니.


그날 모임에 갔다가 함께 라면을 먹었던 언니도 나와 똑같이 아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 모인 세명중 2명이 아팠고, 그 다음날 교회에서 확인해보니 7명중 5명이 똑같은 증상을 앓았다. 라면은 최근에 구입한 "진라면"이었고, 혹 라면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으니, 구입처에 알려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긴 했다. 그러나 꼭 라면 때문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날 같이 먹었는데 탈이 없었던 2명은 그전에 똑같은 증상으로 아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 감기"가 아닌가 하고. 여러 사람이 즐겨 먹는 라면에 문제가 없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바이러스처럼 우리들 모두를 강타한 "배 감기" 때문에 우리들의 "한솥밥"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같이 아파보니, 좀은 신기하기도 하다. 많이 달랐다, 우리들 모두가. 생활습관, 우선순위, 내향적, 외향적 그런 개별성 때문에 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특별나게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같은 방식으로 구토하고, 배앓이하고, 회복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우리들의 차이점이 뭐 그리 클게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플때 좋은 것도 있더라 내게는. 아픔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이 시간을 좀더 효과적이고, 별볼일있게 보내야지 하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간호해주는 남편이 고마왔고, 혼자서 아파야 할 혼자 사는 언니와 엄마가 생각났다. 아프지 않으면 그럭저럭 잘 지낼텐데, 아프면 어쩔까 걱정이 되었다.


인생에서 아픔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럴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복병처럼 숨어있는 그것들을 만날 것이다. 그때 너무 놀라지 말라고 이런 장치들이 중간중간 끼어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