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ce Maker 인가, Pace Maker 인가
영화제목은 "페이스 메이커"였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시청하다가 페이스 메이커라는 단어의 개념이 들어오지 않아 검색을 해보았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적은 소감에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Face Maker)"라 되어 있다. 혼란스럽다.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강력한 우승후보 선수를 위해, 작전상 고용한 선수를 페이스 메이커라 한단다. 우승선수의 "면"을 세워주는 사람인가? 아무래도 face maker 로는 의미가 연결되지 않는다. 잠시 그 생각을 접고 영화를 끝마친다. 영화시청후 체계적인 검색을 통하여 face maker(얼굴을 만드는 사람)가 아니라, pace maker가 맞다는 걸 알게 됐다. 속도를 만드는 사람, 속도를 조정하는 사람 그런 뜻으로 쓰인 것이다. 권위있는 신문에 기고한 권위있는 사람의 잘못된 단어 때문에 한참 혼돈에 빠졌다. F와 P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해할만하다.
p는 한국말 "피"를 발음할때 내는 그 소리다. 그러나 f는 윗이빨로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발음을 새어나가게 해야 한다. 두 입술을 붙였다 떼면서 나는 p 소리와는 엄연히 다르다. 아직도 방송에서 fax를 발음할때 많은 출연자들이 "팩스"라고 발음한다. 굳이 한국말로 표기하자면 "프흐 액스" 라고 해야할 것이다. 한국말에 f발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구별하는 데 애를 먹는 게다. 그리고 "페이스(pace)"를 face로 잘못 표기하게 되는 이유이다.
글의 시작이 혼돈스럽다. 영화로 돌아오자. 우선 페이스 메이커가 하는 일이 참으로 이상스럽다. 스포츠에 밝은 사람은 그 의미를 잘 알지 몰라도, 나는 그런 작전용 선수가 있다는 말에 어떤 배반감을 느낀다. 마라톤은 총 구간 42.195km를 달리는 운동이다. 전 구간을 속도를 지키면서 완주하려면, 힘의 분배가 꼭 필요할 것이다. 페이스 메이커는 30km까지 온힘을 다해 뛰면서 우승후보가 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30km 이상이 되면, 그때서 그 선수는 힘을 빼고 우승후보 선수에게 나머지 구간을 양보한다. 어떤 페이스 메이커는 총 구간을 완주하지 못하기도 하고, 페이스 메이커로 기용됐으면서도 전 구간을 완주, 우승하기도 해 이변을 낳는 선수들도 있단다.
공식 웹사이트에 소개된 "페이스 메이커"에 관한 기사를 읽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한 사람을 위해서 희생타로 고용된 선수라는 것 자체가 스포츠의 정신을 위배하고 있으며, 자신의 기록과 승리를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록과 승리를 위해 달려줘야 한다는 그 발상부터 말이다. 마라톤을 모르면 숫제 말을 말아야 하나. 이것이 현재 있는 마라톤의 현실인지, 의아하다. 그런 것이 있다고 치고, 영화를 볼수밖에 없다. 영화의 공감은 그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이것이 내게는 큰 걸림돌이 됐다. 스포츠의 매력이라면 열심히 하다가 2등할수도, 3등할수도 있고 꼴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승선수를 위해 투입된 선수라는 개념이 내 머리에는 입력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뭔가 껄끄러울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아쉬움!!
어떤 영화는 참으로 한편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명작으로 남아있는 많은 작품들이 그렇다. 이 영화 "페이스 메이커"는 참으로 단순하다. 불우한 두 형제,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온 형. 약간의 불구의 몸(한쪽 다리가 약간 짧은)으로 30km까지 질주해온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삶을 이어왔다. 자신을 위해서 살아본 적도 없고, 뛰어본 적도 없다. 자신이 번 돈으로 동생의 학업을 뒷받침한다. 그랬던 그가 자신을 위해서 한번 뛰고싶어한다. 다리 건강상 마지막 달리기가 될 것 같았던 올림픽 경기에서. 그간 정을 주지 않았던 동생의 응원과 예쁜 선수촌 후배 장대높이뛰기 선수 "미녀새"로 불리는 고아라가 응원하는 가운데, 마지막 질주해 30km를 넘어 42.195km를 1등으로 완주한다는 내용이다.
참 쉽지용? 하는 개그우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이런 내용으로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낼수 있다는 걸 안, 제작진들의 음흉한 미소가 저멀리 보일 것도 같다. 장편소설같은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는 단편소설같다. 이렇게 간단하게 사람들의 감동을 그러모을 수도 있다. 단순하다고 가볍다고 그 작품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들이 겪었을 그 고통이 이 작품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블로그 글들도 그렇긴 하다. 그래 어떤 글들은, 정말 공들여 작성한다. 많은 생각과 자료검색, 그리고 결론내기까지 쉽지않은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공들여 쓴 긴 글을 다 읽은 독자가 몇명이나 될지 알수도 없다. 그런 글이 또한 좋다고도 말못한다. 어떤 글은 그렇다. 아주 쉽게 작성한다. 그런데, 그런 글이 주목을 받기도 한다. 대중의 공감대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값비싼 식당에서의 우아한 "저녁식사"를 생각하고 데이트를 했는데, 깔끔한 분식집에서 맛있는 "떡볶기"를 한대접 먹은 기분 이랄까. 맛있게 먹어서 그날의 식당 데이트를 뭐라 하기 뭣하지만, 자꾸 뭔가를 잃어버린 듯, 미련이 남는다.
한편의 영화로 말한다면, 제 몫은 한 영화다. 약간의 흠이 있다면, 김명민의 신체 특징상 30km이상을 달리면, 다리가 망가질 수 있는 것처럼 언급됐지만, 결국 그가 완주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시 마라톤 출발점에 선 주인공을 보여줬다. 관객도, 영화제작자도 그딴 것은 이미 다 잊어버린듯, 가볍게 넘어갔다. 모두가 주인공의 성공에 빠져서, 그밖에 장애물들을 걷어내 버린 것이다. 영화의 맹점이 아닐 수 없다.
스포츠 영화라서 그런가? 스포츠는 단순한가? 과연 스포츠 관계자들은 본인들을 단순하게 생각할까? 이런 영화가 양산되면, 대중들의 무관심을 초래하게 될지 모른다. 조금 더 깊이있는 접근이 아쉽다.
*김명민이란 배우
사실 영화의 대부분을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봤다. 김명민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다. 저 사람이 김명민인가? 비슷한 것 같은데, 또한 아니다. 분명히 김명민 출연이 맞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나와 있나? 처음엔 그런 의문이었다. 그가 약간 어눌한 페이스 메이커 만호역을 하기위해 틀니를 착용했다 한다. 영화 중간에 그런 것 같다는 것을 알아채긴 했다. 그런데, 틀니 때문에 그렇게 변했나? 그것뿐은 아니다. 말투, 표정 그런 것들에 변화를 주었다. 똑똑함은 그의 동생 성호에게 다 내어주고, "잘하는 것이 달리기밖에 없는" 만호역을 하느라, 그렇게 변신한 거다.
지난번 본 영화 "통증"에서는 권상우와 정려원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그 둘다, 최빈민층이었다. 영화는 괜찮았지만, 잘 생기고 예쁘게 생긴 두 배우들이 연기하기엔 좀 맞지 않는 배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잘 생기고, 예쁘면 그에 맞는 대접이 돌아와야 한다. 권상우, 정려원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어쨋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젊은 남녀역에 그다지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김명민은 자신을 "성형"으로 "한 단계" 내려놓았다. 틀니란 인스턴트 성형요법으로 말이다. 정말 다른 사람같았다. 영화도 그를 멋있게 찍지 않는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치킨 배달부의 모습 그대로다. 이 영화를 살린 건 김명민이란 배우가 맞다. 내내 그 배우 한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완주할땐 눈물까지 나왔다. 영화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배우에 공감했던 것 같다. 하나의 작품에 자신을 완벽 변신시킬 수 있는 무서운 배우, 지금까지 가슴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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