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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제주도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정리정돈이 잘된 깨끗한 저택같다. 먼지 한점 없고, 가구들은 가구들대로, 장식품은 장식품대로 모두 제 할일을 다하며 그자리에 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가 그집을 만드는데 제 힘을 보태고 있을뿐이다.

 

주연 조연이 따로 있지 않은 그의 작품은 출연자들이 신나서 작품에 몰두할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주연이 되어서, 제 목소리를 담아내느라 애쓸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발탁된 것은 영광이고, 행운이라고들 하나 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실제 저택이 나온다. 몇 가족이 모여살만큼 집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생업인 펜션도 상당히 크다. 객실도 많고, 인 도어, 아웃 도어 외국풍으로 잘 꾸며진 펜션 식당도 있다. 가족들 모두가 일꾼이 되어 일에 매달린다. 거의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이 아닌가 싶다.

 

평사리를 떠나서는 토지가 존재하지 않듯, 제주도를 떠나서는 인생..의 의미가 한풀 꺽일 것같다. 불란지라는 펜션도, 스킨스쿠버라는 바닷속 탐험사업도 바닷가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참고로 "불란지"는 "반딧불"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

 

인생이 첫방영 되었을때 제주도를 화면에서 만난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그래선지, 모두가 주연처럼 빛나고, 각자가 혼신으로 연기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나는 호섭과 병태할머니에게 가장 끌렸다. 그들이 제주도를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선 가장 제주도다운 이는 극중 인물들 중에서 호섭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 생긴 것이 흠이 되긴 하지만, 선량한 눈빛, 열심히 일하는 튼튼한 팔뚝, 조건을 보지 않고, 제 가슴이 원하는 여자에게 청혼하는 용기 그리고 푸른 바닷속을 제 일터로 삼아 미래를 건설하는 푸른 마음을 지닌 청년 호섭은 제주도가 갖고있는 아름다움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바닷가를 보여줄때, 짠 바닷내음이 코밑으로 들어온다. 물속 촬영분도 늘어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 김수현 드라마이기에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그는 인물들만 늘어놓고, 그들의 일터는 양념으로 묘사하는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병태 할머니가 없으면 어쩔뻔 했나. 병태 할머니에게 초점을 맞췄던  초반 극 진행에 깜짝 놀랐었다. 어떤 드라마가 70대 중반의 노인을 집중하는가. 병태 할아버지가 다섯째 여자를 끝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극의 시작을 장식했다. 그 어려움 중에서 아들들을 잘 키워낸 생과부 병태 할머니의 에피소드도 훌륭하지만, 할머니가 거처하는 아담한 초가집은 도시형에 점령당하는 시골살이에서 자존심으로 생생하게 서 있다. 좌식생활, 옛날식 부엌과, 마루, 혼자 살면서도 혼자가 아닌, 어쩌면 한국의 노인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주거형태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가 유명한 것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 여자, 바람중에서 바로 병태 할머니가 제주도 여자를 대표한다고 보면 되겠다. 남정네들이 목에 힘주고 다니며 딴짓할때 온갖 일을 해서 자식들 뒷바라지해서 지금처럼 성공시켰으니, 그 공을 무엇에 비할까.

 

드라마를 볼때마다 나의 제주도 여행이 떠오른다. 198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함께 배낭여행을 했다. 성산포 기슭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한날, 그날 폭우에 바람이 몰아쳤었다. 경사진 텐트안에서 잠도 못들고, 웅크리며 벌벌 떨다가 그 근처에 있는 화장실에서 여명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30여년도 더 전의 기억이니, 믿을만한지 모르겠지만모슬포 바닷가를 밤에 거닐며 상념에 잠겼었는데, 검은 순두부처럼 흔들리던 물속에 거의 들어갈뻔 했던, 너 그때 위험했어 임마, 친구가 들먹여서 알게 됐던 그일.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물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친구가 곁에서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한라산 등반, 가파도 탐험등.. 그때의 일들은 아직도 파일이 부서진 채로 저장되어 있다. 제주도에서 보는 하늘은 더 파랬고, 구름은 더 까맸고, 천둥소리는 내 온몸을 뒤흔들듯 지축을 울렸고, 번개는 내 살에 파고들듯 쨍하면서 하늘에 금을 그었었다.

 

전신을 옭죄는 두려움 속에서도 또 아름다움은 어찌 그리 빛났던지. 중문 해수욕장에 앉아, 나눴던 친구와의 대화는 그와 나를 통으로 엮어주는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제주도는 그 어떤 곳보다도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 바람, 햇빛을 고스란히 말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제주도에는 "혼"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현실이면서 현실같지 않은. 거주하는 자들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그 제주도의 혼을 세계시장에 내놓으면 어떨까?

 

요즘에 발굴되는 올레길도 좋고, 섬의 어느곳 하나, 눈길을 끌지 않는 곳이 없지 않은가. 안전함을 갖추고, 홍보하자. 은퇴생활을 고려하는 해외 동포들에게도 제주도는 매혹적인 도시일 게 틀림없다.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같은 곳에서도 제주도를 종종 다룬다. 지난번 기사는 해녀가 주제였던 것 같다. 아쉬운 것은 해녀들의 평균 연령이 고령화되었다는 어떤 다큐물을 보았는데 그말이 사실인지 모르겠다. 제주도가 갖고있는 보물들을 지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제주도가 가진 관광자원이 남김없이 이용되기를 그래서 국제관광도시로 우뚝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