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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벼랑끝에 선 사람들의 아우성 "구해줘"

그 어린 소녀가 잔상에 남았다.

광장에서 실탄이 든 조끼를 입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그애가.


자살 폭탄 테러로 위장하려는 음흉한 범죄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길 고대한다. 그는 그 순간 버튼을 누를 것이고, 그애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져 공중으로 솟아오를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아무런 눈치도 못채고, 일상의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도 함께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범죄자는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에 몸을 떤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예민해졌다. 자국 여행객들에게 살벌하게 대하고, 약간의 문제가 있으면 일단 테러를 의심하고 본다. 그런 헛점을 이용해 그는 그런 범죄를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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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에 나오는 주디라는 소녀이다. 주디는 왜 이렇게 됐을까?

겨우 5살때 엄마를 사고로 잃는다. 그리고 양부모집에 가서 마음문을 열지 못하고, 비뚤어지다가, 약물중독이 된다. 양부모에게서 쫓겨나고, 도둑질을 해서 소년원에도 가고, 나중에는 여러 약물에 손을 댄다. 겨우 열다섯 나이에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중독자가 된다. 약을 더 구하기 위해 범죄조직에 손을 내밀었다가, 큰 도둑(마약공급업자)의 덫에 걸려 온몸에 폭탄을 장치하고 공원벤치에 앉아있게 된다. 그 도둑은 움직이기만 하면, 버튼을 누를 것이라 협박한다. 그는 무선으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주디는 엄마가 세상에 없어서, 그나마 안심이다. 심하게 망가진 자신을 보면 실망할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 엄마가 주디를 봤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지만, 10년전 죽은 그레이스라는 주디의 엄마는 "남은 미션"을 치르러 세상에 보내졌다. 옛 모습 그대로. 그리고 소매치기에다 마약중독자로 변한 딸을 만난다. 


소설은 일단 재미있었다. 부인을 잃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의사 샘 갤러웨이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를 꿈꾸고 뉴욕에 온 줄리에트라는 여자 주인공과의 불같은 사랑, 그리고 비행기 추락사고로 테러범으로 몰릴 뻔한 줄리에트 사건, 등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미국의 문제점들을 소설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는가?

911 이후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소심증이 소설 전반에 배경으로 깔려있다. 무대는 전세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뉴욕이다. 이 뉴욕에는 화려함만 있는 건 아니다. 줄리에트처럼 꿈을 안고 뉴욕땅을 밟지만, 자신에게 실망하고, 빚과 불법체류라는 신분만 남은채 황황히 떠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뉴욕의 한곳 브루클린 베드포드-스타이브슨트 지역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아주 자연스럽게 마약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는단다. 샘도 이 지역 출신이다. 이 지역은 흑인들 위주로 마약과, 범죄가 판을 치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엔 험악한 지대다. 


토론토에도 사람들에게 경원시 되는 지역이 있다. 바로 핀치(Finch)와 제인(Jane)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엔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사건 사고 다발지역으로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다. 딸이 다니는 요크 대학은 스틸스와 킬스 지역으로 핀치 제인 지역에서 멀지 않다. 처음에 이 학교를 가고자 했을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딸과 친구들은 기숙사를 나와 집을 얻을때 핀치 제인으로부터 먼곳을 찾았다. 학교 근처 집값이 싸지만, 우범지역이라 무섭다는 것이다.  


화려함과 선진국의 위상을 가진 나라들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들이 그것이다. 맨하턴에 놀러갔을 때에도,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북쪽 할렘 지역으로 가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곳 역시 흑인들이 많고,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관광객이 얼쩡거리기엔 썩 좋지 않은 환경인 것이다.


관광객인 우리는 회피하면 된다지만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소설속 샘 의사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 마약을 복용하고, 갱단의 일원이며, 부모들은 일찍 죽고, 아이들은 버려져 범죄에 연루된다. 아주 어린 나이에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신체가 망가져버리는 것이다. 그뿐인가? 어떻게 그 지역에서 벗어나 일반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어도 정신적 충격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의사 샘이 사랑했던 여자 페데리카도 어릴 적 상처를 지우지 못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샘 자신도, 여자친구를 위해 살인을 하게 되는 극단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때 마약 범죄자를 죽이려 했는데, 사고로 한 경찰을 죽이게 된다. 그게 주디 엄마다. 어쨋든 인생의 큰 사고들은 사람들의 생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자.

나는 눈뜬 장님, 귀가 있되 듣지 못한 것처럼 살았다. 캐나다의 시골도 우범지역이다. 큰 사건 사고는 없지만, 젊은이들이 마약을 접하기 쉬운 환경이며, 몇몇 어른들도 마리화나를 상용하면서 살아간다. 아이들 사이에 마리화나는 자라는 풀로 아무런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는 말들이 전해진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아주 손쉽게 마리화나를 손에 넣을 수 있고, 또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리화나의 무해성"까지 주장하고 있다. 세상에 수많은 정보중에서 어떤 정보들을 믿어야 할까? 이책은 마약의 유독성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욤 뮈소의 "구해줘"는 어린 소녀 주디의 아우성이고, 샘이 줄리에트를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지만, 크게는 그런 우범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들렸다.


샘은 정신과 치료를 겸하는 의사로서, 헌신적인 노력을 한다. 샘의 마약중독자를 향한 시선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가 자란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이라도 샘은 그 애정과 노력으로 원상태로 복구해 놓을 것 같다. 샘은 백인이고, 의사며, 잘생기고 마음이 넓어 스스로를 뽐낼만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킨다.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일반 엘리트와는 다르다. 소설에서는 그것은 그의 출신 때문이라 하지만, 사실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는 했다.


다시 내 동네로 돌아온다면 마약 거래죄로 동네의 청년이 감옥에 갔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마약 소지자 때문에 고등학교에 경찰이 들어왔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인간은 언제나 "범죄"를 양산한다. 삶의 환경이 열악한 이들은 안락한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텐데, 그런 것들이 갖추어진 곳에서 다른 범죄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찬양해 마지 않았던 내 고장이 그런 범죄의 온상이라니, 꽤 많이 우울하다. 캐나다 전역을 까뒤집으면, 범죄들의 그루터기가 얼마나 크고 단단할지 생각하는 것만도 머리가 빡빡해진다.  


어쩌면 소설의 주제는 그것이 아닌가 싶다. 서로간에 관심과 사랑.. 그것이 죽음도 극복하고, 중독된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샘 갤러웨이가 보여줬던 "살인"까지 하면서 여자친구를 구하고자 했던 그 열성, 죽음의 사자에게 스스로 붙들려가고자 하면서 여자친구를 지키려고 했던 헌신, 만신창이가 된 주디를 돌봐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노력 등 말이다.


그건 병들어가는 사회에서 인간이 할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그런데 그럴 사람이 그리 많은가? 일단은 우범지역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나홀로, 혹은 나의 가족,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 길에서 벗어나 있으면 싶다. 그리고 우범지역 사람들은 그대로 놔둔다. 그들을 안전지역으로부터 밀어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 


청정지역이 없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공기는 맑을지언정, 인간들의 심성은 맑지 않다. 세상이 다 그렇다. 무균실을 찾아살 수는 없다. 이미 나 자신이 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시선도 조금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내 힘이 필요하다면 나눌 수 있는 그런 것... 샘 갤러웨이의 마음을 조금은 본받아보겠다는 그런 작은 결심을 하는 것으로 소설을 읽은 것에 대한 내 의무를 표시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