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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치욕의 역사 "남한산성"

 

"남한산성"을 다 읽을 즈음, 이 산성의 구조를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문은 어디이고, 서문쪽으론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산성의 넓이는 얼마정도인지...

 

남한산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적과의 대치에서 구조적인 묘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다 읽고 난 다음에 보니, 남한산성의 평면도가 두페이지에 걸쳐서 그려져 있었고, 일어난 일들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더불어서 최근에 안쓰는 그 당시의 낱말풀이까지 수록되어 있었다.

 

참, 친절한 책이다. 어쩌면 남한산성을 읽기전, 뒤의 참고자료를 훑어보고 읽는 것이 책의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70여년전, 그러니까 1636년 12월에 발생해서 1637년 2월2일에 끝난 역사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이 "남한산성"이다. 중국에선 명나라와 청나라가 싸우던 그때, 조선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었다. 명에게 오랫동안 예를 바쳐온 조선은 청나라가 위협해오자 배명주의와 배금주의(후금이 나중에 청으로 개명한다)가 서로 맞서게 된다.

 

명을 쳐올라가면서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깨고, 그 자리를 꿰차려는 청은 조선침략을 감행하게 된다. 이것이 병자호란. 왕족의 일부는 강화도로 피난했으나 세자와 인조는 남한산성에 발이 묶이게 된다. 그러면서 수십만의 청의 군병들에 포위된 상태에서 겨울을 보내게 된다.

 

숫자로나 기개로나 청을 싸워 이길 힘이 없는 조정에서는 아직도 청과 싸움을 하자는 주전파와 청과 화친하고 살길을 도모하자는 주화파가 나뉘어 공론이 일어난다. 결국 인조는 성문을 열고나와 청의 칸(태종)에서 항복하고 군신의 예를 갖추기로 한다. 그 군신의 예라는 것이 조공은 물론 청의 온갖일에 뒷감당을 해주는 혹독한 내용이었다.

 

소설 "남한산성"은 이 역사적인 사실을 소설로 만들었다. 

 

작가 김훈은 "먹기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하는 많지않은 사람중의 한명이다. 그는 글을 쓸때는 집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놓고 매일 출근, 7-8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남한산성도 그렇게 탄생된 책이라는 것.

 

그의 글에서는 "노동"이 보인다. 이야기꾼같이 자유자재로 휘갈겨쓴 글이 아니라, 낱말 하나하나가 모심듯이 심겨져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래선지, 김훈의 소설에서 내용보다는 "문체"가 이야기거리가 되곤 한다. 사실 아주 특이하다.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그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용된다.

 

말하자면 이런 문장,,

 

"...마당에 쌓인 눈에는 발자국이 없어서 아이 울음소리는 혼자서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얼핏 읽으면 그 상황이 잘 잡히지 않는다. 며느리가 해산하여 아이와 누워있는데, 눈쌓인 마당에 나오지 않아 발자국이 없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아이가 혼자 우는 것처럼 들렸다는 말이다. 성안의 두려움, 불안, 고립감을 나타내주는 문장이다.

 

눈길을 잡는 몇문장을 더 추려내보자.

 

"지덕의 거룩함을 말하는 목소리는 컸고, 곤궁함을 말하는 목소리는 작았다. 큰 목소리는 높이 울리면서 퍼졌고, 작은 목소리는 낮게 스미면서 번졌다."(36쪽)

"사공은 얼음위에 쓰러졌다. 쓰러질때 사공의 몸은 가볍고 온순했다. 사공은 풀이 시들듯 천천히 쓰러졌다.(46쪽)

"적막은 맹렬해서 쟁쟁 울렸다."(179쪽)

"하늘이 팽팽해서 별들이 뚜렷했다."(180쪽)

"아이들은 개울에 내려앉은 새떼처럼 보였다."(213쪽)

 

청각과 시각이 모두 열리게 되면서 상황을 그려보게 된다. 특별히 "소리"를 동원한 분위기 묘사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쟁쟁" "팽팽"등, 이미 그 글자가 내포하는 힘을 최대한 이용해서 상황을 담아냈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는 김훈의 글에 대한 태도가 보인다.

청이 조선의 왕에게 보내는 문서를 작성하는 장면이다.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은 없었으나, 문한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사를 끌어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칸의 뜻에 따라 글을 짓는 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84쪽)

 

조선을 압박하는 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칸은 세력이다. 칸의 위용앞에 조선은 쥐처럼 떨고 있다. 세력을 쥔자는 글까지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이고, 힘이 없는 나라(개인)는 칸이 싫어하는 문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 뜻이 밝히 드러나지 않고, 구부리는 글들을.  모든 문장은 이 둘 사이에 있는 것일 게다. 확 펴지는 글과 구부러지는 글.. 청과 조선처럼 글에도 세력이 나뉜다.

 

현존하는 사물에 옷을 입혀 묘사한 김훈의 문체는 쉽지는 않다. 현실에서 쓰는 구어체가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짜맞추었다. 한올한올 수를 놓듯, 글자를 배열한 그의 정성이 놀랍다.

 

"저녁에 상전들이 노복들을 묶어놓고 매질했다. 매를 받아내는 울음소리가 어둠속에서 기진했다."

 

첫 문장이 평범한 상황묘사라면 두번째 문장은 조금 다르다. 이를 앞문장처럼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매를 맞는 노복들의 울음소리가 기진할듯이 어둠속으로 퍼졌다." 말하자면, 같은 상황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된다.  울음소리가 주인공이 되어 매를 맞고, 기진하게 된다.

 

치밀한 역사고증을 거쳤고, 수많은 탐방을 통해서 남한산성이 엮여졌다는 것에는 믿음이 가나, 뭐랄까 좀 생기가 없다. 

 

누군가는 이 소설에 인물이 살아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하였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일면 동감이 간다. 애정을 갖고 집어넣은 듯이 보이는 서날쇠는 결국 "제 식구 살길을 도모하는 민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꼿꼿한 선비로 그린 김상헌은 "힘은 없으면서 명분만 내세우는 사대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나마 화친을 주장하던 최명길에게 공감이 가기도 한다.

 

체면, 위계질서, 품위에 목숨걸던 그당시 사대부들, 현대의 지식인들을 꼬집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품격높은 사대부는 길을 몰라 갈 수 없고 품계없는 군병은 못믿어서 못보내면 까마귀편에 보내려느냐.

-전하 신들을 죽여주소서

-경들을 죽이면 혼백이 날아가서 격서를 전하겠느냐.

 

격서를 전해야 하는 대업에 서날쇠를 보내는데 반대하는 임금과 사대부의 대화이다.  

 

사대부를 "조롱"하는 많은 서술들이 나온다.

서로 창끝을 겨누고 있는 마당에 한해를 보내는 마당에서 "동방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세찬(여러가지 음식과 술)을 청의 진영으로 보낸다. 그 세찬을 청나라쪽에서 "먹을 것 없는 너희들이나 나눠먹으라"하고 되돌려 보낸다. 

또한 그에게서 당한 치욕을 설욕하느라 패전이 확실해보이는 작은 전쟁을 감행한다.

그뿐이랴, 새해에는 저멀리 있는 북경의 명나라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서 망궐례를 드린다. 임금이 명의 천자에게 보내는 그 존경의 춤을..

 

이를 두고 청의 칸은 "이 무력하고 고집세며 수줍고 꽉 막힌 나라의 아둔함을 깊이 근심하였"단다.(260p)

 

결국 청나라에 항복하는 자리에 인조가 나가게 된다. 항복의 예는 세번 절하는데, 절할 때마다 머리를 세번 땅에 찧어야 한다는 "삼배 구두례"의 예법을 차려야 했다. 머리찧는 소리가 안들린다는 청의 요구에 인조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머리를 땅에 찧어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절을 하는 것만이 수치이랴. 청에 항복하고 그들에게 강탈당했던 많은 세금, 물자들.. 그리고 그후의 역사도 그리 쾌청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절하는 자리에 풍악을 울리면서 춤을 추며 흥을 돋구었던 조선의 기녀 2백여명.. 

 

이런 역사속에서도 조국의 땅은 봄을 피워냈고,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삶을 살았다.

 

이 언 겨울에  남한산성을 읽어선지,  그 가차없고 희망없었던 찬 기운의 남한산성이 조금 손에 잡힐듯했다.  청나라가 쳐들어오기까지 그걸 가능하게 한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니,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선, 처음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여튼 역사는 소설이든 실제든 내게 좀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