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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첫사랑에 실패한 소설가 제인의 이야기

 

언니 카산드라가 그린 제인의 초상화. (1775-1817)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보지 않고, 그녀에 대해 쓰려고 하니, 자신이 없다.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이라도 봤다면 좀 덜 면구스러울뻔 했다.

 

"Becoming Jane"이라는 영화가 DVD로 최근에 출시됐다. 소설가 제인이 되기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전기작가 존 스펜스의 제인에 관한 전기소설중에서 제인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제인을 맡은 앤 해써웨이(Ann Hathaway)는 그 미모 때문에 유족들에게 불만을 샀다고 한다. 앤만한 미모가 드물긴 하지만, 늙고나서 생각하니, 젊었을때는 누구라도 청량하고 곱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제인의 최고의 청춘을 연기한 앤의 미모가 그리 과분한 것은 아닐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이며 문학적 수사에 필요한 낱말을 골라내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 문학소녀 제인에게 젊은 변호사 톰은 만만치 않은 도회적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다. 그리고 또하나의 남자, 그는 그 동네 최고부자인 그레샴 부인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로 그녀의 유산상속자가 될 사람이다. 그레샴 부인은 제인을 눈여겨보고, 조카 위스리도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톰과의 사랑에 빠진 제인이 사랑없는 청혼을 거절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가 만만치않다. 가난한 목사 아버지, 그리고 엄마, 6남2녀의 형제들.. 말하자면 몰락한 중류층으로 소개되지만, 연출의 미숙인지 그다지 누추해 보이지 않는다. 어쨋든 이 말을 한 것은 그녀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Affection is desirable. Money is absolutery indispensable. Nothing destroys spirit like poverty."

"사랑, 그래 그거 있으면 좋다.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난만큼 영혼을 짓밟는 것은 없다."

 

감자를 쇠스랑으로 캐내면서 그녀의 엄마는 철없는 딸을 눈을 흘기며 바라본다.

 

 

 

 

제인과 톰은 사랑을 지켜나가기로 한다. 고비는 한번 더. 톰에게 물주가 되어주고 있는 삼촌이 이둘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톰은 제인을 선택하느냐, 삼촌과 가족을 선택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삼촌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톰은 좌절한다. 제인은 모든 걸 버리고 톰을 믿었는데, 톰에게서 쓴잔을 마시게 된다.

 

그리고 상황은 한번 더 반전, 결국 톰은 제인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면서 다시 제인곁으로 온다.

"What value will there be in life if we are not together?"

 

그들은 모든 걸 버리고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집안의 허락없는 결혼이라 이 둘은 런던으로 짐을 싸들고 도주하게 되는데.

마차가 진흙탕에 빠져 잠시 지체한 사이, 제인은 톰의 코트를 받아들다가 그의 코트에서 빠져나온 편지를 읽게 된다. 그 편지는 톰이 매번 부쳐주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해나가고 있는 그의 부모의 감사편지였다.

 

 

 

 

제인은 그제서, 정신이 반짝 든다. 톰이 버리고 떠나는 그들의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돈없이 시작해서 결국엔 사랑까지 잃어버리게 될 자신들의 미래까지 보이는 것 같다.

 

결국, 제인은 톰을 떠난다.

 

제인이 유명작가가 되어 톰을 다시한번 만나게 된다. 톰은 그의 딸과 동행이었는데 딸의 이름이 제인이었다. 제인은 어린 제인에게 소설속 한 장면을 읽어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우리가 같이 있지 못하다면 인생에서 가치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면서 톰이 모든 걸 뒤로 두고 제인에게 돌아왔을때 감동을 느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좋은 그들을 보면서, 사랑은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결론은 엉뚱하게 맺어졌다. 제인이 한번 더 뒤집은 것이다. 

 

가족들은 "거지"들같다. 가난을 이유로 "돈"을 향해 결혼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딸(아들)"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으로 무언가를 챙기려는 흉악한 도둑심보들이다.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에 의해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서 병든 결혼을 하고, 결혼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구부러진다.

 

 

 

 

제인은 독신으로 살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으리라. 그녀에게 묻고싶다. 왜 그리 계산적이었냐고. 톰의 가족들도 톰이 벌어다주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나갔으리라.

 

200백년전에도 가정의 형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했고, 현대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별반 변한게 없다. 결혼은 내게 없는 어떤 것이 저절로 얻어지는 그런 것은 아니다. 희생을 각오한 두 사람의 하이 파이브(손바닥 부딪침)이다.

 

영화는 18세기 영국풍을 아름답게 재현해서 즐거웠다. 그러나, 없는자, 있는자 두 세계에 대한 깊이없는 조명이라든가, 애정에 있어서도 판에 박힌 전개가 많이 아쉽게 느껴졌다. 

 

세상의 가치관에 대해 젊은 여인이 대항하고 고뇌하다가 좌절한 부분이 조금더 다뤄졌으면 나았을텐데. 어쨋든 그녀의 소설은 해피엔딩이라고 하니,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안타깝게도 제인은 젊은 나이인 42세에 병으로 죽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많은 고백들이 시중에 떠돌고 있지만, 나는 액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을 지키지 못해 헤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말 아닐까?

 

다시 젊은 날이 찾아와, 아픈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는 더 잘해낼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은 한순간의 희열을 위한 마약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갈 비타민같은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