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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일본이름이 있었던 한국여성들.. "위안부-나비" 토론토 공연

 

  

 

 



 

(출처:http://www.nanum.org/main.htm)

 

"거짓말같은 역사"들이 있었다. 증언이 없다면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은. 그래서 일본은 사과하지 못하는 걸까? 인간같지 못한 일을 해놓고, 차마 인정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까? 그러나 "인정하지 못한다고 역사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들이 모르는걸까?

 

인정하지 않으니, 더욱 많은 "소리"들이 터져나온다. 1990년부터 오늘날까지, 매주 수요일 한국에 있는 일본영사관앞은 시끄럽다. 증손자까지 두었을 그런 할머니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사과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박물관을 만들어라" "전쟁범죄를 인정하라" "법적인 배상을 해라" 그들은 글자로도 말하고, 목청으로도 부르짖고 있다.

 

그 할머니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있는 일본정부는 정말 철면피가 맞다. 그런 "정신(?)"은 범죄를 저지르고 끝까지 사과하지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2007년 캐나다의회에서는 "일본에 대한 위안부문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해서 4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캐나다국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 쾌거를 바탕으로 이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물꼬를 텄으며, 이번 "위안부-나비" 공연은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연극을 일단 감상해보자.

 

 

 

 

 

연극후 질의응답 시간에 무대에 앉아있는 주요출연진.

왼쪽부터 우명순(순자 할머니), 조은정(윤이할머니), 이송민(복희 할머니), 이지우(윤이할머니 엄마)씨.

 

 

윤이 할머니..

위안부였으나 극적으로 살아남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현재는 딸내외와 손녀와 함께 미국에 거주한다. 윤이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세뇌를 당한다. 위안부생활은 악몽을 꾼것이며,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양심이 타오를 때마다 그녀의 엄마는 꿈속에까지 나타나, 윤이를 독려한다. 네 자식을 위해 과거를 버려야한다고 주입받는다. 윤이는 햇볕을 싫어하고, 사람과 만나기를 회피한다. 일본의 핵폭탄 후유증으로 사망한 오빠의 제사를 준비하는중 찾아온 위안부였던 두 할머니를 박대한다. 60년도 더 지난 문제를 갖고 왜 괴롭게 하느냐는 것이다. 할머니중 한명이 윤이할머니의 정체를 알아챈다. 윤이할머니, 지독한 몸살을 앓고, 본인의 과거를 인정하게 된다.

 

지나.. 윤이할머니의 손녀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 미국에 시위차 온 할머니들과 만남을 갖고, 친구가 없는 할머니와 만나게 해주기 위해 데려온다. 지나는 학교 과제물로 위안부 문제를 제출할 생각이다.

 

순자, 복희 할머니..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가정도 이루지 못했고, 복희할머니는 방광이 약하여 자주 소변을 보는등, 몸이 불편하고, 순자 할머니도 다리를 전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손녀를 야단치고, "범죄를 저지른 천황도 죽었는데 왜 난리냐"고 소리치는 윤이할머니에게 "우리는 납치당한 일본군인들의 공동변소였으며, 움직이는 군수물자일뿐"이었다고 항변한다. 새로 태어난다면 아이들을 낳고 남편공경하는 가정을 갖는게 꿈이라며 피울움을 토한다.

 

위안부 그들은 모두 일본 이름이 있었다. 윤이할머니는 하나꼬.

 

윤이할머니가 자신의 기억에서 매장시켰던 위안부 생활이 재연된다. 일본군 장교의 여자로 지목돼 기모노를 입었던 하나꼬, 그가 윤이할머니였다. 친구와 도망갈 궁리를 하다가 잡혀 손가락에 대나무 고문을 당하고, 중국 최악의 위안소로 보내져, 하루 20-40명의 군인들의 성노예가 됐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리고 다 죽게 되어 버려졌을때, 중국인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고국에 와서, 새로운 윤이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노심초사하며 살았던, 그래서 심장병에 걸려 헉헉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할머니들의 도움으로 과거를 인정하게 되는 것은 윤이할머니에게는 거의 죽었다 살아나는 그런 경험이다. 그래서 연극내에서는 실제로 윤이할머니가 목을 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 다시 깨어나면서, 그녀가 그동안 닫아두었던 창문을 열게 되고, 그 창으로는 밝은 빛이 스며들어온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된 것이다.

 

연극이 끝난후..

 

단막극으로 이뤄진, 화려할수 없는 무대위에서 토해낼 수 있는 메세지는 모두 포함되었다고 볼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윤이할머니의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을 위해서 그들의 기억까지 말살시켜 버릴 수 있는 "처절한 사랑"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집에서 치유받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상처를 입었고 몇몇은 윤이할머니같은 경우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는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이 1백여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채 살고있는, 혹은 돌아가신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의 아픔정도를 논하는 것조차 억지스럽게 느껴질뿐이다. 

 

재미 시인이며 극작가인 김정미씨는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이라는 할머니들 증언집을 읽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처음에는 영어로 써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무대에 올려, 이목을 끌었다 한다. 이후에 한국의 방은미 연출자에게 한국어 원고가 넘어갔고, 지금까지 한국순회공연과 미국공연을 마쳤으며 토론토 공연에 이어 뱅쿠버에서도 무대를 연다.

 

방은미 연출자는 내년에는 "일본에서 이 공연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이자리에 참석한 토론토 총영사에게 부탁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혹자는 일본이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는데, 할머니들의 피켓에는 "우리는 그리 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사진자료를 통해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할머니들을 역사뒤쪽으로 자꾸 밀어넣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할머니들의 의사를 전하는 연극단원들은  "이런 우려 때문인지, 할머니들이 2세들이 이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고맙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의도적인 함구와 무시는 "증언"과 "투쟁의 흔적"의 자료집을 더욱 두껍게 하게 될 것이며, 이에 동참하는 이들도 더욱 늘어나서, 나중에는 감당할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런 모든 기록들이 보관될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이 추진중이며, 이번 연극 공연의 수익금도 전쟁박물관에 보내진다고 한다.

 

토요일 연극이 끝난후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임신한 위안부 처리"에 대한 문의를 캐네디언이 했고, 영어권 2세들이 질의를 많이 했다. 이 연극을 유치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조현주씨(토론토 알파 코디네이터)는 영어, 한국어 동시통역을 하면서 질의응답 시간을 매끈하게 진행했다. 주어진 시간을 훨씬 초과한 뜨거운 반응이 관중들속에 있었다.

 

왼쪽은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조현주씨, 옆으로 김현정(지나), 최유미(후미코), 이한일(일본군 장교)씨.

 

그런데, 나도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이 있긴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연극을 어떻게 보시나요?"하는 것.

 

2차대전 당시 16살이었던 우리 엄마가 이번 연극에 동행했다. 연극을 보기전 엄마는 "일본군의 만행"에 치를 떨었고, 엄마의 고향이 시골 구석이어서 화를 피할 순 있었지만, 그당시의 공포는 생각만 해도 덜덜 떨리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총평.... "그 정도 가지고 일본에 사과를 받아낼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부족하단다. 정부차원의 뒷받침이 있는 대단한 무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눈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본 나는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일본을 거꾸러 뜨리기 위해선, 더 큰 펀치가 필요하다"로 요약했지만, 무언가 엄마를 화나게 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듯모를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