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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아는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책을 고려해봐야 할 것같다. 단지 유물만 보고올 생각이 아니라면, 가기전에 완독을 하고, 옆구리에 끼고 가서 틈틈히 뒤적인다면, 당신은 여행에서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다. 

 

이번에 특별한 여행기를 펴낸 시인 이상묵씨는 캐나다 한국일보사에 매주 칼럼을 연재한다. 인터넷 신문을 가끔씩 보는데, 그럴때마다 "석천 코너"(석천은 이상묵씨의 호)를 빠짐없이 읽었다. 시사, 문학, 대중예술등 어느 한방향에 고정되지 않고 시선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의 글은 매번 감칠맛을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가,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내겐 별 관심이 없는 유럽의 이야기다. 여름날 메뚜기 뛰듯 사람들의 관심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신문지면에 미련할 정도로 꾸준히 같은 여행기가 올라오니, 어떤 독자들은 제대로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며칠전 석천 선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신문에 올렸던 유럽여행기를 보완해서 한권의 책을 펴냈노라고. 그것이  디지털북스 출판사에서 펴낸 "아는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이다.

 

책이 현재 배로 오고있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캐나다 한국일보사 인터넷판을 찾았다. 무려 1년 6개월이 넘게 연재되었던 것을 알수 있었다. 해박하면서 예리한 시선을 지닌 그분의 책이라면 읽지 않고도 충분히 추천할 수 있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아직도 녹슬지 않고, 아니 오히려 쟁쟁한 그의 지성과 감성에 감탄했다.

 

"관광과 여행과 순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관광은 그나라의 잘생긴 '미녀'들을 보러 가는 것이다. 여행은 '미녀'뿐 아니라 못생긴 '꼽추'도 찾아보고, 또 순례는 '꼽추의 아픔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노트르담의 성당에 갔는데 지은이는 꼽추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와 빅토르 위고의 "미녀와 꼽추" 영화를 찾아다닌다. 지은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된(1939년) 흑백영화를 시청하고 나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의 여행기는 단순히 보고 느낀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책상위로 다 끄집어 낸다.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노트르담의 관광은 결코 '여행'으로 재편집될수 없었을 것이다."고 고백한다.

 

그의 손을 거치면 유적지가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으로 탈바꿈한다. "에펠탑과 당나귀"라는 글에서는 파리의 한복판에 비스듬히 서있는 에펠탑이 머리속에 그려지는데, 그옆에 당나귀가 함께 출현한다. 도시의 전체건물 높이가 20m를 넘지않아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인 도시에 뜬금없이 300m의 에펠탑이 들어선다. 낮은 건물들은 남자가 누워있는 모습, 그리고 에펠탑은 그 남자의 상징이며 그 옆에 암당나귀의 요염한 자태는 정염적이기까지 한데, 이것이 샤갈의 "당나귀가 있는 에펠탑"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이다. 

 

그의 그림감상을 이어보도록 하자. 

낭만파 거장 니젠느 들라크르와의 1830년 7월 혁명을 형상화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그림을 이렇게 소개한다.

 

"자유의 여신은 남자가 안으면 금방 임신이 될것같다. '자유'는 일단 임신하면 출산의 고통이 따른다. 그 고통이 혁명이다. 그 연후에 희망의 옥동자 '자유'가 태어난다."

 

자유는 유혹하고 싶은 이념이지만, 그것이 출산되기 위해선 혁명이란 고통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을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레오나르드의 "최후의 만찬"에서 지은이는 "최후의 심판"을 읽어냈다.

 

"레오나르도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만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심판'에 초점을 맞췄다. '너희 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 예수가 말했을때 모두들 자기가 심판의 대상이 아닌가 되묻는, 바로 그 순간의 몸짓들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린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특별한 감회에 젖는 지은이. 130여년전 통일을 한 이탈리아를 살피면서 우리나라의 통일을 기대하는 그의 마음이 읽힌다.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다혈질의  우리나라 백성들과 너무나도 닮은 이탈리아인들의 삶인지라, 그들의 통일방식을 우리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통일을 위해선  두뇌와 영혼과 칼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누가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는지 질문한다. 이탈리아가 분단국가였는지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내게는 그의 접근법이 놀라울뿐이다.

 

피렌체의 별들이라 해서 우리가 역사책, 고전책에서만 들었던 당대의 예술가들을 한명한명 해부했다. 우선 미켈란젤로.

 

"'대리석의 시인'은 미켈란젤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얼른 떠오르는 게 조탁이라는 낱말. 조각가만이 아니라 시인에게도 귀가 따가운 낱말이다. 조각가는 대리석을 시인은 언어를 소재로 쪼고 다듬는 사람들. 그의 조각들이 시처럼 매끈하게 다듬은 작품들이다 보니 그런 찬가가 나왔을 게다."

 

지은이는 언어를 다듬는 시인으로서 바티칸 궁 시스틴 천장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을 보면서 후세에도 오랫동안 감동을 전하는 그 무엇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 같다. 신곡을 쓴 단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근대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노, 지동설의 갈릴레오등과 지은이의 안내로 새로운 만남을 가질수 있게 된다.

 

지은이의 말대로 낯선 곳을 간다는 것은 관광도 있고, 여행도 있고, 순례도 있다. 지은이는 여행을 가기전에도, 간 곳에서도, 그리고 갔다온 후에도 한동안 그에 몰두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진정한 의미를 캐내고자. 유적지는 단지 건물이 아니라 진실이 담겼던 도구이므로 그속을 헤집어 그당시의 인물들을 동면에서 깨워 말을 건다.

 

다음 책의 리뷰에 보면 그의 책을 "한권의 유럽사를 읽는 느낌"이라는 독자도 있고, "해박한 역사적 설명과 사진이 돋보인다"는 의견과 "이런 종류의 여행기는 처음본다. 정말 재미있다"고 평을 달아주기도 했다. 그냥 돈만 들이고, 눈구경만 시키다가 돌아오는 현대인들의 여행법에 묵직한 도전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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