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에 자주 가. 영어공부하는데 책읽는 것보다 좋은 게 없거든. 이민온지 53년짼데, 아직도 발음이 이상하다고 손자가 놀려. 그래서 그렇게 말해주지. '그래 나는, 이상한 액센트를 지닌 할머니다, 요놈아' 하고 말이야."
독일에서 이민온지 53년 되었다는 할머니가 가게에서 들려준 말이다. 그분은 내게 말할때는 보다 정확하게, 똑똑히 말하려고 노력한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혹시 못알아듣는지, 나의 눈동자 위치를 확인하면서, 간단한 것을 말할때도 그렇게 한다. 어떤땐 그런 것이 너무 지나치게 생각되어, 불편할때도 있다. 잘 알아듣고 있어요, 할머니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놀리려는 마음은 없는 것 같다. 같은 이민자로서, 선배로서의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민 53년차이고, 이제 연세가 70 정도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아직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에 조금 충격을 받는다. 더이상 이뤄내야 할 것이 무어 있어서 그리 열심인가, 욕심이 과한게 아닌가, 비판적인 마음까지 든다. 내가 그 나이가 되면 생각이 달라지리라. 무언가에 매달려 사는 것이 인간인게지, 이렇게 정리해본다.
어쨋든 이민자로서 사는 것이 어떨땐 좋은 방패막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갖다붙이면, 삶의 훌륭한 변명거리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영어공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기도 한다.
"엄마 영어공부에 도움될거야"라는 딸의 말을 들으며 시작한 소설이 "Twilight"(트와일라이트)이다. 십대들이 좋아할만 소설을 손에 잡게 된 이유는,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에 열광하나, 그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적어도 영어공부는 될테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마리 토끼를 잡았는지, 한번 따라가 보자.
영어공부
낯선 단어가 정말 많았다. 얼굴 표정에 대해선 웃다, 울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찡그리다, 코김을 내뿜다, 사색적이 되다, 미친듯한 표정이다, 능글능글 웃다, 움찔하다, 일그러지다, 으르렁거리다, 마음내키지 않다, 지긋지긋하다 등등...... 형용할 수 없는 많은 단어들이 범람했다. 이런 단어들을 하나씩 찾으면서 봐야 했다.
grimace .. 얼굴을 찌푸리다(명사, 동사)
snort .. 코김을 내뿜다
speculative .. 사색적인
insanity .. 정신이상, 광기, 미친짓
smirk .. 능글능글 웃다
tlinch .. 움찔하다
contortion .. 비꼼, 일그러짐
snarl .. 으르렁거리다
reluctant ... 마음내키지 않는
loath .. 싫은, 꺼름찍한
어떤 때는 한두개를 빼고는 모르는 단어들로만 문장이 이뤄진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슬렁슬렁 넘어가고, 앞뒤 연결을 통하여 통박으로 굴려가다가, 단어장을 펴들고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몇번쯤 되읽어봐야, 이 단어들이 머리속에 각인될 것이지만, 현생활에서는 그다지 쓰지않는 말들이니, 내것이 되기 쉽지 않을것 같다.
Carlisle was born in London, in the sixteen-forties... 칼라일은 1640년대 런던에서 태어나...
남자 주인공 에드워드는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한다. 1640년대에 태어난 칼라일을 아버지로 둔, 그.. 목사아버지를 둔 칼라일의 생애를 설명하다 보니, 갖가지 종교용어들도 한동안 나온다. 칼라일의 아버지 세대에 일어난 종교개혁과 마녀사냥등이 소설속에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종교박해, 마녀집회, 횃불, 폭도, 악마, 사제 등의 단어들도 나를 멈추게 했다.
persecution .. 박해(종교적인)
coven .. 마녀의 집회
torches .. 횃불
mob .. 폭도
fiend .. 마귀, 악마
dean .. 사제
4백살이 가까와오는 아버지를 가진, 17살 소년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이제는 책으로 들어가보자.
책
판타지(fantasy) 소설이라고 불린다. 비현실적, 공상적 내용을 담고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판타지가 성공하려면, 진짜 현실적이어야 한다. 독자들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혹, 내가 모르는 곳에서 진행되는 어떤 일"일 수도 있다는 착각이 들면, 그속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을 쓴 스테퍼니 마이어(Stephenie Meyer)는 요즘 미국을 움직이는 여성 12인 명단에도 들 정도로 유명해졌다 한다. 그녀의 첫작품이 승승장구하고, 영화로 제작되어, 전세계로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은 17세 소녀와 17세 뱀파이어 소년과의 사랑이야기이다.
춤추기 싫어하고, 운동에 취약하며, 남자친구를 한번도 사귀어 본적 없는 갸냘픈 벨라가 이주한 도시 포크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재혼을 앞둔 엄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홀로 사는 아빠의 집으로 온 벨라는, 나름대로 속이 꽉찬 소녀이다. 첫날 고등학교에 가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다른 학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학생들이 점심시간 탁자 한개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옷차림새도, 표정도 색다르다. 그들중 한명인 에드워드와 특별한 관계가 된다. 그들은 400백살이 되가는 칼라일의 양녀, 양자들로 모두 뱀파이어이며, 인간의 피 대신 동물의 피를 먹으며 인간속에서 살아가는 뱀파이어 집안인 것이다.
얌전한 벨라는 에드워드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용기있고, 지략있는 소녀로 변신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을 먹는 뱀파이어의 표적이 되면서, 생과 사를 오가는 위험에 처한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내 자신을 보다 "독특"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평범"의 보자기를 쓰고 있어서 누구도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 나를 알아보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피끓는 즐거움이 아닐수 없다. 벨라에게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고, "뱀파이어"란 점이 더욱 긴장감을 주었겠다.
다시 책을 뒤적여도, 그부분을 못찾겠다. 에드워드가 태어나던 때... 20세기초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는 1백살이 넘은 할아버지다. 그래서 그런지, 훨씬 어른스럽다. 그 긴 햇수를 사는 동안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없었는데, 이상한 향기를 지닌 벨라를 만나게 된다. 뱀파이어이기에, 그동안 갈고 닦았지만, 사람의 피에 대한 유혹을 못이겨서, 사랑하는 사람을 헤치게 될지도 모르는 비운의 캐릭터이다.
"Were you hunting this weekend, with Emmett?" I asked when it was quite again.
"Yes" He paused for a second, as if deciding whether or not to say something.
" I didn't want to leave, but it was necessary."
"이번주에 에멧과 함께 사냥했어?"
"응" 그는 좀더 이야기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하는 것처럼 잠시 말을 끊었다.
"가고싶진 않았지만, 가야만 했어."
벨라와 에드워드의 대화 내용이다. 에드워드는 벨라를 혼자 내버려두고 다른 곳에 가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배가 고프면, 벨라에게 예기치않은 위험이 닥칠수도 있으므로, 동물사냥을 나가, 배를 채우고 오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벨라에게는 새로운 환경, 인간으로서 꿈꿀 수 없는 사랑, 위험에의 노출, 사랑을 위해 스스로가 뱀파이어가 되고자 하는 용기등이 있다. 이만하면, 여학생들이 꿈꿔볼만한 인물이긴 하지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무모함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향한 도전이 답답하게도 느껴진다.
에드워드는 잠도 자지않고, 일반 음식은 먹지도 않고, 동물피만 먹으며 살아간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무한정의 삶을 살고있다. 어쩌면 이세상 삶이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그 때, 100년만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다. 흡혈귀로서의 본능을 참아내며 그녀에게 집중한다.
벨라는 인간의 삶과 뱀파이어의 삶이 달라, 그들의 사랑이 끝날 것을 걱정한다. 자신은 늙어갈텐데, 에드워드는 오랫동안 17살인채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뱀파이어 가족이 인간들 속에 함께 있다는 것만 해도,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소설은 그런 점을 보완키 위해 노력하진 않는다. 17살로 오랫동안 고등학교를 다닌다? 나는 이런 부분이 정리가 안되는 데 말이다..
트와일라잇(twillight)은 여명, 혹은 황혼때이다. 해가 내려앉아서 세상의 밝기가 달라지는 때.. 신비로운 색깔의 그 시간은 뱀파이어들의 시간인가 보다.
"Twilight, again." he murmured . "Another ending. No matter how perfect the day is, it always has to end."
"또다시 황혼이군" 그는 중얼거렸다. "얼마나 완벽한 날이었는지와는 상관없이 또하나의 끝이야. 언제나 마지막은 오기 마련이지."
" I brought you to the prom" he said slowly, fanally answering my question, "becouse I don't want you to miss anything. I don't want my presence to take anything away from you, if I can help it. I want be you to be human. I want your life to continue as it would have if I'd died in nineteen eighteen like I should have."
"나는 너를 프롬에 데려왔어." 그는 내 질문에 대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네가 어떤 것도 흘려보내는 것을 원치 않아. 내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너를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나는 네가 인간이기를 바래. 나는 네삶이 그렇게 이어졌으면 해, 내가 1918년에 죽었다고 가정하는 그것처럼.."
에드워드의 벨라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멀어지는 벨라를 안타까와한다. 자신이 일찍 죽었더라면, 벨라가 인간의 삶의 살아갔을 것이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벨라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뱀파이어 되는 것이 그와 오랫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의 사랑이 애처롭지만, 그래도 나이가 많은 에드워드가 좀더 이성적으로 보인다.
딸에게 얻어들은 이야기로는 이어지는 책에서는 벨라가 에드워드와 결혼하게 된다는데... 그녀가 뱀파이어가 되는가 보다. 정말 허무맹랑하지만, 나름 진지한, 로맨스 소설이다. 3부까지 나왔고, 4부를 집필중이다. 사랑을 향한 그들의 몰입을 보면, 제 마음대로 할수 없는 건, 과연 "사랑"뿐이라고 말해야 되는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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