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하지 마시고요, 그저 당신의 이야기나 해주세요. 저에 대해선 책이 말해줍니다. 그러니, 먼길 온 사람들 지루하지 않게 본인의 경험을 넣어서, 그 시간을 이용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나 싶다.
이상묵씨의 출판기념회는 작가의 의도가 십분 짐작되는 자리였다. 본인의 책발간을 계기로, 순서를 맡은 자나, 참석자들에게 종합선물세트 같은 걸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내 책이 발간됐지만, 나에게 향하는 스포트라이트는 너무 눈이 부셔서 감당치 못하겠다. 대신, 이 자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돌아간다면 어떨까, 나만을 보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들 가겠지?"그런 심중이 엿보였단 말이다.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작가의 연보나, 작가 소개, 축사, 작가와의 대화, 축가등... 작가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상묵씨의 "아는 만큼 더보이는 유럽여행" (디지털북스) 출판기념회도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여러 종류의 순서를 담당했다.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같이 작가가 당부하더라며, 위와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넣었다. 나는 이상묵씨를 조금은 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의도를 나름대로 읽어버렸다.
그래서, 축가를 불렀던 김동호씨, 첼로연주의 최설희씨등은 작은 소음악회의 주인공 같았고, 나눔의 말을 맡았던 손정숙(문협회장)씨는 자신의 유럽여행 경험담을 풀어놓느라 애를 썼고, 김명규(캐나다 한국일보 발행인)씨도 작가와의 인연을 되짚다보니, 캐나다 한국일보사의 역사를 훑어내리기까지 했다. 그는 두 사람의 첫인연이었던 이상묵씨의 첫 수필집 발간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새로 문을 연 사내 도산홀에서 출판기념회를 하게 되니, 작은 구멍가게에서 큰 기업이 된 언론의 역사를 독자들과 함께 나눴으니, 참석한 보람을 찾기도 했을 것 같다.
오랜 시절 한국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이민온 이승찬 박사(서울대 온타리오 총동창회장)에게는 교민들과의 상견례 자리로 맞춤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박사는 "저자의 열정을 높이 산다"며, 유럽역사, 문명을 알기 쉽게 책을 내 후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박사는 책이름을 자꾸 혼동하여 말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작가로서는 서운했겠지만서도..)
그것뿐이랴. 책소개를 맡았던 한호림(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의 저자)씨는 작가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여서 자신이 지은 책을 소개하는 자리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책은 디자인학적으로 대단한 성공작이라며, 책은 직접 읽어들 보시라고 말했다. (신문에 게재됐던 한호림씨의 책소개글을 첨부하기로 한다.)
순서참여자들이 스스로를 빛내기 위해 그랬다면, 그자리가 민망했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 의사가 전연 없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진정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래서 각 방면의 사람들이 함께 노력, 시, 노래, 연주, 연설이 어울린 상큼한 자리를 만들수 있었다.
김명규씨는 이상묵씨의 책을 가르켜 "기행문만도 아니고, 역사책도 아니고, 문학적 향기가 묻은 그런 책"이라며, "오랫동안 시와 수필을 써온 이상묵씨를 존경하며, 토론토가 지닌 인간문화재라고 볼수 있다"고 평을 하기도 했다.
이상묵씨는 감사의 말에서 "친구(김명규씨)라서 순서를 맡겼더니, 옛 상처(아마도 첫 수필집이야기인가 보다)를 건드리기도 하고, 인간문화재라는등.. 엉뚱한 소리를 한다"며 그의 말을 눙치고, "미국, 일본이 콘크리트 문화라면 유럽문화는 돌의 문화라고 볼수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출판기념회에 나와주십쇼라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없다"며, "3년전 같겠지만, 13년전 출판기념회를 했었다"고 양해를 구하며, 참석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밖에도 풍선처럼 터질 것 같은 풍부한 성량과 감성으로 사회를 맡은 정봉희(문협부회장)씨, 그리고 유럽여행에 나오는 이상묵 시인의 시 "선글라스"와 "베니스최후의 날"을 낭독한 김철순(문협총무)씨,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폴라리스 여행사 김범수 사장이 인삿말로 이날의 향기를 더했다.
앞으로 이런 자리가 오려면 13년을 더 기다려야 할텐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조금 더 속력을 가해서 3년안에 새로운 책을 쓰십사 해야 할것 같다. 마지막으로 "여행은 사치와 낭비가 아니고, 창조를 위한 재투자다"라는 사회자의 마무리 말이, 진부하지만, 새롭게 귀를 울린다. 당장은 안방에서 유럽을 보는 수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아는 만큼 더보이는 유럽여행 민디의 블로그 소개글. http://blog.daum.net/mindyleesong/13721998
< 書評 >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
한호림(‘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의 저자. 토론토 거주)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았다.” 이것은 노자(老子)의 말이다. 이 말은 노자같은 위대한 선생도 천하를 알려면 집에서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역설적으로 들려준다. 근래 한국의 출판계에는 유럽여행에 관한 안내서만 무려 500 여권 이상 쏟아져 나왔다. 여행의 대량소비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그 안내서들 중에는 ‘유럽 절대로 가지 마라’는 제목의 책도 보이고, ‘낭만자객의 유럽 100배 질리기’라는 제목의 책도 보인다. ‘가지 마라’는 노자의 반어법이고, ‘유럽 100배 질리기’는 유럽 여행을 단순한 ‘낭만’의 대상으로 대책 없이 덤벼들었다간 황당하게 질릴 수도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유럽은 한마디로 ‘관광’의 대상이 아니다. ‘학습’의 대상인 것이다. 다른 곳과 달리 자연경관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주력상품이다. 그 역사는 복잡하고 문화는 고급스럽기 짝이 없다. ‘세계는 나의 학교’라고 누가 말했나. ‘학교’ 중에서도 유럽은 최소한 ‘대학’급이다. 충분한 ‘예습’과 ‘복습’ 없이는 학점을 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해 12월 15일 한국에서 출간된 이상묵 씨의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출간 이래 이 책은 한국의 교보문고나 여러 인터넷 서점에서 500 여권이 넘는 다른 책들과의 경쟁에 들어갔다. 다른 책들이 여행체험의 감상을 전하거나 혹은 어느 골목 어느 식당의 현지 요리가 먹을 만 하다는 정보제공을 위한 것이라면, 이 책은 찾는 곳의 ‘역사’와 ‘문화’의 얘기를 통해 지(知)적 로드맵을 펼침으로서 차별화된다. 그 로드맵은 런던에서 시작해서 파리, 알프스, 이태리의 여러 도시들, 그리고 아테네, 이스탄불까지를 아우른다.
“ 관광은 그 곳의 전성시대를 엿보는 일. 남이 미쳐 가보지 않은 곳을 갔다 온 자랑으로 기행문을 쓰던 시대는 지났다. 근본적으로 이 책은 관광명소에 대해 어떻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와 귀한 체험들을 어떻게 자신의 파일에 잘 저장 정리할 수 있을까를 포인트로 삼았다.” 이것 역시 저자의 말이다.
토론토와 그 주변에 사는 우리 주변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토론토를 시내의 유니버시티 애비뉴를 달릴 때 퀸스팍을 끼고 돌며 지나간다. 수십 번도 더 지나다닌 교민들도 있을 것이다. 한 번 큰맘 먹고 내려서 들어가, 가이드 따라 둘러 본 사람도 혹 있을 테고. 그러나 설령 수십 번 끼고 돌며 지나가본 사람이라고 해도 거죽으로만 보아서야 그 건물이 오래 전에 건축된 아름다운 주청사라는 것 외에 한 번 들어가 본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이 뭐 있겠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있어, 딱 한 번 잠시 가본 퀸스팍에 흥미를 가지고 그때부터 그걸 목표로 들고 팠다고 가정해보자. 쉽게만 살려는 세상, 자기가 직접 파내기를 귀찮아 해서들 그렇지 기록 남기기에 열심인 후예들의 작품이라 사실 역사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파내면 파낼수록 희열까지 느끼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한 그 앞에 여기저기 서 있는 동상들이며 거기 역사가 보이고 예술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는 퀸스팍을 끼고 돌아도 이젠 자~알 보인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다.
나이 예순이 넘어서야 약간 수줍게 대면한 유럽. 오래 상사병을 앓던 것들이 과연 거기 고대로들 있었다. 그러니 말이 초면이지 이건 만난 순간 이미 수십 년 지기, 기막힌 상봉이었다. 그러나 단체 여행, 그 놈의 깃발! 그걸 따라다니느라고 너무나 금세 금세 강요당하는 이별들이 있었다. 그 엄청난 역사와 예술의 진수 유럽을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그 감정이 식기 전에 반추를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본격적인 반추를. 다녀온 그곳들을 온갖 자료 속에서 다시 과거로 가보는 것이다. 누군 뭐, 미켈란젤로나 나폴레옹을 만나보고 쓰나? 기본적으로 유럽 문명을 이어받은 북미에서 40년을 살아오는 강점을 살려 저자는 더 깊고 더 너르게 광범한 자료를 뒤적인다. 그리고 ‘이거다’ 싶은 것들만 추려낸다. 그렇게 해서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유럽 여행’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훌륭한 공부 책이다. 책 디자인도 뛰어나다. 출판사는 표지부터 친절하고, 세밀한 사진 자료로 화려하게, 멋지게 편집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교보문고나 여러 인터넷 서점들의 평점이 내용이나 디자인 다 10점 만점씩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유럽. 이 책은 유럽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실속 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영화와 책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 학살" 옛얘기가 아니다 "The Reader"를 보고 (0) | 2009.09.27 |
---|---|
죽음준비를 생각케 하는 영화 "P.S. I love you" (0) | 2009.09.02 |
트와일라잇.. 영어공부하며 읽은 소녀와 흡혈귀의 사랑 (0) | 2009.02.13 |
아는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 (0) | 2009.01.08 |
내가 뽑은 드라마 베스트 (0) | 2008.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