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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다음에 또가지 뭐!!!.. 시카고 여행(끝)

미국언니가 캐나다오면, 집에서만 머물다 간다. "어디 가볼까?" 누군가 이렇게 물었겠지만, 언니는 언제나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매번 사양하곤 했다. 그러면 "구경" 시켜주는 것은 어느새 강건너 가고, 이리뒹굴 저리 뒹글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곤 했었다.

 

미원이도 마찬가지다. 근 10여년 매해 여름 캐나다를 방문하지만, 온주 각지에 흩어진 가족들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갈 시간이 되곤 했다. 가까운 곳에 1박2일  몇번 하면 그것으로 큰 구경했다고 손사래를 친다. 우선 모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데다가 생업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우리들의 대접이 그러했는데, 더 큰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도둑심보가 아닐수 없지만, 미국쪽에선 이번에 캐나다 식구들 구경을 시켜주자... 약간은 이렇게 계획했던 것 같다. 그 결심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뚜껑없는 시내관광버스를 탈까,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시카고 전경을 구경할까, 뭐 이런 이야기들을 어깨 넘어로 들었으니 말이다.

 

결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구경"이랄 만한 것을 하지 못했다. 우선 급한 "쇼핑"부터 하고보니, 시간이 부족했고, 어영부영 하면서 시간이 다 가버렸기 때문이다.

 

"구경"이 빠지니 할말이 갑자기 없어진다. 기운을 내서 뭘 했나 적긴 해야겠는데.

 

사진은 세째언니네 집앞에서 캐나다쪽 두 언니(왼쪽, 오른쪽)와 동생 미원이.

 

하룻밤 자고, 쇼핑을 약간 했다. 미자네서 점심을 차려놓았다고 오라는 소식이다. 트리니티 신학교 가족 기숙사는 아담한 연립주택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전해들은 대로, 학교 캠퍼스가 앞마당이고, 뒷마당이니,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었다. 게다가 부엌쪽에서 바로 뒷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곳에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저녁을 지어놓고, 아이들을 부르면 제까닥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게 생겼다.

 

작다지만, 방도 세개, 거실과 부엌이 있는 이집에는 어디선가 "적은 돈"내고 얻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소파, 식탁, 책장등이 알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캐나다 알버타주 프레어리(Prairie) 신학교를 함께 졸업한 미자와 그녀의 남편 영수씨는 10년간 아제르바이잔에서 성경번역 선교사로 일했다. 그 세월에는 세 아이중 막내 조엘의 출생도 있었고, 안식년을 맞아 나왔던 캐나다에서의 온가족 교통사고도 들어있다. 재작년 선교활동을 접고 귀국, 캐나다에서 시어머님을 돌보다가 다시 트리니티 대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영수씨는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일반 목회에는 뜻이 없단다. 그들 부부의 꿈은 선교사들을 조직적으로 돕는 일이란다. 영수씨는 교육학 박사과정을 미자는 상담학을 전공한다. 모두가 우려하는 것은 그들의 경제적 필요에 대해선데, 그저 줏어듣기로는 장학금도 받고, 후원금도 받고, 현재까지는 감당이 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더 묻지 말자. 나도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친듯이 공부하느라, 다른 것에 한눈을 팔 수가 없다는 미자는 그래도 가족들이 온다고, 특별식을 준비해놨다. 채식만 먹는 엄마를 생각해서, 매밀국수와, 누들 김밥, 월남쌈과 맛있는 소스... 엄마는 "입에 꼭 맞는다"며 맛있게 드셨다. 사려깊고 조용한 미자는 이제는 "지성적"으로 까지 변해가는 것 같다. 우리 자매들중 최고학력을 자랑하는 날이 곧 오겠지.^^

 

사진은 영수씨와 막내 조엘이. 영수씨는 일요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설교했다.

 

점심식사후 또다시 쇼핑을 했다. 왜 그리 쇼핑에 목을 맸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갸우뚱한 일이다. 미국에 가면 무조건 명품을 사야 하는 것처럼 명품아울렛에서 헤맸다. 사실 시간만 가지, 몇집 돌아보지도 못한다. 그곳에서 좋은 가격에 가방을 건진 인사들이 있었고, 나보고도 자꾸 사라고 회유했지만, 나는 돈도 없었고 별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그런 가방에 대한 의식을 해보지 않아서인지.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는 내가 산다는 건, 제품에 대한 모독이 될것이고.

 

첫째날 두팀으로 갈라졌다. 젊은팀은 미원네로, 어른팀은 세째언니네로 향하여 출발. 우리팀은 한국식품에서 시장을 봐와서 요리경연대회를 벌였다. 요리의 제왕 사촌오빠의 매운탕에 감히 "강된장"으로 내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란 한국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을 이날 써먹었다.

 

첫째날 이렇게 두팀으로 갈라진 것을 계기로, 캐나다 7명은 형편따라 자꾸 찢어지는(?) 아픔을 당해야했다. 둘째날 골프를 잘치는 사촌오빠와 형부를 위한 골프나들이에 초보자인 우리들도 합류하게 됐다. 나머지 분들은 그냥 집에 있으셨다는데.. 우리는 즐거웠지만 남겨진 분들의 어정쩡함에 대해선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골프장은 작은 연못이 많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새로 진 집들이 너무 골프장과 가까이 있어, 그게 약간 의아했다.

미원이의 포즈가 멋있다. 미원이는 이번 방문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 울퉁불퉁한 얼굴 상담도 받고,

내게 좋은 화장품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제 시카고에서 보낼 마지막 날을 앞두고 다시 이산가족의 조짐이 보인다. 그날 골프가 잘안되었던 사촌오빠가 다시 한번 치자고 형부에게 제안한 것이다. 그 다음날, 미원이 남편 한서방이 "남자분들"을 모시겠다는 연락이 왔는데, 그 남자분중의 한명은 골프를 치기로 했으니 삐끗하기 시작한 것.

 

어쨋든 여자들은 미원이와 한팀, 그리고 종화언니는 세째언니와 세탁소에서 하루 있어보겠다고 나갔고. 엄마는 여자팀에 있을까 하다가, 한서방편에 붙기로 하였다. 이렇게 세팀으로 흩어졌다가 점심쯤을 기점으로 해서, 한서방이 경영하는 가게탐방겸 시내구경팀 한팀이 남고, 나머지는 미원이네로 들어갔다. (이날 집에 있던 팀들은 미국쪽에 파김치와 오이지를 담가주기 위해 벌였다가 모두가 생고생을 했다는 후문. 어쨋든 우리는 떠났지만 파김치는 우리들의 냄새를 피우고 있을 게다.)

 

한서방은 미국에서 한인들의 성업 비지니스중에 하나인 "미용재료상"을 한다. 미용재료상이라고 하면, 조금 감이 안오는 사람도 있겠다. 흑인들을 위한 잡화상이라는 게 맞겠다. 가발부터 시작해서, 옷과 일상용품까지 다 판매한다. 이 가게들은 흑인촌에 있는데, 다 헐어가는 흑인촌에서 유난히 반짝이고 깨끗한 곳이 바로 이런 가게들이었다. 한서방이 경영하는 가게들은 4곳으로 모두 매니저를 고용해, 크게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한서방 가게 이야기를 하면서 시카고 설명을 이어가야겠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시카고 흑인촌은 정말 황량하고 살벌하다. 모든 가게들은 철조망이 쳐져있고, 붕괴될 것만 같은 건물들도 많다. 거리에는 흑인들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카고를 흑인촌만 보고 간다면 좋지않은 감상만이 남을 것이다. 한서방 가게에는 점원 세명중 한명은 흑인이었다. 그들이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얼굴마담역을 한다고 한서방은 설명했다. 나름대로 패션을 살려서 옷을 입었던 젊은 남자 점원은 앞니가 몇개 빠져있어서 의아하게 쳐다봤는데, 엊그제 어떤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수단에서는 "일부러" 이를 빼는 것이 남자다움의 상징이라고 한다니, 그 총각도 그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미친다.

 

같이 일하는 한인에게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한서방과 근거리에 산다면서, 모든 한인들이 이곳에서 일하지만 사는 곳은 많이 떨어진 백인촌이라고 말해준다. 돈은 벌지만, 사는 곳은 다른.. 정말 목뒤가 뻐근해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구멍가게도 돈없는 이들이 물건을 많이 사간다. 돈있는 이들은 차를 몰고 큰 식품점에 가서 좋은 물건들을 살수 있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인생은 이렇게 불공평하다.

 

흑인촌을 빠져나와 길을 달려 다운타운에 가니, 이번엔 휘황찬란한 고층빌딩숲이다. 건물들 하나하나 잘들 생겼다. 두 가게를 도느라 많은 시간을 소모했고, 저녁시간이 가까이와서, 우리는 아쉽게도 드라이브로 만족해야 했다. 유명하다는 공원, 시카고 전경이 보이는 호숫가 그런 것들의 땅 한뼘도 밟아보지 못했다. 사촌오빠는 시카고의 "거대함"에 드디어 놀란 것처럼 보였다. 좀처럼 탄성을 발하지 않는 그가 "사진좀 찍어봐" 해대는 것을 보니 말이다.

 

 

 

시카고 다운타운  사진들.. 밑의 건물은 정말 무진 높았다.

 

우리는 어쩌면 한서방이나 미원이가 생각했을 시내관광을 골프, 쇼핑과 바꿔먹었다. 시카고는 이렇게 뭘 하다가 만듯이 하고 떠나와도 크게 아쉽진 않다. 우리는 조만간에 또다시 갈 수 있으므로. 그때 가면, 좀 현명하게 잘좀 보고오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미국 식구들과 이야기하다보니, 미국과 캐나다 다른점들이 흥미를 끈다.

 

우선 전기료가 엄청나게 싸다. 캐나다 전기료는 어마어마하다. 우리집보다 더 큰 형부집의 한달 전기료가 우리집의 4분지 1쯤 됐다. 그래서 한서방에게 물었더니, 한서방 가게 전기료가 우리 가게 전기료의 4분지 1쯤 됐다. 우리 가게가 작고, 그대신 냉장고는 우리쪽이 많지만, 아무래도 그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보험료도 미국이 싸다. 차 보험료는 경력, 나이, 운전사고등 여러가지가 작용하지만, 이것도 거진 삼분지 1쯤이 되지 않나 싶다. 또한가지, 최근에 토론토 스타지에서 잡아낸 것인데, "약값"이 캐나다가 무척 비싸다는 것이다. 약국에서 받는 리베이트등 때문에 그렇단다. 어쨋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모두 미국으로 이민오자고 농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재산세. 이건 또 캐나다보다 미국쪽이 셌다. 그렇게 많이 내고는 못살지, 할 정도.

 

미국과 캐나다 이쪽저쪽을 비교검토하면 재미있는 결과들이 나올 것 같다. 캐나다가 아직 순박하고 좋다고 느끼게 되는 것중의 하나는 미국에선 기름을 넣을때, "선불"해야 주유할수 있었다. 얼마만큼 넣을지 모르는데, 우선 돈을 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주와 주의 경계가 가까운 미국의 도로들은 "통행세"를 자주 거뒀는데, 내국인들은 미리 카드로 선납해서 하는가 보지만, 여행객들은 잔돈이 없거나, 사전지식이 없으면 낭패를 당할 일이다. 우리는 살뜰한 큰형부가 잔돈을 많이 준비해오셔서 그런 문제는 없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마치 한 나라같은 느낌일때도 있지만, 국경에 오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테러범들 때문에 강화된 국경검색으로 우리들의 차에는 "너무나 많은 음식"이 있는 것이 밝혀졌었다. 우리들의 식량으로 싼 밥과 반찬뿐 아니라, 냄새가 심한 오징어, 쥐포에다가 미국쪽에 준다고 엄마가 만드신 떡과, 수정과, 민들레김치 등등... 내집처럼 드나들기엔 너무먼 당신이랄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