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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캠핑은 고생을 견디는 것이다

 

 

숱한 여운을 남기며 7월이 쏜살같이 간다. 기록해 놓지 않으면, 오랜후에는 흔적을 찾기가 묘연해질듯 싶어, 자판기를 두드린다.

 

6월말부터 시작된 루미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안할수 없다. 집으로부터 근 70km쯤 될듯싶은 마을(킨카든)에 일자리를 얻어 아침저녁 아이를 실어날랐다. 나는 나대로 바빴고, 아이는 아이대로 짬이 나질 않았다. 처음 시작할때 좀 무리다 싶었는데, "엄마의 욕심"이 작동하여 일을 벌리게 된 것이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원래는 방학내내 아르바이트가 보장된 줄로 알았는데, 주인 내외의 현명한 결정으로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 둘째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해고(?)당한 것임으로, 좀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밖의 것들이 수월하여져서, 우리 둘다 일찍 추슬렀다.

 

둘째에게 맞는 아르바이트는 아니었다 싶다. 그애는 10일 동안 일해서 돈도 벌었고, 그돈으로 자신의 운전교습비용 절반을 스스로 댔고, 또 잠시동안이지만 많은 경험을 해, 훨 성숙해진 것같다. 오늘부터는 페이슬리 가게로 출근한다.

 

큰애는 동네 편의점 체인인 "맥스(Mac's)에 취직되었다. 걸어서도 갈만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둘째에 비하면 아주 좋은 조건의 아르바이트인 셈인데, 문제는 "밤일"이라는 것이다. 작은 동네에서 그나마 일자리를 건진 것은 좋은데, 2주일에 7일간, 이틀씩 삼일씩 밤 11시 출근하여 아침 7시 퇴근이다. 이런 시골마을에 새벽손님이 어디있다고, 24시간 오픈하는지 알수 없지만, 맥스 본사의 운영방침이니, 이 마을의 경영자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가 보다.

 

큰애가 손을 들기전에 우리 부부가 먼저 견딜수 없을 것 같았는데, 하루이틀 지나니, 점점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일을 갔다오면, 밝은 얼굴로 들어오고, 입밖에 "일하기 싫다"라는 말을 내지 않으니, 스스로 항복하기 전에 그애를 주저앉힐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예민한 체질이라 건강이 걱정되긴 하지만, 여름방학 동안이고, 이런 어려운 일을 겪고나면 다른 일들이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같이 참아내고 있다.

 

우리는 때로는 새벽 한시 정도에 가게까지 걸어가서, 아이가 잘있나 점검하고 돌아온다. 대부분의 날들은 "밤에 잠을 잘수 있는 행운도 아무에게나 오는 건, 아냐"하면서 딸에게 미안해하면서 잠을 청한다.

 

사진은 캠핑장에서 둘째 루미와 막내동생의 막내딸 유니. 

 

이러는 와중에 한국을 방문했던 자매들이 한국냄새를 물씬 묻혀서 돌아왔다. 특별히 조카의 결혼식 참석차 10여년만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미국의 동생은 한국 사람들의 정갈함에 대단히 놀랐단다. 후줄근한 노동복 차림으로 외출을 일삼는 북미의 사람들과는 달리, 모두가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었고, 텔레비전 속에만 멋진 남녀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서울 시민이 그렇게 훤출하고, 깨끗하더라는 말씀. 막내동생은 그말에 아무래도 돈벌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아야되겠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미국동생이 캐나다로 오기전에 두 남매가 캐나다에서 제 엄마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곳 식구들과 합류하여 캠핑을 다녀왔다. 생업을 돌보면서 하는, 절반의 캠핑을 위해 우리 가게에 가까운 곳으로 캠핑사이트를 정했다. 두집의 어린 아이들 5명, 우리집의 큰 아이들 셋, 상주 캠프 아줌마 셋, 방문 아줌마 둘,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책임질 남자 한명, 게다가 훈련안된 강아지 한마리. 동생네의 새식구가 된 강아지 스토리만 해도, 책 한권감이다.

 

정리하자면, 우리 자매들 다섯(하룻 저녁 방문자 둘 포함), 내 남편, 올망졸망한 아이들과 틴에이저 세딸, 그리고 강아지가 이번 캠핑의 멤버들이었다. 캠핑장은 부루스데일(brucedale)로 국립, 주립이 아닌 지방자치구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약간은 엉성했던 것이 그런 이유였던 가 싶다. 

 

남편은 트레일러와 텐트를 셋업해주고 일을 하러 가게로 떠났는데, 바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갈때는 에어컨까지 작동시켜주고 갔는데 비치에 갔다오니, 에어컨은 고사하고 트레일러에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과다친절"한 옆사이트 아저씨들들이 종횡무진 우리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버너불 하나 제대로 킬줄 모르는 아줌마들의 생존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저씨들은 트레일러의 전기배선부터, 휴즈 점검, 그리고 트레일러를 평형주차 하는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다,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것같다며, 충전기를 매달아놓으니, 조금 후에 트레일러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에 걸린 시간이 몇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배터리는 비상용이라 알고 있었던 우리들은 배터리에 충전이 되어있어야 전기도 작동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쯤 남편이 돌아오고, 어둠으로 질주하던 캠핑의 밤이 다시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은 "비"만 기억난다. 거의 폭우처럼 쳐내리는 빗줄기앞에서 아이들은 트레일러 속에서 무비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어른들은 트레일러 차양속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날 텐트에서 잘수 있을지, 오래된 텐트안에는 빗물이 고여들어오고, 한팀은 모두 철수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결정해야 했다. 바로 곁에서 떨어지는 소낙비를 배경음악으로 나눴던 대화들은 공포영화의 첫장면처럼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남편은 텐트앞에 차양을 만들면 비가 좀 덜 들이칠 것이라면서, 마음이 자꾸 캠핑사이트를 떠나는 사람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일단 하는데까지 해보자, 비가 주춤한 때에 텐트에 차양을 만들고, 텐트속을 말끔히 닦아내고, 에어 매트리스, 스폰지 바닥을 깔고, 잘수 있도록 시도해본다. 비가 흩뿌리니, 아이들은 트레일러에서 자도록 하고, 어른들 넷이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전기 히터가 바닥을 말려주고, 어느정도 잘수 있는 환경을 준다. 그런데 그만 캠핑사이트에 불이 나가 버린다. 밤 12시쯤 가로등이 불이 나가서, 자동적으로 불이 꺼지게 되어있나 했더니, 다른 것들도 작동을 안한다. 이 정전은 그 다음날 오전내내 이어졌다. 텐트속을 말리던 히터도 안되고. 번개와 천둥은 차츰 잦아들어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남편은 텐트 주변, 트레일러안의 점검등으로 잠을 못이루는 것같다. 나도 한잠도 자지못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날이 밝았다. 

 

나중 일어날 사람들을 위해 새벽부터 밖에 모닥불을 피운다.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잠들을 잔 것 같다.

 

이 사이트의 문제점은 호숫가에 있지만, 가까이에 비치가 없고, 수많은 갈대가 호숫가를 둘러싸고 있어서, 놀기엔 적당치 않다는 점이다. 막내가 오더니, 귓속말로 "집에 가면 안되냐?"고 한다. 날이 화창하지도 않고, 수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래사장이 있어서 어린 꼬마들이 무언가 삼매경에 빠질 일도 없고...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그래도 처음에 정한 3박4일 일정은 채워야 할터.. 고개를 흔든다.

 

그네와 미끄럼틀, 그리고 농구대가 있는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한다. 나도 아이들과 농구대에 공넣기 시합을 했다. 처음엔 형편없이 공이 튀더니, 얼마후에 감이 잡혀서, "골인"도 많이 했다. 집에서 가져온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하고, 큰애들은 자전거를 타고 돌기도 한다.

 

너무 놀것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동네 극장에 데려갈까 했는데, 캠핑장에 와서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바른소리만 해대는 큰애말에 따라, 그냥 "심심하게" 아이들을 내버려두기로 한다.

 

 

 

얼핏보니, 샤워시설도 없다. "아니, 이럴수가" 하면서 3박4일간 샤워를 하지 못하니, 아이들의 궁시렁대는 소리가 높아져가기도 했다. 날은 안좋고, 사이트의 시설물도 엉망이고, 이용할만한 자연도 기대에 못미치는 곳에 있으려니, 거의 "극기훈련"의 날들이 되어갔다. 샤워장은 얼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캠프 사이트를 무시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샤워장이 없다고 지레짐작했던 것을 캠핑이 끝나고 나서 알게 됐다.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서 서로 어울려 노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줌마들은 모닥불 죽이지 않고, 잘 살리는 기술도 습득하고, 버너도 제법 잘 다룬다. "큰 남자" 한명은 우리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느라 동분서주 바쁘기가 그지없다. 게다가 그놈의 "개새끼"까지. 날 보고 뭐라 하지 말라. 미국동생네에 들어온 새 식구 강아지 때문에 모든 것이 아주 복잡해졌었다. 텐트안에서 재워야지, 모닥불곁에 안오게 신경써야지, 강아지까지 혹독한 시련을 했던 기간이었다.

 

언제나의 교훈이지만 "어려움을 피하려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걸 마주하다보면, 그안에서 새록새록 맛이 나온다. 처음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아이들도 하루이틀 지나면서 팀웍이 생겼다. 어린 6살 유니와 11살 유나가 아침상을 차리는데, 훌륭한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모두가 평소에 안하던 것들을 한번씩 해보는 계기가 된다. 캠핑을 나가보면, 날씨와 자연환경과 먹고, 씻고, 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것들을 순조롭게 해주는 "현재의 생활이 얼마나 안락한 것"인지, 뼈속깊이 느낄 수 있다. 캠핑은 "고생하러" 떠나는 것이 맞다.

 

RVing(알빙, 캠핑 트레일러에서 보내는 것)과  Camping(캠핑, 텐트치고 야영하는 것)을 한꺼번에 해서, 복잡미묘해지기도 했다. 누구나 캠핑 트레일러에서 자고싶어했다는 것, 시카고 동생 미원이만, 강아지 데리고 3일간 텐트에서 자면서 살신성인 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떠나오던 날 아침은 왜 그리 쾌청하던지, 그날부터 캠핑을 시작해야 할 것같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시간을 앞으로 끄집어 당길수도 없고... 그렇게 축축한 캠핑을 할수밖에 없었던 그것, 닥치는 대로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캠핑이었다.

 

 

 

 

 

 

 마지막날 밤에는 남편은 가게, 한의원, 캠핑사이트를 왔다갔다 하며 신경쓰느라 늦지 않은 저녁에 골아떨어졌다. 남편의 몫이던 쓰레기치우기까지 하지 못하고 잠이 들 걸 보니, 정말 고단했던 가 보다. 불씨를 꺼트리며, 쓰레기를 치우는등, 마지막 정리를 마친 우리 아줌마들은 그제서 진정한 캠퍼가 된 것 같다. 이번 캠핑에서 남편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할수만 있다면 온몸으로 막고 서있을 것같은 불굴의 의지로 우리들을 보호했다. 처형과 처제에게서 후한 점수를 한꺼번에 땄다.

 

우리는 이 여세를 몰아 "어른들만의 알빙"을 계획중이다. 그 일을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할 예정이다. 미국동생의 두 아이들은 종화언니가 데리고 있고, 그들의 강아지는 우리 애들이 돌봐주고, 우리가게 또한 딸들에게 맡기고 간다. 아이들을 키워놓으니, 이렇게 써먹기도 하는구나, 기쁘기는 한데, 2박3일간 별일은 없어야 할텐데. 가게일을 내집일처럼 봐주는 미키 아줌마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긴 하다만. 

 

어쨋건 어른들끼리의 알빙은 "아이들"의 혹을 떼낸, 그자리에 "능력"의 날개를 단 어른들만의 놀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그 판도라의 상자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