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더디게 오고있다.
폭풍우치는 밤들을 몇날이나 보냈는지 모른다. 그레이 부루스의 늦은 봄이라고 해두자.
그래도 봄의 햇살을 간간히 받을 수 있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이틀.. 지난 사월의 날들중에서 7일 정도 반짝했다. 주관적인 날씨정보지만, 그럭저럭 맞을 게다.
그중 3일은 텃밭 정지작업을 했다. 작은 넓이와 길이의 세 두둑을 만들었다. 잔디밭 한구퉁이에다가.
자 어떻게 밭을 만들었는가 추적해보자.
밭만들기 프로젝트는 둘째와 나의 공동 아이디어였는데, 그중 달가와 하지 않았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있는 꽃밭도 제대로 못가꾸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텃밭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첫번째 난관은 장소였는데, 보기에 좋고 가꾸기에 좋아보이는 모든 장소들에 대해서 보이콧했다. 물주기 편하고 집안에서 한눈에 보이는 잔디밭은 소유권이 본인에게만 있는양, 경계의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의 가장 큰 우려는 밭을 만든다고 잔디밭을 다 파헤치고, 밭도 제대로 못가꾸면서 잔디밭만 망친다는 것이었다. 물론 면전에다 “밭을 망칠 것”이라고 엄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속마음의 우려는 그렇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랴.
결국 그가 양보한 곳은 저멀리 버려진 곳처럼 보이는 작은 공간.. “치사”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도움을 청하나 봐라, 이를 북북 간다.
밭을 만들고자 했을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땅을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잔디의 뿌리를 다 들어내야, 마침내 뭐라도 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잔디를 파내는 일은 내 힘에 겨웁기도 하지만, 텃밭만들기가 파괴적이고 또 파헤친 땅위에 흙을 덧입히는 것도 만만치 않게 생각되었다.
궁하면 통한다하던가? 작년부터 가끔씩 들렀던 유기농 농부아저씨는 텃밭만들기를 다른 식으로 하고 있었다. 그분은 제주도에서 유기농업인으로 많은 활동을 하시고 있는 분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그분의 블로그 "유기농업 & 삶의 자유와 느림을 꿈꾸다" http://blog.daum.net/kyu1515 를 방문해보시기 바란다. 그분의 텃밭만들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다. 우선 땅을 파내지 않아도 된단다. 표피의 땅의 성분이 제일 좋은데 그걸 파내고, 다른 흙을 덮어서 하는 것은 땅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란다.
큰 기계가 필요없이 농사지을 수 있다니, 한번 따라해보자 싶었다.
장소협상이 끝난 그날 오후 자와 끈을 가지고 밭을 만들 세 두둑에 줄을 쳤다. 두둑의 넓이는 110cm씩이고 길이는 정확히 재보지 않았지만 넓이의 4배쯤 될까? 그러니 아주 작은 면적이다. 두둑과 두둑사이인 고랑은 각각 35센치미터쯤 된다.
밭 만들기 작업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밭의 장소가 최적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큰 나무밑에는 그동안 오랫동안 잔디와 꽃밭에서 나온 풀들이 버려져있는 곳으로 그 밑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었다. 밭의 옆이므로, 이 흙을 바로 이용할 수 있었다. 연못물도 바로 곁에 있어서 물을 줄수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와 남편이 다퉜다. 수도물을 줘야 하는데, 호스를 사용하기엔 너무 먼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는 물을 길어 밭에 주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내게 말한다. 무거운 것을 들기에 버거운 나에 비해, 그녀의 에너지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인 것 같다. 연못물은 물 종류중에서도 좋은 편에 속할 것이니, 사실 밭에 물주는 것을 둘째가 맡아한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긴 하다.
그 땅의 흙을 파서 잔디를 덮었다. 이것이 잔디를 죽게 할 것이다. 그 흙위에 오랫동안 방치해둬서 흐믈흐믈해진 나무와 섞여있는 흙을 덮었다. 이 부분에 씨앗이 심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땅에 이불을 덮어줘야 한다. 항상 습해서 온갖 미생물들이 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이불로는 잡초, 나뭇가지, 낙엽등을 이용했다.
잔디를 파내지 않고, 그위에 흙을 덮어 밭을 만들었다. 잔디가 죽을까?
나뭇가지등으로 밭을 덮어놓은 모습..
줄만 쳐놓은 마지막 세번째 두둑..
이렇게 해서 세개의 밭중 2개를 완성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겨울과 흡사한 날들이 흘러갔다. 며칠전 따뜻한 날에 마지막 세번째 밭을 조성했다. 작년 음식물 쓰레기를 모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안에 구더기와 각종 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통에 너무 놀라서 쓰레기 모으기를 중단했었다. 1년이 지나 음식물 모았던 통을 열고보니, 그 쓰레기가 모두 흙이 되어있다. 정말 신기했다. 이것이 부식토인가 보다. 어쨋든 세번째 밭에는 이 부식토를 위에 덮어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의 이불덮기를 하여 밭조성을 끝냈다.
유기농 농사 블로그의 김윤수 선생님의 방식중 가장 독특한 것은 땅을 나뭇가지나, 잡초들로 덮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땅이 직접 햇볓을 받으면 안된단다. 잘려진 잡초들과 작은 나뭇가지들, 낙엽들로 덮어놓는 것은 다른 풀이 자라는 것도 방지하고, 벌레, 유기물들이 함께 사는 공생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한다.
농사용어에 아직 둔하여, 설명이 매끄럽지 않음을 용서하시라. 거름을 쓰지않고 풀을 덮어 밭을 만든다 했더니, 엄마께서는 우리밭에서 나는 농산물 얻어먹기는 포기하시겠다고 하셨다. 듣도보도 못한 방법으로 한다하니, 우습기만 하신가 보다.
이제 밭을 꾸민지 2주쯤 됐고, 날이 완전히 따뜻해질 주말쯤 씨앗을 심을 예정이다. 사실 큰 기대는 없다. 첫농사에 시중에서 파는 거름도 쓰지않고, 집에 있는 흙들을 사용하여 그냥 만들었으니, 작물이 자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부엌에서 나오는 과일껍질을 밭에 뿌리고 있는데, 보기에 좀 흉하고, 그음식물 쓰레기가 어떤 작용을 할지 염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가지를 차지하고라도 농사 시늉만 내는 것으로도 뿌듯하다. 어려운 일은 둘째가 다 했다. 땅을 파서 덮고, 물을 길어다 뿌리고. 나는 부식토와 낙엽등을 끌어다 덮어준 것밖에. 이렇게 쉽게 밭을 만들었으니, 큰 덕을 볼 생각을 한다면, 염치없는 일이다. 그래도 한편, 날 무시하던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긴 하다. 올 여름 농사일지가 어떻게 될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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