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가 세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자, 누구나가 가슴을 쥐어싸고 아픔을 호소한다.
나 역시 그를 생각하면 간단없이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 부모를 생각하게 된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을 “부모탓”이라 하면 안된다. 많은 문제들이 중첩된 결과일 것이다. 단지 남의 땅에 사는 같은 세대 부모로서(물론 그들은 나보다 연장자임에 분명하지만) 어찌 살아야 하나 그런데 생각이 미친다.
15년전에 이민와서 미국사회의 한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세탁업을 그 부모가 했다는 보도는, 그의 부모에 대해서 한가지도 알지 못하면서 “다 아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 이유는 나도 이민1세대며 “세탁업”에 버금가는 “편의점”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업종은 미국과 캐나다의 차이로 볼 수 있고 한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분야이다.
2004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이경숙씨의 “475번 도로위에서”에도 세탁업 종사자 이야기가 쓰여있다. 이민 30년이 넘는 이경숙씨의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빈 것일뿐 이민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단숨에 읽고 공감했다.
그 배경이 미국이었지만 캐나다의 한인사회와 어찌 그리 비슷할까 놀라왔다. 이민 1세대와 1.5세대, 그리고 2세들이 겪는 애환까지 우리들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만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장씨는 한국에서 실패하고 처형의 초청으로 이민와서 세탁업을 하면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는 경제적으론 성공했지만, 어느날 보니 자식과 부인은 촌스런 그를 뒤로하고 저만큼 달아나 있다.
“다섯살이 갓 지나 이곳에 데리고 온 후로 밤낮 일에 매달려 놀아주지도 못하고 살다보니 이제는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62쪽) 딸과의 사이는 이렇게 묘사된다. 그는 영어가 짧아 아이와 깊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세탁소라는 게 노동으로 벌어먹는 직업인지라 몸을 깍아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해서 몇시간씩 다림질을 하거나 세탁한 옷에 비닐을 씌워 옷걸이에 거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깨가 빠개지는 것같은 통증이 와서 진통제를 먹어도 잘 가라앉지 않는다.”(63쪽)
어떤 한 업종을 유지하고 키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육체적 한계에도 부딪친다. 그러나, 한인들은 뚝심으로 그 일을 감당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조승희 부모에 관한 기사가 업데이트 된다. 그의 부모들은 “일벌레”처럼 쉬지않고 일만 했다는 소식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생활을 하는 큰딸 자랑할 때만 행복한 표정을 지었단다. 자식교육에 온몸을 바치는 헌신적인 한국인 보통 부모를 연상케 한다.
한인들은 근검 절약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1세들은 어쩌면 그런 평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너나 할것없이 “일”에 매달리는 것을 본다. 일하는 것을 나쁘다고 해야한다는 것이 좀 저어되지만, 이쯤에서 우리가 한번 심각히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그러기 전에 어떻게 일하는가 더듬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캐나다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편의점”으로 대치하여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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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15년쯤 전에 가게를 구입했다. 은행에서 대부분의 모게지를 얻고, 카드 빚을 내서 산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모게지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새벽 7시에 문을 연다. 가게문을 열면서 배달온 신문부터 정리한다. 손에 검은 잉크가 묻어난다. 그러는 와중에 아침 손님을 맞는다. 대부분 커피, 신문, 담배를 사간다.
손님이 없는 틈틈이 음료수 냉장고를 살핀다. 유효기간이 바툰 것부터 판매를 해야 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유효기간을 꼭 확인하고 빈 공간을 채운다. 싱싱한 것은 뒤로, 빨리 팔아야 하는 것은 앞으로.. 눈썰미있게 정렬하지 않고서는 손해가 날 수 있다. 직원을 쓰는 친구들이 하는 불평중 하나가 직원들의 성의없는 선반정리로 많은 손해가 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손님들은 같은 물건이라도 일단 유통기한이 긴 물건을 빼내가니, 먼저 들여온 물건을 팔기전에 새 물건을 눈에 띄게 진열하면 안된다. 이런 작은 일도 주인맘에 들게 하는 직원들이 많지 않다는 하소연들이다. 그리고 우유 냉장고도 들여다 보고 같은 방법으로 빈 곳을 채운다.
선반 정리를 하면서 빠진 물건을 적어 내려간다. 오후에 아내가 나오면 일을 교대하고 도매상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요일, 잡지 배달이 왔다. 지난주에 안팔린 잡지를 정리해서 묶어놓은 것을 돌려주고 크레딧을 받고 새잡지를 받는다. 새잡지를 꼽아 넣으면서, 다시 지난 잡지들은 빼어놓는다. 다음주에 발송할 것들이다. 잡지 정리하는데 손님이 오거나 해서 다 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러는 사이에 빵 배달이 왔다. 그는 날짜지난 것은 수거해가고 새로운 빵을 넣어준다. A씨는 빵의 숫자가 맞나 확인해주면 된다.
비디오 도매상에서는 다음달 새 비디오를 주문하라는 전화가 왔다. 아이스크림 주문전화도 왔다. 여름이 가까워오니 아이스크림을 조금 더 주문했다.
아침을 먹지않고 와서 속이 출출하다. 그는 가게서 비상식량용으로 먹을겸, 팔겸해서 갔다놓은 한국산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손님 때문에 한참 분 라면을 속에 집어넣어 허기를 달랜다.
아내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그는 조금 더 먹고 도매상으로 향한다. 주말 동안 장사가 잘되 꽤 많은 물건을 해야한다. 큰 카트에 꽉 차게 두 대를 실었다. 도매상 직원의 도움으로 물건을 실었지만, 조금 힘에 부친다. 그는 1시간 달려 다시 가게로 온다. 물건을 풀어놓고, 부인과 함께 가격을 찍고 물건을 선반에 올려놓는다. 그런 일들이 끝나니 저녁때가 훨씬 넘는다. 부인은 아이들을 위해 집으로 간다. 11시에 일이 끝나고 집에 가니, 피곤이 몰려온다. 늦게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다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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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위와 같은 하루를 지내는 게 편의점 주인들의 일상이다. 가게 모게지를 갚아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칠 때는 부부가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 조금씩 여유가 생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경험으로는 5년 이상만 지나면 가게 하나를 경영해서 모게지 갚아가며 아이들 키우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이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부 둘만이 경영하기엔 벅찬 것이 편의점 일이다.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일에 여유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들은 부모가 함께 양육해야 하는데, 어떤 때는 저희들끼리 있게 될 때도 많다. 부모중 한명이 함께 있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
그런데 특별히 한인들은 “직원쓰기”를 어려워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자.
* 아직 사람을 쓸만큼 안정적이지 않다.
* 일을 마음에 들게 하는 이를 찾기 힘들다.
* 백인과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 일하는 이들이 현금을 빼내간다.
* 다른 사람을 쓰면서 마음이 상하느니, 몸은 고되도 가족끼리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일리가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여유”는 물건너 간다. 조금 쪼들리더라도, 직원이 일하는 것이 어설프더라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지라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시도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직원을 잘 부리는 것도 “가게경영”을 오랫동안 힘들이지 않고 하는 방법이며, 또 다른 면으로는 현지 사회의 고용창출에 이바지 할 수 있다. 편의점 종업원이란 직업이 서비스업으로 참으로 “단순노동”이다. 그래서 보수도 높지 않다. 그러니 종업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다. “똑똑하고 능력있는” 이들이라면 이미 다른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니, 잘 가르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여름이 되거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손님들은 올 때마다 자리를 지키는 가게 주인들에게 언제 “휴가”를 가는지 물어온다. “휴가”의 개념조차 없을때, 그런 그들의 질문이 이상하게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사회를 관찰하다 보니, “일”과 “쉼”을 적절히 조합해 생활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루빨리 일을 마치면 돈을 받게 되는 공사일도 주말과 저녁에는 하지 않는다. 하루 8시간 이내로 일하는 것이 그들의 몸에 뱄다. 그리고 그들도 때 되면 가족과 휴가를 떠난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1.5세, 2세를 키우는 부모로써, 우리는 이곳 부모들보다 더 많은 숙제를 갖고 있다. 아이들이 이 사회에 당당하게 적응하도록 부모가 도와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 뒷받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이들을 알고 있다. 이민와서 아이들이 재빨리 학업을 따라가라고 가정교사를 구해준다. 물론 부모는 그 시간에 그 “돈”을 대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부모가 도와줄 생각을 해야 한다. 그건 부모에게도 큰 결심이고, 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이의 교과서를 같이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다보면 서로 실력도 는다. 더불어 학교생활을 짐작할 수 되고 신뢰가 쌓인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게 되는 때가 온다. 그것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걱정할 것 없다. 이 나라의 교육제도를 믿고 발맞춰가면 된다.
물론 아이들이 고학력일때 이민온 부모들은 그렇게 도와준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아이들은 부모의 작은 조언으로도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배울 때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또 한단계 나아가게 된다. 실질적인 도움이 못된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건 “돈”을 벌고 전문적인 교사에게 기대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져온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한국 부모의 그 열의면 아이들의 수업을 함께 연구하는 것도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다.
조승희의 누나는 사과문에서 “동생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함께 살았지만, 서로간에 깊은 이해가 없는 삶, 모두가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큰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난 차제에 좀 정리를 해보자. 부모의 제역할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일을 균형있게 배분해야 한다. 그래서 단기간에 일찍 일어서려는 욕심으로 일만 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 부모를 필요로할 때 곁에 있어주는 부모가 되야겠다. 그것이 부모들도 보다 인간답게 되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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