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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지난 주말 우리 부부는 둘째 루미를 데리고 특별한 외출을 하였다.

시삼촌의 책 "한의약 이야기" 출판기념회가 토론토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여러모로 뜻깊은 행사였다.

왜.냐.하.면. 민디가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촌스럽게 군다고 말하지 말라. 정말 이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행사장에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문에 날 일인데, 게다가 사회씩이나 보다니.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캐나다에 하나밖에 없는 친척이며 조카부부인 우리들이 삼촌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려야 했다. 그런데, 숙모께서 갑자기 사회를 부탁하셨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더니만, 우리 부부에게 후한 점수를 주시는 유일무이한 토론토의 지성인 부부께서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삼촌이 책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편은 삼촌이 원고를 교회 웹사이트에 올릴때 타자를 쳐서 대신 등록해주는등, 삼촌에게 도움이 되었었다. 그런 원고들이 쌓이고 쌓여 책을 묶어내게 됐으니, 남편은 그 공을 받아도 되지만, 나는 "출판"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삼촌의 책이 어떤 경로로 출판되는지, 세세히 간섭하지 않았다. 물론 간섭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이름있는 출판사를 찾아서 그를 연결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그 작업이 벅차고 확신할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안에서만 머물렀었다.

책은  그럭저럭 꾸며져 나왔는데, 이게 영 마음에 미안함이 있다. 늦었지만 내가 도움이 된다면 사회인들 거절할수가 없었다.

참으로 무모한 용기였다. 달변가도 아니요, 앞에 서기 적당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니요, 목청이 상쾌하지도 않으면서 "무식의 용감"만 믿고 덤볐다는 것이 말이다.

사실, 사회자는 앞뒤 연결을 잘해주면 되는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순서를 받고 예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대강 손으로 적어내려간 것을 문서로 작성해서 출력했다. 그것을 한 열번쯤 읽으면 내용이 대강 머리속에 들어가리라 생각하고, 아침에 토론토로 떠나면서 읽기 시작했다.

결론은 외워서 하는 사회라, 말도 띄엄띄엄, 책읽듯이 진행됐지만, 큰 무리없이 무사히 끝나긴 했다. 외운것중에서 50%는 없어지고, 30%는 그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렸다.

다행인 것은 출연자들의 말씀이 유익하고 흥미로와서 비전문적인 사회자의 진행미숙을 덮어주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시인 이상묵씨와 석영창 한의사가 나눈 대담은 대단히 재미있었다. 석한의사 책 서평을 써서 한국일보 고정칼럼난을 장식했던 이상묵씨는 그의 책을 "맨션" 혹은 "고층건물"에다 비유했다. 시집도 낸 그분은 자신의 책을 "작은 방갈로"로 겸손하게 말해 이 책을 띄워주는 한편 시집을 앙징맞은 작은 책으로 상상하게 하니, 그는 진정 시인이랄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석한의사의 책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분야를 다루고 있다며 너무 거대하여 발을 들여놓기 어렵지만, 한번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이 책은 동서와 고금을 꿰뚫는 "건강 칼럼"들의 노적가리라고 칭찬한다.

 

본격적인 질의에 들어가자 저자는 테스트 받는 것 같다며 좌중에 웃음을 선사했다. 이 시인은 질문을 통해서 석한의사가 책을 쓰기까지의 역사를 끄집어냈고, 화타가 마취제로 사용한 마비산의 내용물에 대한 질의등 전문적인 내용도 있었다.

 

석한의사는 화타가 조조를 수술로 치료한 것등,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정작 마비산의 성분에 대해선 말하지 않자, 이상묵씨는 "요점"을 말하지 않고 삼천포로 빠지시는가 꼬집어 주기도 했다. 화타 당시 그의 비방이 불에 타 없어져 화타가 개발한 약재의 성분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걸, 꼼꼼한 독자로서 집어주기도 하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작은 건강세미나의 성격도 지녔었다.

석한의사는 책에 싣지 않은 "하나님이 내린 음식"에 대한 소개도 하였는데, 그는 35년간 서양의를 하다가 중병에 걸린 여의사 쉐리 로저스씨가 연구한 것이라며 최고의 음식으로 "God's Food"를 소개했다. 이 음식은 자연이 준 그대로 먹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깡통에 든 채소는 모든 병균을 제거하고 기계로 돌려서 만든 음식이니, 정신병에 걸린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고혈압등 성인병에는 "매일 샐러리를 그냥 먹는" 샐러리 솔류션을 소개했다.

출판기념회가 끝나가면서, 나는 "혹시나 저자나 관중에게 발언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오랫동안 석한의사와 사귄 한의사가 나와서 그 기쁨을 나눴는데, 나중에 들으니 함께 공부한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러 나갔다가 그 말만 빼고, 횡설수설하다 내려왔다고 서운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석한의사가 한의학에 발을 뗀 뒤로 그 길을 함께 걷는 노장들은 출판기념회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반추해보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을 것 같다.

 

 

내 글에 언급된 세명의 주요인사 한자리에... 오른쪽 볼펜 든 사람이 사회자, 그리고 그 옆에

이상묵 시인, 그 옆에 석영창 한의사가 보입니다.

 

출판기념회의 뒷이야기를 더 하자면 나와 남편의 공식 데뷰전이기도 했다. 시인 이상묵 선생은 대담 자리에서 마이크를 받자, 그동안 초야에 묻혀 살아온(?) 우리 둘을 그럴듯하게 소개하셨다. 선생은 그에서 더 나아가, 나를 "한 메일 기자"로 캐나다 시골생활을 아름답게 쓰고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다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밥 세끼만 축내며 살지는 않았던 것 같은 위로를 받았는데, 그것은 또한 나와 참석자들이 받은 착각이기도 하다.

 

낯이 뜨뜻해진 이날, 10년만에 만난 토론토 문학계의 사람과 인사도 하고, 다음주에 있을 또다른 출판기념회의 초대장을 건네받기도 하였다.

 

사실, 출판에 대한 나의 애정은 각별하다. 나의 첫 직장이 출판사였기 때문인지, 제대로 된 책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책을 읽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은 모든 출판업계 종사자들과 같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출판에 관한 욕구가 꿈틀거렸다. 그래서, 이번주에 예정된 한 문인의 출판기념회를 미친척하고 가볼까 생각중이다.

 

이민지에서 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한번도 부딪쳐 본적이 없다. 삼촌은 출판사를 찾지 못하시고 인쇄소에 파일을 맡겨서 책을 묶어내셨다. 책의 공급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며, 책의 품질도 좀 떨어진다.

 

삼촌의 책 출간은 내게 무언가 도전을 주는 것도 같다. 이민의 땅에서 모국의 언어로 무엇인가가 계속 쓰여지는데, 영어로 된 책이 아니니, 이곳 출판사에서 상대해줄 것도 아니고, 어느 유명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출판사 섭외가 무척 까다로울 것이다.

 

이번 주 다가오는 출판기념회에서는 이민의 땅의 출판 풍토가 어떠한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힘도 없으면서, 나는 왜 조금씩 오지랖을 넓히는 쪽으로 선회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원고가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드러내고 말하지 못하는 "내안의 어떤 욕심"도 있다는 것을 살짝 비춰야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