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지면서,
"왜 이제서야..."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바깥분과 함께 이야기하자면서 대기실로 가서 남편을 데려왔다.
남편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이 의사
"아무래도 함께 듣는게 나을 것 같군요. 재차 설명하는 것보다는.."
나는 그 의사의 자상함이 마음이 들어, 조금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예견했던 것보다 더욱 결과가 나쁜 것 같아 보인다.
"자, 우선 이 화면을 보세요."
조금전에 간호사가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을 추켜들고,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여준다.
"상태가 아주 안좋으세요. 조금만 일찍 왔어도 손써볼 수 있었는데. 거의 회복불능입니다."
그가 자세히 설명해준 결과에 따르면, 왼쪽의 윗 어금니 하나와 오른쪽의 윗어금니 두개가 썩었고, 그것이 신경을 건드리며, "치아"를 살리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혹시, 내가 무슨 불치의 병이라도 걸렸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는가? ㅎㅎ
그 의사의 진지한 접근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렇게 "풍"을 좀 넣어서 이야기를 시작해봤다.
어쨋거나, 나의 치아의 상태가 아주 비관적이라는 말이었다.
치과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던 날로부터 1년 이상이 지나있었으니, 나도 참 엔간히 미루고 미루다, 완전히 망쳐가지고 의사를 만난 것이긴 했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들을 끝내고 마음편히 치과치료를 받겠다고 생각하고, 병원문을 두드렸더니, 그날 이후로 두달 후에 약속이 잡혔다. 가까운 곳의 캐네디언 의사였다. 그곳에 갔더니 일단 "치아 청소"를 먼저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담당의가 오더니, 특별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그 검진은 이 병원에서는 할 수 없고, 다른 병원을 소개시켜준다고 한다. 이 청소만 하고, 다음번 이 청소 날짜를 주면서, 전문의가 전화를 할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 시간을 잡으면 된다고.
그때 즈음이었다. 치통이 시작된 것이. 그 전에는 이가 약해서, 전체적인 진료는 받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통증이 시작되니, 새 의사에게서 언제 전화가 올지, 그 약속은 또 언제 잡혀질지 까마득하게 생각되었다.
남편이 도시에 있는 한인치과에 가보자 하였다.
그래서 들르게 된 한인치과에서 이상과 같은 진료결과를 받게 되었다.
엑스레이를 잘 살펴보니, 왼쪽 윗 어금니는 예전에 빼버린 아랫니가 없어서인지, 밑으로 조금 자라있었다. 이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고 썩어있으니 미련없이 빼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고, 오른쪽 위 두 어금니도 맞물려서 둘 사이가 썩어있는데 신경치료로 회복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일단 "발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그 곳에 이를 심는 방법이 있으나, 내 경우에는 상악질?이라든가 무엇이 너무 얕아서 이 심기에 적절하지 않다 하였다. 상악질을 건드리면 다른 큰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생 이를 한쪽에 두개나 또 없애야 한다는 데에 뜨악해졌다.
나는 그날 왼쪽 윗 어금니 하나를 뽑아내고, 다른쪽은 생각한 다음에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한쪽 이를 뽑아내면서 그 의사는 마취주사를 놓으며 "아, 안타깝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네, 잘 참으십니다. 이제 조금 더 하면 됩니다.." 끝도 없이 위로하면서 이를 흔들어 빼내었다.
그의 친절에 넘어가서 였는지, 빼낸 이가 아깝지도 않았고, 홀가분하게 생각되었다.
다음날, 의사의 지시대로 양치를 자주하고, 헹궤내기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데 아이가 전화가 왔다며 바꿔준다.
"아, 괜찮으세요? 어제 이를 뽑아서 얼마나 힘드세요. 걱정이 되어서 전화했습니다."
너무도 친절한 젊은 남자 의사선생님이 나를 까무라치게 했다.
그리고 오른쪽 이도 아프지 않았다. 어쨋든 뽑어버려야 한다면 쓸데까지 쓰다가 언제고 뽑아버리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친절한 의사와, 조금 소강상태에 든 치통 때문에 이 에피소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치통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이건 첫번째 왔던 것과 질이 달랐다. 처음에 왔던 치통은 아무리 길어도 1-2시간 안에 끝났는데, 이번 치통은 오후에 시작해서 쉬는 시간없이 이어졌다.
아픈 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앉아있는데, 내가 없어진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전만 해도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것을 믿지 못해서 오랫동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일인지 남편이 잘해낼 것만 같다. 아이들도 좀 헤맬것이긴 하나, 어쩌면 제 앞길들을 꾸려나갈지도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글쎄, 석양 때문이었는지, 아픔 때문이었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이곳 신문에 대문짝만 한 사진 하나가 실렸다. 눈이 동그랗게 쌍꺼풀진 청년, 코도 잘 생기고, 그런데 그 밑에 오니 입술을 조금 벌린 것 같은데, 그 안에 세상에 이가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사진이었다. 두개도 서로 떨어져서 약간 삐딱하게 엎어져있고, 마치 젖니처럼 곧 빠져나올듯 매달려 있었다.
그 청년이 일간지 일면에 오른 이유는 "토론토 스타"지가 심층취재하고 있는 온타리오주의 빈곤상태에 대한 취재의 한 파트였다. 그 청년은 불우한 아동기를 보냈고, 현재 결혼해서 살고 있으나 아내의 적금을 해약해 이를 치료한 것과 현재 치과갈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 어림없다는 해설과 "치아" 때문에 적절한 직업을 찾지도, 또 제대로 못지못해 영양불균형 상태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진은 정말 충격적인 인상을 모두에게 심어주었는가 보다. 기사가 나간후로 그 청년을 돕겠다는 치과의, 자선단체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속보다.
캐나다에서도 치과는 정부의료보험에서 제외된다. 일부 큰 회사에서는 치과보험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치과의 문턱이 높기만 하다. 내 경우와 같이 예약진료를 받으려면 사정없이 몇달을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청구되는 금액도 적지 않다.
개그 콘서트에 자주 등장하는 이 하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 청소부들... 이가 있을 자리에 까만 테이프만 갖다붙이는 것으로 얼마나 인상을 추레하게 만드는가? 외모를 취하는 인간들은 그런 사람들을 쉽게 "깐보아도 될 사람"으로 취급한다.
나 역시도 가게에 오는 손님중에 이를 빼고, 못해넣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측은하고, 안된 마음을 갖게되곤 했다. 인생이 막바지이며 , 그를 회생할 여력도 없는 "바닥인생"이라고 무시했었겠지. 그러나 그런 이들 모두, 나와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이"을 잃고 낙심한 사람들 아닌가? 그런 사정이 되어봐야 그제서 알게 되니, 고질병은 딴게 아니다.
이제 내 문제로 돌아와보자. 친절한 의사는 다른 의사의 의견들을 수집하라고 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그 이를 빼야 하며, 그밖에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틀니는 너무 불편해서 없는 것이 낫고, 마지막 이니, 양다리를 걸쳐 해넣을수도 없고, 또 이를 박아넣을 수도 없다면서 말이다. 다른 치과와의 연결이 지금 현재 안되고 있다. "슈퍼 친절한 의사" 양반에게가서 확 빼고 와야 할듯싶다.
이것은 사실, 내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한 10여년전 치과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나의 치아상태를 "양" 정도로 표현하면서, 빼내야 할것도 많고 치료가 필요한 듯이 말했었다. 나는 그 의사를 신빙할 수 없고, 그때는 정말 "젊었기 때문에" 그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치과의들은 돈을 벌기위해 생니를 뽑으라고 한다"는 굴러다니는 유언비어를 맹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열심히 닦고, 그렇게만 한다면 다른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이렇게 안일하게 대처했었다. 그후에 몇번 치과에 가서 이청소를 하곤 했는데, 두번째 의사는 그다지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첫번째 의사의 소견이 과장된 것일거라고 치부했었다.
일의 순서가 있다고 믿었고, 그 일의 순서를 고집스럽게 지켜왔는데, 불행히도 나의 "치아"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 이렇게 큰 결과를 초래하게 된것 같다. 이런 저런 변명을 떠나 그동안 "게으름"에 대한 "벌"이라는 속생각이 든다.
이제, 치통이 심해져서 오른쪽 안쪽이 부어오른 것 같다. 나를 위한 야채죽을 만들었다. 참 세상살맛 나지 않는 일이다.
이 두개를 뽑아버리는 것에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것들이 그렇게 튼튼하다 말할 순 없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빼버려야 한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만.
어쨋든 아픔이 극에 달하니, 자꾸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이 세상에 떨어진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겠구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든다.
언제나 죽을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던 목사님의 말씀도 생각난다. 내때는 언제인지, 그 날을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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