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지않고 출발했다. 어디를 가든지, 여행객을 반겨주는 케네디언의 영원한 친구 “팀 호튼스”가 있기에 말이다. 언간해서는 거리의 레스토랑(fast food 식당)을 가지 않으려 하는 큰딸도 팀호튼스의 메뉴중에서는 먹을 것이 있는지, 반대를 하지 않는다.
그날은 여름의 마지막 연휴가 끼어있는 날이었다. 도시에서 올라오는 사람, 도시로 가는 사람들의 물결이 장사진을 이뤄, 첫 번째 팀호튼에 들렀을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침 한끼 해결하기 위해, 긴 줄에 합류하기가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것은 말해야 한다. 음식점앞에서 나는 차 뒷좌석에 있는 두딸을 돌아다보고, 무엇이 먹고싶은 지 주문을 받았고, 몸도 가볍게 가방을 메고 호기롭게 나왔던 것이다. 엄마가 아침을 챙겨먹이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정도의 수고는 내몫이었고, 평소에도 그 일은 주로 내 담당이었다.
이랬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첫 번째 “아침먹기”는 실패하고 말았다.
날씨도 화창했고, 집에 두고온 둘째가 좀 마음에 걸렸어도, 편안한 출발이었다.
그런데, 조금 가다 그 평안이 깨진다.
심심하던 차에 나는 남편에게 말을 던졌다.
- 어제 미원이(동생)하고 전화했거든.
- ... 응, 그랬어?(약간 늦게 반응이 나온다)
- 요즘 한국에서 시사촌 가족이 왔잖아. 오자마자 아기까지 낳고. 미원이가 많이 바쁜가봐. 제 식구들 도와주는 것 같기야 하겠어? 시사촌의 부모까지 오셔서, 별 재미도 없이 매일 밥먹으러 나가야 하고, 집에서도 툭하면 상차려야 하고. 이것저것 챙겨줄 것도 많고 그렇다네.
-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한서방(미원이 남편)하고는 가까운 사이들이잖아. 아하, 당신 우리집 식구들 오는 것 때문에 그렇구나.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챙기고 데리고 다니고 할께.
갑자기, 화제가 돌려졌다. 미원이와 전화하면서, 시어머님과 시동생 방문을 잠시 생각하긴 했어도, 말을 꺼낼 때까지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갑자기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뭐?
기가 막혀서 말이 막혔고, 말이 한번 막히니, 따질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알았어! 당신이 다 해! 다 하라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 뒷좌석의 아이들이 염려가 되는지, 끼어든다.
그때부터 내 안에는 “화”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남편이 야속한데 그걸 말로 깨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 이야기가 초반에 튕겨져 나갔으니, 화낼 만큼 소재가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이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더 따지고 싶지 않았고, 대신에 “화”를 내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때부터 말을 하지 않았다. 막내가 내 손을 잡아 흔들어도, 화난 사람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 있자 하니, 어디 이 상태가 얼마나 갈 수 있나 한번 실험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토로 가는 길에 있는 두 번째 팀호튼스도 먼 발치로 보니, 사람이 부글거린다. 나와 남편은 아침에 빵과 커피로 요기를 했지만, 아이들의 배속에서 한바탕 "헝그리" 연주회가 벌어지고 있을텐데. 동정은 가나, 내가 그것을 책임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또 한참 내려가다 보니, 다른 도넛샵이 나온다. 남편은 그곳에 차를 댔다. 팀 호튼스에 밀려 “망”하기 일보직전의 그런 도넛샵중의 하나. 내 예상대로 큰딸은 “이 식당에서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남편은 점차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다. 정차했던 차를 빼내서 다시 달린다. 세 번째 팀호튼스를 만난다. 나는 아직도 “화”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남편이 손을 흔들며 나가자고 해서, 그 손을 매몰차게 떼어버렸다. 속으로 남편이 아이들 것을 사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는 내게 일어날 것을 권고했지만, 자신이 그 일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내 반응을 보곤, 모두 입맛이 떨어졌는지, 그냥 가기로 한다. 뒷자리의 큰딸은 “막내가 울고있는 것을 좀 알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화”를 시험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도 한다. 제 기분나는 대로 해서, 우리를 곤란에 빠뜨릴 때가 많은 큰딸이 엄마의 “화냄”을 통해 차속이 얼마나 불편해지는가 경험해보길 기대한다. 그러나 큰딸보다, 막내가 치명적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다. “불쌍한 미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의 기분이 나로 인해 저기압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나는 조금 더 “화”를 갖고 있기로 한다.
화를 내다 보니, 몸이 무척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가위눌린 잠을 자듯, 무언가 큰 힘이 나를 누르는 것 같다. 네 엄마 얼굴 좀 봐라. 볼이 홀쭉 들어갔다. 화났나 보다. 그건 남편이 초반에 나를 보면서 한 말이다. 얼굴의 모양도 달라지겠지.
집을 나선 초반에 벌어진 일이니, 1시간도 넘게 그렇게 화를 낸 것 같다. 막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울고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도 조금 더 실험을 해보자.
목적지 도착 30여분전이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풀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잘못을 인정하고, 화를 풀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쨌든 뒤를 흘낏 돌아봤다. 아침을 굶은(막내는 항상 아침을 먹는다) 막내가 마음의 불편함에 지쳐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막내의 다리를 쓸어본다. 옆에서 큰딸이, “별꼴이야” 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막내가 눈을 살며시 뜬다.
“엄마,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어?” 하면서 다시 눈을 감는다.
화를 내는 동안 숨쉬기를 제한하게 되는가 보다. 어떤 것이 서운하고, 괘씸한지 생각해보느라, 보통의 숨쉬기가 안되는 것 같다. 어쩌면 옆사람에게 내 숨소리조차 들려주고 싶지 않은 “극도의 이기심”이 생기는 지도 모른다.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됐냐면, “화”를 풀고 나니, 산소의 양이 부족해졌는지, 끊임없이 하품이 나왔다. 그리고 한숨을 자주 쉬어야 했고, 나중엔 딸꾹질까지 나왔다. “화”낸 옆사람에게도 그런 증상이 생기는지, 남편도 하품을 하는 등 내가 하는 것을 따라했다. 몸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심하면 뇌손상까지 올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화"에는 "독"이 있다고들 말하나 보다.
처음엔 “가짜 화”였는데, 나중엔 어떻게 풀고 나올 수 없는 “진짜 화”로 돌변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화”를 푼것은 내가 임의적으로 만들었던 것이기에 가능했는데, 좀더 심각한 것이었다면 인간과 그 관계들이 일그러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막내에게 제일 미안했다. 그래서 그애를 꼭 붙잡고, “엄마가 가짜 화를 냈다”고 말해줬다. “엄마가 화내니, 너무 무서웠다”고 말하는 그애를 보니, 실험할 만한 것은 아닌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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