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영화인가?
제목이 "Little Children"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나오긴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극에서처럼 보조역이다.
그런데 왜 "어린 아이들"이란 제목이 붙여졌을까? 이것이 영화를 보는 키다.
어린애같은 어른들의 이야기다. 몸만 컸지, 하는 짓은 본능에 충실한 어린애들이다. 장난치는 내용이 "성"으로 업그레이드 됐을뿐이다.
케이트 윈슬렛과 패트릭 윌슨의 적나나한 나체신이 나오는 이 영화를 "불륜영화"로 소개한 한국의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작년말에 개봉되었던 것 같다) 그런 쪽으로 관객을 모으려고 하는 영화 관계자들의 의도가 들여다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불륜"이 주된 소재가 아니라, 여전히 어린애같은 어른들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이 더 알맞는 감상법일 것 같다.
오히려 나체신은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자꾸 걸린다. 영화가 시장에 나오면서, "성"을 강조해야 하고, 그것을 영상에 어떻게 잘 담았느냐는 것이 흥행의 주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했으면 영화를 아주 망칠뻔 했다.
케이트 윈슬렛(사라)의 연기는 두드러졌다. 동네 아줌마들에 섞이지 않는 "쿨"한 아줌마가 사회 진출이 지체되고 있는 인테리 남성 패트릭 윌슨(브래드)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 설정만으로 한편의 영화를 만들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이것은 비단 이들의 "바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라의 남편은 광고업을 하는 어엿한 가장이자, 사회인이지만 인터넷 음란물에 빠져있는 또다른 애어른이다. 음란사이트를 몰래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야한 속옷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런 남편을 보는 사라. 그녀의 일상은 급속히 빛이 바랜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남성, 브래드. 놀이터에 아들을 데리고 가끔 나온다. 그는 변호사 시험을 매번 낙방한다. 그의 부인 캐시는 다큐멘타리 제작자로 그 남편이 변호사 될날을 기다리고 그에게 압력을 가한다. 실상 브래드는 공부를 등한히 한지가 오래됐다. 아내는 퇴근후, 남편에게 책을 들려서 도서관에 가라고 보내지만, 그는 책가방을 끼고 주저앉아 동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 타는 것을 경이로 지켜볼 때가 많다. 나중엔 옛친구 래리를 만나 풋볼팀에 합류한다. 법 공부를 하면서 놓았던 스포츠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되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신의 부인처럼 완벽한 여자는 아닌, 수수하면서 개성있는 사라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래리. 그는 브래드의 옛친구이다. 경관으로 일하다가 총기오발사고로 소년을 죽이고 경찰직을 그만둔다. 그는 "일반적인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죄책감을 씻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아동 앞에서 "성기 노출"의 전과가 있는 로니 곁을 맴돌며 그를 괴롭힌다. 로니추방운동을 벌이고, 그의 집앞에서 시위를 한다.
로니. 이 사회의 미운 얼굴이다. 정신지체에다가 성도착증까지 있다. 한번도 제대로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로지 그의 엄마(메이)만이 그를 사랑해준다. 아이들이 있는 동네 수영장에 나타난 로니 때문에 경찰이 출동하는등, 난리가 난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이들이 잘못될까봐, 그의 병균이 묻을까봐 벌벌 떤다.
동네 아줌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의적으로 브래드와 입맞춤을 나누는, 현대판 보부와르
부인역으로 나오는 사라.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사라와 브래드는 욕심껏 정욕을 나눈다. 피차 무언가 답답하던 차에 서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도망을 결심한다. 자신들의 사랑에 골몰해 브래드는 래리와의 맥주약속을 가볍게 어기고, 래리는 브래드를 기다리다가 로니의 집으로 향한다. 늦은 밤, 확성기를 가지고, "로니의 추방"을 외쳐대는 래리. 로니의 엄마 메이는 온 몸으로 래리에게 대항하다가 지병인 심장병이 겹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엄마의 사망에 로니는 이성을 잃는다.
사라는 브래드를 만나 도망치기 위해, 공원에서 기다리는데, 브래드 대신 로니가 비척이며 다가온다. 사라의 딸 루시는 그네를 타고 있고. 최고의 긴장감이 돈다. 나는 살인사건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성을 잃고 칼을 들고 나온 로니가 사라나 그녀의 딸 루시를 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다 보니, 줄거리를 거진 다 말하고 말았다. 내가 좀 그렇다.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도.
결론은 최악에서 최선으로 반전했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래리가 자신의 성기를 칼로 자해한 로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말이다. 마지막이 희망을 담보해서 다행이지만 미진한 구석은 많다. 일시적인 평온이지만, 회오리 바람은 언제 어디서든 불어닥칠 것이다.
"불륜" "인터넷 섹스 중독" "성기노출" "스토커"등, 이 사회가 갖고 있는 불온한 기운들을 훑어냈다. 이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 그들은 마냥 깨끗할까? 아이들을 성추행범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동네 사람들은 결국 범죄를 가속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확성기를 들고 "동네 안전"을 외치는 래리는 오히려 "동네안전"을 위협하는 또다른 얼굴이다. 아들을 감싸안는 메이도, 남편과 담판을 짓지 못하고 옆길로 새는 사라도, 남편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캐리도 점수를 줄 수 없다.
덜 자란 어른의 전형을 보여주는 로니역의 필리스 소머빌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괴이한 표정, 엄마를 잃은 상실감등.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케이트 윈슬렛도 볼수록 감탄하는 여배우다. 타이타닉을 시작으로 Finding Neverland(네버랜드를 찾아서)가 그랬고,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남편에게 실망하고, 본능에 충실한 젊은 아줌마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애"같은 "어른"이 많은 세상, 흠,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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