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 지음
부흥과 개혁사 펴냄
"심리학에 물든"은 작은 글씨로 쓰여져있다. "부족한 기독교"는 두껍고 큰 고딕체로 쓰여져있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1편이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한국의 저명한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씨의 아들이란다. 나도 한국에 갔을때 사랑의 교회를 가봤다. 옥한흠 목사는 은퇴한 다음이었는데, 어쨋거나 담임목사가 설교하지 않았고, 손봉호 장로가 그날 설교를 맡았었다.
그때 예배는 감동적이었다. 젊은이들이 나와서 찬양을 인도했고, 나도 그들이 하는 것처럼 양팔을 올려 손을 흔들며 찬양을 따라했다. 아마도 그런 찬양형식, 혹은 예배방법이 유행인 것 같았고, 참신하게도 생각됐다. 그날 설교를 맡았던 장로님의 설교는 생각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었다.
사랑의 교회 내에 있는 서점에서는 신앙서적들과 함께 옥한흠 목사의 여러 저서들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찬송가와 옥 목사의 책 한권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옥성호씨는 그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시절, 40여년간 교회를 다녔으나 믿음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믿음이 없었을뿐 아니라, 기독교는 코메디라고 생각했단다. 이 글은 그가 어떻게 해서 기독인이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독교를 진리로 확신하게 된 후 "왜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라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교회내에는 말씀만으로 부족하여 구원군으로 끌어들인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심리학, 마케팅, 엔터테인먼트란다. 이것들을 파헤치는 것에 사명감을 느낀 그는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특허분석 전문회사인 "위즈 도메인"의 지사장으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한국을 떠나있는 것이 오히려 한국 교회를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긴 하지만, 옥성호씨는 스스로 결론을 간추려 보여주고 있다. 바로 마지막 장에서다.
우선 그것을 인용해 보자.
"첫째 심리학이 과학이 될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의 종교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둘째, 교회가 심리학을 기독교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심리학을 과학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며, 교회가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심리학을 일반 심리학과 차별하기 위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독교 심리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 심리학과 동일하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셋째, 심리학은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이며, 인간을 선하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적이며, 인간은 현재 타락한 죄인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근본적인 주장과 반대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즉 심리학은 근본적으로 반기독교적인 것을 주장했습니다.
넷째, 심리학이 오늘날 교회안에 자기 사랑, 긍정적 사고방식, 성공의 법칙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음을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로 기독교는 성경만으로 '충분한 기독교'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책은 위의 주제들을 다루는데 할애되어져 있다.
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드와 카를 융의 세계를 파헤치고 크리스천으로 둔갑해 들어와 사랑의 전도사인양 떠받들여지고 있는 에릭 프롬이 반기독교인임을 드러내었다.
심리학을 통해서 보면, 모든 인간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환자로서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정신병에 관한 성경으로 여겨지는 "정신병 질병및 통계에 관한 책"을 보면 이세상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진 없다.
윗사람에게 좀 개기는 사람에게 붙는 병명은 "반대편을 향한 도전적 성향의 질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질병의 증세로는 화를 잘 내고 논쟁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다.
또한 얌전한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가지는 병명은 "나르시스적인 성격의 질병"으로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나는 정상이야, 나는 아무 치료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치료에 동의하지 않는 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래도 절대로 정상임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병명이 있다. "병명을 확실히 알수 없는 질환"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149쪽에서 발췌)
저자는 무의식을 "신"처럼 떠받들고, "인간의 존엄을 최고로 놓는" 심리학은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와 어울릴 수 없다고 못박는다. "죄"의 결과로 빚어지는 것들이 인간이 책임질 수 없는 상처로 인한 질병으로 둔갑하니, "구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치료"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심리학은 객관적일 수 없는 관찰과 데이터 분석을 기초로 해서 이뤄지며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비과학적인 학문이라고 말한다. 즉 무의식이라는 "신"을 끌어들여야 하는 "종교"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런 심리적 접근 방식에 성경말씀을 양념처럼 얹은 기독교 심리학은 그 자체가 존재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에 덕을 끼치거나, 유명한 사람들을 덮어놓고 칭송하고 흠모하는 수가 있다. 기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말하자면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 릭 워렌이나, "긍정의 힘"의 조엘 오스틴같은 이들이 그렇다.
릭 워렌도 간간히 비판했지만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중 하나인 긍정적 사고방식에서 "긍정의 힘"으로 유명한 조엘 오스틴을 해부하고 있다.
나는 주간지에 연재되는 그의 글을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위해 특별히 작고 소소한 문제까지 역사하신다는 고백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기도하기만 하면, 원하던 것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화물칸에 실을 물건을 기내에 들고 들어갔고, 그것도 좋은 좌석에 앉아가게 됐다는 것을 읽었던 것 같다. 믿음을 갖고 기도하고, 긍정의 힘으로 기다리면 그대로 이뤄주신다는 참 만화같은 내용이었다.
조엘 오스틴은 CNN의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 두 번 출연했다. 비기독인인 래리 킹과의 대화에서 조엘 오스틴은 쩔쩔매는 듯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래리 킹이 "믿지 않으면 정죄받는다고 했는데 그렇습니까?"란 질문에 "... 잘 모르겠어요."등으로 얼버무렸고, 기독교의 다른 근본적인 질문에도 전세계의 믿지 않는 이들에게서 돌아올 화살이 두려운듯 잘 모르겠다는 말로 도배를 했다. 이런 그에게 동성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둥, 래리 킹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방송이니, 그 시간만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든지,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유명한 목사인 그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죄인"이라 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진짜 믿는 것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도 잘 모르고 있거나! 하지만 어떤 경우든지 오스틴은 내적으로 전혀 갈등을 느끼지 않는 듯합니다. 그점이 강점입니다. (중략) 래리 킹이 하나님에 대해서만은 조엘 오스틴 부부보다 훨씬 더 진지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오스틴의 설교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는 존재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당신의 말로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것들을 부르십시오. 승리를 부르십시오. 건강을 부르십시오. 행복이 넘치는 삶을 부르십시오."
물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원한다. 누구 하나 자신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인간이 있으랴. 이런 인간안에 있는 욕심을 이용해서 그를 충동한다. 그럴 듯한 예화들을 들어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구를 들어주는 도구로 존재하신다. 성공은 교회안에나, 밖에나 누구나가 추구하는 공동선인가 보다.
긍정을 하나님 속성으로 놓을때 성경왜곡이 일어난다는 것을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오스틴의 영향인지 한국에도 "대단히 긍정적"인 설교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크리스천인 것처럼 알려진 오프라 윈프리도 사실은 뉴에이지 사상을-쉽게 말하면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란다- 기독교와 혼합해 교묘히 퍼뜨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교회내에 여러 가지 다른 구원군들이 들어온 이유는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러가지 성경으로 충분한 이유와 성경을 읽는 태도등에 대해 조언하면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는 성경말씀을 인용한다.
교회내에도 여러 의견이 있다. 어떤 것은 의견으로 끝나지만 어떤 것은 기독교 근본 교리에 관한 것이기에 가재미눈을 뜨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성적이 떨어지면 우선 부모는 과외선생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는 부모에게 아이에게 교과서를 한번 더 보게 하는 것이 어떨까 권하고 싶어진다. 과외선생이 다는 아니다. 진도는 느릴지라도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은 선택이 되는 수도 있다.
성경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배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령께서 깨달음을 주시길" 간구해야 하지만, 그전에라도 주의깊게 읽을 염을 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령"이 역사할 틈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옥성호씨의 글은 평신도의 글이라기에는 많은 공부가 밑받침이 되어있고, 교회의 정확한 문제점을 짚고있다. 교인을 한사람이라도 불리기 위해서 시도됐던 각종 프로그램들이 그 자체가 심각한 오류에 휘말릴 염려가 있다. 교과서(성경)로 돌아가야 한다고 옥씨는 외치고 있다.
나는 사랑의 교회에서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고 말했다. 사랑의 교회뿐 아니라, 예전에 나의 모교회였던 토론토에 가서도 나는 그 비슷한 예배를 드렸었다. 그때도 그것이 선진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음악과 그 음악을 선도하는 평화로운 표정의 성도들, 악기들. 마음문이 확 열리는 느낌도 받았었다.
열린 예배의 한 유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찬양이 많고, 말씀이 줄어들고. 노래에 탈렌트를 지닌 인도자들이 성령에 감동된 표정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성경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감동"을 미리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서 든다. 성장해가고 있는 교회들이 대부분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옥성호씨가 다룰 2권, 3권이 그것인것 같다. 마케팅에 물든 기독교,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기독교... 달착지근한 복음으로 신자들을 모으는 현대 교회에게 던지는 이것들에 어떻게 교회가 반응할지 모르겠다.
한가지만 더... 어떤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나와 내가 속한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교회에 대한 이야기일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제대로" 믿고 있다. 그래서 어떤 비판에도 꿋꿋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처박으면서도 또한 내 속에 있는 또하나의 나는 이런 나를 변호하고 막아선다. 또한 이것이 전반적인 교인들의 모습인 것이다. 옥성호씨는 조금 더 용감해져야 할것이다. 이런 단단한 교인들을 흔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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