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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누구나가 나를 좋아해준다면..시트콤 이야기

The Barone Family

 

Everybody Loves Raymond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나를 좋아해준다면, 어쩌다 본 사람일지라도, 멀리있는 사람일지라도 나를 좋아해주고, 나아가 사랑해준다면..

 

사람들은 그런 꿈을 품고 살고, 개중에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레이몬드(레이로 애칭)가 그중 한명이다.

 

그는 형제 둘중에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이혼해서 혼자 살아가는 형에 비해 이쁘고 똑똑한 부인과의 사이에 딸 하나, 쌍동이 형제를 두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신문사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고정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약간 뺀질거리는 화이트 칼라 스타일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난 10년 내내 티셔츠에 체크무늬 남방을 받쳐있는 패션으로 출연한(가운데 남자) 레이몬드는 털털하고, 속물적이고,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스포츠 중계를 보기위해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별볼일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직 "마마보이" 티를 벗어버리지 못한 그가, 부모의 휘둘림 속에 산다는 설정이다. 서로 마주보는 곳에 사는 레이 부모는 걸핏하면 그들의 집에 들락거리며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의 CBS에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9년간 방영된 코메디 시트콤의 주인공 레이몬드(실제이름 Ray Romano)는 사랑받는 역이지만 인간적인 약점이 많다는 것이 드라마에 활기를 준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이 드라마의 리뷰를 위해 오늘 한편을 보았다.

 

"Raybert"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였다. 뉴욕의 일선 경관인 로버트(레이의 형)는 이혼후 새로운 여자친구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스포츠 바"에서 만난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 아가씨는 로버트가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레이몬드인줄 알고 흥미를 느낀다. 말하자면 레이몬드는 대중적인 인기인이기도 한셈이다. 그래서 로버트는 일단 신분을 위장하여 그녀와 교제한다. 레이몬드와 로버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진전시켜 로버트에게 레이몬드 역할을 하게 하는 "레이버트" 게임을 한다. 아가씨들이 레이 행세를 하는 로버트에게 호감을 보인다.

 

로버트와 사귄 아가씨가 집에 찾아옴으로 모든 것이 발각되는데, 이 자리에서 로버트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레이몬드 역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극이 코메디임을 기억하자. 웃음을 주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있다. 신분을 속여서라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하는 로버트에게 "네가 몇살이냐, 자긍심을 가져라.."그렇게 이야기해주는 데보라는 자신의 남편도 자신의 인기도를 실험해보기 위해 로버트와 짜고 그 일을 계속했다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한다.

 

텔레비전을 전연 시청하지 않는 우리가 어떤 계기로 이 시리즈는 디비디로 구입해서 보고있다. 최근에 시즌 8을 샀다. 이번에는 한꺼번에 보지 않고, 무료할때 꺼내먹는 곳감마냥 시간이 나면  "레이몬드"를 시청한다.

 

이 극은 "음식에만 자신있는 시어머니와 음식빼고는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고 자부하는 며느리"가 부딪치고, 도덕적으로 열심히 사는데도 운이 안따라준다고 믿는 로버트와 건들건들 사는 것 같은데, 여러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레이몬드가 얽히고, 상소리를 잘하는 먹을것만 밝히고, 부인과의 고역스런 동행에 치를 떠는 레이몬드의 아버지 프랭크와 그의 부인 마리의 심통난 얼굴들이 교차하면서 매번 야유하고, 싸우는 소리로 소란하다. 그러나 화면 저쪽의 시청자는 그들을 보고 폭소를 터뜨린다. 프랭크는 한국전 참전담을 황당한 상황일때 연출하기도 한다. 그의 정신적 결핍의 원인이 "참전용사"에도 있다는 느낌을 주려는 것 같기도 한다.

 

둘째는 아직 레이몬드 시청에 참여하지 않은 집안의 마지막 멤버이다. 그애는 "서로 화내고 싸우는 극을 왜 보느냐"는 것이다. 그렇긴 하다. 서로의 잘못된 점을 드러내기 위해 모두가 피나는 노력을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심지어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와 비슷하다. 나는 올바른데, 다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은 성토하고, 침튀기며 설전을 벌이고, 서로 등돌리고, 오해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앵그리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몬드의 부모님은 "하루라도 일찍 헤어지지 않은 것은 인생최대의 실수"라면서 서로에게 눈을 흘기며 늙음을 향해 가고있다. 프랭크는 심지어 그것을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웃음뒤에 도사리고 있는 블랙 코메디같은 부분이다. 

 

레이몬드 가족의 배경은 이태리이다.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일에도 따따부따 따져야 속이 시원하고, 부모는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서로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심이 지나쳐 상처를 입힌다. 특별히 고부간, 부모자식간 얽힌 관계가 비슷하다.

 

어떤 극이 잘 되려면 모든 인물이 살아야 한다. 레이몬드도 그점에서 강하다. 주요 출연진 모두 코메디부문 에미상 수상경력이 이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들의 연기는 일품이다. 실제 형제 자매간인 레이의 세 자녀들.. 그들도 촬영기간과 함께 자라났다.  인간이 이땅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알리(레이의 큰딸)에게 세속적인 아빠 레이몬드는 대답을 찾기에 궁색해 뒷걸음질쳐서 도망치던 그런 사색적인 단편도 있긴 했다. 레이몬드와 그의 아내가 잠자리를 밝히는 것만 뺀다면 가족 시트콤으로 손색이 없을텐데.

 

엔터테인먼트의 뜻중에는 "기분전환, 오락"의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에게는 엔터테인먼트로 이 시트콤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줘야 되지 않을까싶다. 이 시리즈를 시청하는 중에 심각한 전화가 한건 왔다. 내 머리가 이에 반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각한 것도 모두 웃음으로 돌리는 레이몬드를 만나고 싶은 이들은 우리처럼 디비디를 보면 될텐데. 그나저나 한국엔 안들어갔을까?

 

 

피에쓰: 로버트 역을 한 브래드 가렛(Brad Garrett)은 극이 종료된 다음해 부인과 이혼했다는 기사가 났다. 그리고 극에서 인생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않고, 죽음을 기다린다고 말하던... 아버지 역을 한 피터 보일(Peter Boyle)도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극은 남고 사람은 변한다. 그것참 이상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