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진소식이 인터넷에 떠있다.
아직 24일인 이곳 시간, 그러나 사건은 25일 아침에 일어났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금으로부터 겨우 몇시간전의 일인 것 같다.
밤늦은 시간, 평소에 안하던 일을 하려고 컴퓨터앞에 앉으니 그렇게 큰 사건이 눈이 띄어 잠시 주춤거리게 한다. 아직 자세한 소식은 잡히지 않았는가 싶다. 해일이 염려되고, 쓰나미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짧막한 보도다.
인생에 그런 일들... 가령 쓰나미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제, 인정할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게도,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인생이라는, 나의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그런 울림이 내 머릿속에 하루에도 몇번씩 왔다갔다 한다.
아마도 민혜기씨에게는 1994년이 바로 그런 해였을 게다. 건강하게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에게 경찰관이 사고소식을 갖고 현관을 노크한 그날.
그때 교민신문과 이곳 지역신문에는 그의 기사가 올랐었다. 목회상담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 개요를 제출하러 먼길을 떠났던 그가, 폭설속에서 트럭과 충돌하여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것이 벌써 몇년전일인가? 그 사고로 하여 그의 남편 정동석 목사는 휠체어 생활을 하는 장애인이 되었고, 뇌에도 손상을 입어, 예전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민혜기씨와 정동석 목사님. 정목사님은 유화 30여점,
연필화 수점을 전시했다.
이 그림... 오리가 작은 연못에서 놀고 있는 이 그림은 지금 우리집에 있다.
작가를 아는 첫 그림...을 사는 사치를 누려봤다.
그래... 세월일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일 것이다, 아니 그들이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살핌일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에서 그들은 소망을 낚아냈다. 민혜기씨의 자전적 수필집 "흔들렸던 터전위에"에는 정목사의 사고와 그의 투병생활, 그리고 민혜기씨의 간병에 관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70을 맞는 부부로는 보이지 않는 민혜기씨의 책 출판기념회에서 나는 그 부부를 뵈었고, 그들의 거쳐온 삶의 무게에 가슴한쪽이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그 고통의 기간들을 넘어 지금은 한시름 놓고, 옛일을 회상할만큼 되었다는 것이다.
민혜기씨의 두책... 병원 보조간호사로 일한 것과, 장애자 남편을 둔 그의
글을 읽으면 캐나다의 장애인 정책과 의료정책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장애인 남편을 두어서 "귀빈대접"을 받았다는 구절도 많이 나온다.
물론 정목사는 목회를 하던 그 옛날로 돌아갈 순 없지만, 장애를 입은뒤 새로 시작한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혜기씨의 두책, "흔들렸던 터전위에"와 "토론토에서 히말라야 고산족 마을따라" 출판기념회날, 정목사의 그림전시회까지 같이 있었다. 그림볼줄은 모르지만, 한땀한땀 수를 놓듯이 그림에 정성을 들였을 정목사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민혜기씨의 책에는 그의 지나간 시간들이 다 들어있었다. 삼십대 중반에 이민와서, 두 아이를 키우며 목사의 부인으로 시작한 이민생활, 그리고 보조간호사로 평생을 살아온 직업인으로서의 그, 그리고 늦게는 장애자가 된 남편을 간호하며 성인장애인들과의 교우를 다지고, 장애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의 장을 지낸 일까지.
직업인으로서의 그를 잠시 들여다보자. 그의 직업은 자신이 소개하기를 "전쟁터로 치면 말없이 죽어가는 졸병"과 같다고 비교한다. 보조간호사(Nursing Aid)로 양로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중병에 걸려 혼자 생활하기 불가능한 환자들을 장기적으로 곧바로 말하자면 죽을때까지 봐주는 양로원에서 잡일을 하는 직업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을 입혀주고, 목욕시키고, 밥을 먹여주고, 휠체어에 옮겨주는 슈퍼우먼같이 힘써야 하는 일을 정년때까지 해냈다. 치매걸린 노인들과의 기막힌 일상등,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있는 노인들과의 병동일지가 인생의 무상함과 소중함 둘다를 자각시켜준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지금은 의료통역을 해주고 있어, 말이 달리는 동포환자들의 입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그는 신학대학을 나왔고, 목사의 부인이지만 그의 신앙을 향한 여정은 끝이 없다. 어쩌면 66살의 나이에 히말라야 고산족 마을까지 갔던 것은 그의 "구도"를 향한 강한 열정이라 읽어진다.
그의 글을 두고 이상묵 시인은 발문의 제목에서 "삶의 끊임없는 껴안기"라 말하고 있다. 팔짱끼고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환희는 환희대로, 고통은 고통대로 철저하게 껴안고 몸부림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단순히 수필이라는 쟝르에 예쁘게 안착한 글이 아니라, 체험기라는 말이 어울릴 기막힌 삶의 조각들이다. 그 조각들이 울퉁불퉁하게 꼬매어져 다른 사람을 덮어줄 정도의 넓은 이불이 된.
그의 책 두권을 이틀에 걸쳐 다 읽고나니 한동안 망연하게 앉아있어야 했다. 작은 체구의 그가 그 일들을 다 감당해내야 했던 것도 그렇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창조주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그 영혼의 갈급함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신앙의 재정비를 위해 스위스의 "라아브리 공동체"를 찾아가기도 했다. 민혜기씨에 따르면 프랜시스 쉐퍼 박사와 그의 부인 에딧 쉐퍼는 20세기 지성인들 가운데 종교문제에 대해여 누구보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국 성서에서 명료한 해답을 찾고 스위스로 건너가 크리스천 공동체를 세우는데 그것이 "라아브리 공동체"이다.
프랜시스 쉐퍼박사의 저서 "이성에서의 도피"와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유명하며 민씨는 특히 그의 부인 에딧 쉐퍼의 수기 "라아브리"에서 큰 감명을 받는다. 영어의 쉘터(휴식처)란 뜻인 라아브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인간과 신에 대한 질문이 있는 이들이 방문, 그 해답을 추구한다.
나는 개인적으론 라아브리에 대해 처음 들어보지만, 민혜기씨의 고민을 이해할 것 같았다. 삶에서 영적인 갈증을 느낄때 어디엔가 기대고 싶은 마음말이다.
다만 아쉽다면, 현재 많이 퍼져버린 "다원주의적인 의견과 사상"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기독인에서 스님이 된 현각스님의 글을 읽고 민혜기씨는 많은 고민을 한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느냐는 질문말이다. 타협과 포용이란 허울에 둘려 많은 지성인이라 하는 이들에 의해 퍼져나가지만, 그 사상이 가진 맹독은 우리가 유념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쨋든 민혜기씨의 글을 읽고 내가 변한 것중의 가장 큰 것은, 죽음, 치매, 장애등의 마주하고 싶지 않고, 저밖으로 밀쳐두고 싶은 것들을 가깝게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죽음을 겪고, 남편의 장애로 말미암아 그같은 삶을 곁에서 두고 봐야 했던 그에게서 나 역시도 그런 것들에서 놓여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책에는 정목사는 사고후 자신의 장애를 인지한후 부인이 자신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오랫동안 했다고 쓰여있다. 남편이 아니면, 자신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민혜기씨는 능숙하게 남편의 휄체어를 밀며 출판기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깊숙이 했다. "출판의 판도"가 어떤가 해싸며 "건방을 떨며" 참석한 내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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