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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토미의 새출발을 위하여..."House of D"

무슨 영화를 보고나선가, 뭐 저런 영화가 다 있어? 했었는데, 역시나 그런 영화는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그 내용과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글을 처음 쓰고 난 뒤 추적을 통해서 그 영화가 "Mr. and Mrs. Smith"라는 걸 알아냈는데 정말 "킬링 타임"이란 말이 꼭 들어맞는 영화였다. 주인공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가 연인이래나 뭐래나 그런 것 흥미없고 두 배우를 찍기 위해 만든 영화처럼 엉성했던 구성이 기억난다.)

 

 

그래도 큰애는 재미있게 보았는지, 나에게 소감을 물어서 "메세지가 없는 형편없는 영화"라고 했다가, 엄마는 메세지로만 영화를 평가하느냐고 한소리 듣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나에겐 영화의 메세지가 중요하다.

영상미도, 또 그밖의 화려한 출연진도 아니고, 그 영화가 무언가를 던져주지 않으면, 우선 흥미를 잃게 되고, 악평을 하게 된다. 아마도 내가 꽤 “진지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ㅎㅎ

 

최근에 몇편 좋은 영화를 보게 됐다.

그중의 하나인 "House of D"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자.

 

대단한 거작은 아니지만, 한번쯤 다른 사람들에게 권해보고도 싶은 그런 내용의 영화이다.

 

 

<줄거리>

 

토미는 자신의 13살 생일을 잊을 수 없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로 앉아있는 그것을 어찌 잊을 것인가. 13살난 아들의 생일을 맞아 토미는 그때일을 회상하고, 아들에게 아빠의 비밀을 고백하려고 한다. 따라서 영화는 30여년전의 토미의 13살 생일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미는 13살때 뉴욕에서 프랑스로 건너오게 된다.
혼수상태에 있는 엄마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눈물을 흘리면서 뉴욕에서 탈출했다.

 

토미가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1년전 아빠를 여의고 엄마와 둘이 산다. 엄마는 남편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아들을 바라보면서 사는 병약한 모습을 보인다.

크리스천 학교에 다니던 토미는 똑똑하여 장학금을 받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고, 불어선생을 놀릴만큼 불어도 곧잘 한다. 그리고 집을 도와 "고기배달"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 고기집의 여자주인이 또한 불란서인이다. 토미의 불어사랑이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복선을 깐다.

 

배달직업은 그의 정진지체자 친구인 파패스와 함께 였는데, 이 정신지체자는 이미 나이 40을 넘겼지만, 토미의 명령을 잘따르는 그의 부하이자, 친구이다. 그는 또한 토미학교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기도 했다.

 

그랬는데, 토미에게 문제가 생긴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와의 댄스 파티를 위해, 엄마에게도, 그의 친구 파패스에게도 마음에 상처를 준다. 즉 엄마에게는 일을 하러간다고 속이고 댄스 파티에 가서 시간을 낭비한 것과, 파패스에게는 세상에 한명뿐인 친구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다는 질투심을 심어준 것이다.

 

이 일이 확대되어서 질투심에 어쩔줄 모르던 파패스는 그동안 둘이 눈독을 들이던 자전거를 훔치게 되고, 그 자전거 훔친 사건이 토미에게 번진다. 파패스가 토미에게 주려고 훔쳤다고 함으로, 정신지체자를 교사하여 도둑질을 하게 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토미는 파패스의 청소부 직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수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중,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House of D”에 대한 것이다.
이 집은 “Women’s House of Detention”의 약자로 뉴욕 시내에 있던 여성감옥이다.
이곳에 있는 죄수들은 철창 바깥으로 지나가는 행인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등, 어느정도 특별한 형태의 감옥이다.

 

고기 배달을 하면서 팁으로 받은 동전을 “House of D” 담벼락 밑에 모아놓고 있던 토미와 파패스는 그 감옥에 있는 한 여자 죄수(토미는 그녀를 레이디라고 부른다)와 친해지게 된다.

 

토미는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만나게 될때부터 그 “레이디”에게 조언을 듣게 되는데, 이제 막 청년이 되는 토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댄스는 어떻게 추어야 하는지, 여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을 전해듣게 된다. 높은 감옥의 한방에 갇힌 레이디는 깨진 거울을 비춰 반사되는 것을 보며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토미와도 거울을 통해 이야기한다.

 

토미가 여학생에게 빠져있는 사이에 자전거 도둑 사건이 일어나서, 장학금은 고사하고 학교에서 제적당하게까지 된다.

 

아들 공부시키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엄마는 결국 약을 과다하게 먹고, 병원으로 이송되나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성인이 되지 않은 토미를 위해 캐나다의 먼 친척이 양육인으로 그의 집에 들어온 것도 토미를 못견디게 하는 일이다. 그들은 말을 안들으면 "소년원"으로 보낼 것처럼 공포감을 조성한다.

 

토미는 여자감옥소 앞에 가서 레이디를 울부짖음으로 부른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망친 당신의 이름을 알려달라. 엄마는 죽어가고 있고, 나는 학교에서 쫓겨났고, 여자친구는 만나주려 하지않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당신을 꼭 찾아내서 보복을 하고야 말겠다고 울부짖는다.

레이디는 그에게 천천히 말한다.

 

“인생은 어려운 거다. 내가 어떤 죄를 지고 이곳에 있는지 아느냐? 남편을 죽인 살인범이다. 내가 나가면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 너는 나를 절대로 다시 볼 수 없다.”

그런다음…. 레이디는 “가라. 떠나라. 너는 자유하지 않느냐. 도망가라, 빨리 가라”고 충고한다.

 

토미는 울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13살이 되는 날, 엄마의 병상에 가서 그녀의 호흡기를 떼내고 프랑스로 날아간다.

 

물론 프랑스로 갈때 친구 파패스가 동행한다. 그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아버지 행세”를 멋있게 해내서 미성년자인 그가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가 아들에게 선물로 줄 도화지에는 그런 삶의 이정이 차곡히 그려져있다.

토미는 과거를 비밀에 부친채 패션잡지의 미술담당 작가로 근무하고 결혼도 하게 되는데, 용기를 내서 부인과 아들에게 제 과거를 모두 들려주기로 한 것이다. 헤어질 위기에 있던 이들 부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고, 남자로서의 일보를 딪기 시작할 아들을 위해서.

 

프랑스 부인은 그의 고백을 듣고 그에게 다시 뉴욕에 찾아갈 것을 권한다. 다시 가서, 옛 친구들을 만나라는 것이다. 그럼 다음에 진정한 의미의 새출발이 있을 것이라면서.

 

토미는 30년도 더 전에 떠나왔던 그곳을 방문하여 옛친구 파패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전보다는 훨씬 똑똑해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파패스는 토미가 학교다닐때 종교시간에 성경에 그림을 그려 한장씩 뜯어 창밖으로 던져버렸던 것을 모아놨다가 토미에게 보여준다. 그날은 마지막 성경시간이었는데, 토미를 위시한 아이들은 재미로 성경을 한장씩 뜯어 공을 만들어 창밖으로 날려보냈던 것이다. 

 

토미는 감옥을 관리하던 사람에게서 “레이디”가 그렇게 흉악범이 아닐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곳은 경범죄인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며.  토미는 레이디를 찾아낸다.

 

레이디는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너의 불쌍한 어머니는 그런 너를 이해했을 거야, 해서 토미를 또한번 울리고.

 

그는 아들과 부인을 초청, 함께 과거를 둘러본다.“House of D”가 서있던 자리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들어선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파패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 지금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내가 더이상 바보가 아닌것처럼.

옛 친구 파패스와 아들과 부인이 자전거를 타고 고기배달 다녔던 길을 달리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배경및 소감>

 

이 영화의 배경을 디비디에 녹화된 부록을 보면서 더 알게 됐다.
감독자인 데이비드(David  Duchovny)는 이 영화의 극작가이기도 하고, 성인의 토미역을 맡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의 감독으로의 첫 데뷰작이라고도 한다. 남편을 통해 들은 그에 대한 정보로는 하버드대학 영문과를 나온 흔치않은 미국의 지성인 배우중에 속한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좋아할뿐, 그밖의 것에는 좀 문외한이어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그는 아마도 유명한 배우이겠는데, 낯은 익지만 어떤 영화에서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극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니, 앞으로 더욱 주목해 보아야겠다.

 

토미의 엄마로 나온 티아(Tea Leoni, 불어이름이 나오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하다)는 데이비드의 부인이기도 하다. 티아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아들 하나를 키우는 상심한 엄마의 표정을 너무나 잘 담아냈다. 똑똑한 아들로 인해서 가지게 되는 때때로의 소망과, 약이 아니면 잠들지 못하는 나약한 미망인의 역할등을 말이다. 아들이 샤워하는 화장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볼일보고 빨던 담배를 변기통에 버리는 장면등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싹하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부인과 자신이 출연함으로써 출연로를 줄일 수 있었다고 질문자들에게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데이비드의 배역의 비중은 그다지 크지않다. 오히려 앤톤 옐친이라는 아역 배우가 영화전반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연기가 또한 뛰어났다. 장난스런 어린애에서 사랑을 느끼고 엄마를 보호하는 가장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한명의 성인이 되는 그 이중적인 모습을 그 소년이 잘 연기했다. 앤튼의 약간 고음의 갈라진 듯한 목소리 조차 그의 그런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한몫을 한다.

 

이곳에서 “레이디”는 일종의 파격이다. 조숙하게 세상을 알아갈때 참혹한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레이디”는 인생의 안내자가 되었지만, 토미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던 것들이다. 감옥안에 있는 이가 감옥 바깥에 있는 이에게 삶의 스승이 되었었으니.

 

어쩌면 어쩌면, 영화를 뒤로 돌리듯이 토미의 인생을 뒤로 돌려서 레이디의 조언이 없었고, 그가 여학생에게 신경쓰는 것을 줄였더라면, 토미의 삶은 조금은 평범하게 흘러갈 수 있었을 것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의 죽음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엄마가 조금 더 아이에게 관대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연속적인 추론만 나을뿐이므로 별 도움은 안된다.

 

“레이디”로서도 그가 갖고 있는 최선의 삶을 토미에게 알려준 것밖에 없다. 책임은 듣는자, 토미에게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그토록 심각하지는 않다. 로빈 윌리엄스가 아니면 소화해내기 힘들었을 것 같은 넘치지 않는 진짜같은 바보연기에서 때때로 미소지을 수 있다. 그 둘이 쌓아올린 독특한 우정은 이별장면에서 나의 눈물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낛이 없는 엄마를 사랑하는 13살 소년의 눈물어린 마음씀, 우리들의 옛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남녀 학생들의 학창시절등이 잘 어울어져 있다.


인생 전반을 훑어서 그린 이런 영화, 이런 것은 볼맘이 나고,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아마도 나는 영화 한편에서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