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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때로는 편한 여행이 좋다.. 캐나다의 프랑스를 찾아서(1)

 

 

몬트리얼 노틀담 성당앞에서 본 거리

 

 

때로는 편한 여행을 해보자.

 

어렵지 않다. 여행사가 준비한 각종 계획들을 훑어보고, 동의하면 된다. 세면도구와 옷 몇벌이면 준비가 끝난다. 선택관람과 유사시를 고려해 약간의 용돈을 챙기면 완벽하다.

 

한국에서 오신 세분의 어른(시어머님, 시이모님 부부)을 모시고 어떤 여행을 할까 고민했었다. 11월은 여행철은 아니다. 캠핑 사이트들도 모두 문을 닫았고, 하이킹 코스가 환상적인 국립공원도 비바람치는 날 갔다가 매운맛만 보고 돌아왔다.

 

그래서 생각해왔떤 것을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여행사의 여행안내문을 뒤적였다. 대형버스로 몬트리얼, 퀘벡, 오타와를 방문하는 2박3일 "동부관광:이 우리에게 적절할 것 같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니, 아이들은 친정언니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캐나다에서 버스관광은 처음이다. 언제나 차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어느때인가부터, 좀 덜 고생하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한다. 늙어가는 것일까?

 

지난 여름 우리가 어렵게 돌아봤던 피이아이 섬에 가는 관광상품도 있는 걸 신문을 통해 보게 됐다. 여행사의 도움으로 갔었다면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했던 남편이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전날부터 우리는 친정엄마가 주선한 저녁모임을 토론토에서 가졌고, 엄마의 작은 노인아파트에서 모두 함께 하룻밤을 지낸후 그 다음날 아침일찍 갤러리아 식품점앞에서 탑승했다.

 

노부부 두분이 앞자리에 앉아계신다. 가이드가 다음 승차장소에서 더 많은 분들이 오실 거란다.

두번째 승차자에서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아줌마 두분이 타신다. 일행이 분명해보이는데, 우리 앞자리에 각각 앉으신다. 혼자씩 앉아가는 것도 여행의 노하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분들을 보면서 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일가족이 오르고, 그 뒤를 따라서 청년들이 환하게 웃으며 올라온다. 혼자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분도 있다.

 

56인승 버스에 3분의 2쯤 찬 것 같다. 1명이 지각했다. 가이드가 핸드폰으로 열심히 연락하더니, 아가씨 한명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이렇게 2박3일간 한솥밥을 먹게될 일행이 모두 승차하고 버스는 토론토를 떠나기 시작한다.

 

가이드는 초면인 사람들에게 분위기를 풀기위해,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여행철에는 많은 관광차들이 휴게소에 서있게 되는데, 한국 할머니 한분이 중국인들의 버스, 같은 자리에 앉아계셨던 일이 있었다며, 서로 얼굴을 알아서 챙겨주면 그런 일이 줄어들 것이라며 소개의 시간을 갖자고 한다.

 

움직이는 차에서 마이크로 울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얼마 되었던가?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는가? 명단 1번에 올라있던 우리가족이 첫 타자가 되었다. 남편은 가족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이드는 우리 부부보고 이민 20년이 되어간다면, 원주민이시라며 웃는다. 면면을 보니, 한국서 방문온 이들이 가장 많고, 유학생들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우리같이 "오리지날 이민자"들은 없는 것 같다. 그렀거나 말거나, 나는 싱글벙글이다.

 

가이드는 소개가 끝나자, 아무도 청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소개하겠다고 한다.

 

1992년에 이민온 1.5세 청년. 30대 초반쯤 되었을 것 같다. 그는 다른 이민자의 자녀들처럼 방황하는 10대를 보냈단다. 학교를 빠지기도 하고, 부모속을 썩이는. 그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모든 물건을 이삿짐에 넣어왔는데, 심지어 잘못된 정보를 믿고 연탄집개까지 가져오셨다고 전해, 폭소를 자아냈다.

 

심기일전하여 좀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본인에게 "태권도"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데. 학교에서 시범보이는 일이 있고나서, 자신을 대하는 백인친구나 선생의 눈길이 달라졌단다. 우리것을 잘하는 것이 이민살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면서 뒷자리에 앉은 유학생들을 쳐다본다.

 

대학생때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를 시작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무척 매력적이었느나,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그렇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이 코스를 200회는 다녀왔으니 뭐 신기한 것이 있겠느냐...면서, 그런데 자연은 그대로지만, 매번 관광객이 바뀌니, 사람만나는 재미로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꿈이 있다면 "나의 여행사"를 차려서 "산수가 수려한 대한민국"을 이곳 사회에 소개, 그들을 데리고 한국여행을 시켜주는 것이라는 것. 많은 여행상품중에 한국여행을 "인기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라니, 대견해서 점수를 팍팍 준다. 이 소개도 200번 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바로 이 맛이다. 단체여행의 참맛... 생면부지의 사람과 약간의 소통을 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자 이제 여행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온타리오주를 지나 퀘벡주를 향해서 간다. 퀘벡주의 몬트리얼시와 퀘벡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시를 방문한다.

 

 

 

퀘벡 구시가지를 관람하는 마차. 곳곳을 누비며 다리편하게 관람할 수 있고 마부의 설명도 곁들여 들을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문제는 마부가 불어로 이야기 한다는 것.

 

 

 캐나다 역사가 시작될 무렵,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다툼이 크게 일었고, 결국 영국이 승리해 캐나다는 영국령이 되지만, 처음에 이주했던 프랑스인들을 다 몰아낼 수 없었다. 영국정부는 프랑스인들이 몰려살던 퀘벡주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도록 했고, 그들의 문화를 보전하게 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 캐나다는 영어, 프랑스어 두 언어를 공용언어로 쓰고 있다. 퀘벡에서는 "독립"을 외치는 소리가 아직 잦아들지 않고 있으니, 적과의 동침이 오래되고 있는중이다. 

 

비단 퀘벡주뿐 아니라, 퀘벡에 인접한 뉴 브런스윅주에도 불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지난 여름여행때 체험했다. 한편으론 영어, 프랑스어 두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 직업구하는 데나, 모든 면에서 우선권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은 익히 알고 있다. 극성부모들은 영어권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한교로 아이들을 보내기도 한다. 영어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는 교육을 통해서 습득케 하겠다는 야무진 꿈들을 가지고.

 

캐나다는 영국의 문화와 프랑스의 문화 그리고 인디언을 문화가 뒤섞여있다. 인디언들은 유럽의 바이킹족들이 오면서 살고있던 터전을 빼앗긴 불우한 민족들이다. 프랑스 탐험가 담 허보티라는 사람이 1535년 인도양을 찾아가다가, 캐나다 대륙을 발견했는데, 그는 이 땅이 인도인줄 알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인디안이라 불렀다고 한다.

 

인디안 문화는 도로나 마을 지명등에 많이 남아있는데, 온타리오는 "빛나는 인물"이라는 인디안말이란다. 덧붙여 나이아가라는,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란 뜻이다. 나이아가라의 한국말 뜻도 있다는데, 그건 "나이야 가라"라는 젊음을 추구하는 뜻이라나.

 

앞으로 내가 언급할 많은 정보들은 가이드가 한가한 틈을 내어 설명해준 것들이 많다. 파티를 자주 열고, 술과 노래를 좋아한다는 프랑스인들, 어떤 나라 사람들과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 게다가 다혈질이라니... 그 문화를 찾아가는 마음이 셀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