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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때로는 편한 여행이 좋다(끝).. 퀘벡 오타와 방문기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버스에서의 자신의 첫자리가 여행 내내 유지될 수 있을까하는.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차에 올랐다.

그래서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금 있다가 젊은 아줌마 한명이 올라온다. 그녀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친구집에 방문와 있는 중에 혼자 이번 여행길에 들어선 이였다. 여행을 즐기는 씩씩함이 그에게서 묻어나온다.

 

그런데 운전석 뒤의 바로 첫번째 좌석에 털썩 앉는다.

그 자리는 노부부가 앉았던 곳이다. 나는 "아 차" 하는 마음이 든다. 그 자리는 맞춤인듯 그들에게 어울려보였기 때문이다.

 

노부부가 자신들의 자리에 앉아있는 그 아줌마를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할아버지.. 집 사람이 멀미가 심해서 앞자리에 앉아서 창앞쪽으로 밖을 봐야 합니다.

아줌마.. 그러세요? 그러면..

 

하면서 자리를 옮긴다. 그것이 가이드 뒷좌석. 나는 또 "아 차"스럽다.

부산 아줌마 두분중 한명이 앉았던 곳이다. 조금 있다가 그 두분이 올라왔다. 한분은 왼쪽 의자에 앉는데, 일행인 또 한분은 자리가 없어서 조금 궁시렁 거리며 뒤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조금 생각이 있었다면 모두 앉은 다음에 빈자리중에서 이동을 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앉고싶은 자리가 있었으니, 그랬겠지. 마지막 날은 다시 부산 아줌마가 일찍 버스로 와서 제자리를 찾는 걸 보았다.

 

버스여행에서 작은 일탈을 소개하자면 또있다. 우리 단체여행객중에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여학생끼리, 남학생끼리 팀을 짜서 여행오기도 하고. 어떤 여학생은 혼자 차에 탔다. 역시 그들에게는 서로를 끄는 힘이 있는지, 분위기가 잡히고 있었나 보다.

 

두번째날,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기전, 시내에 남겠다는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나타났다. 가이드와 기사아저씨는 떠나는 그들에게 호텔 잘 찾아올 것과, 안전하게 돌아올 것을 주문했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는 호텔 에스컬레이터안에서 일행중의 남학생 한명을 만났다. 나는 호기심에 몇명이 놀러나갔었냐고 물었는데, 3명이라나? 그렇다면 시내에서 내렸던 학생들은 모두 한팀이 아니었나 보다.

 

어쨋든 젊음은 언제 어느곳에서든 움직인다. 어른들 보기엔 좀 불안하지만, 그 시간은 그들에게는 잊지못할 여행의 백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몬트리얼 시내를 떠나 한참을 가니, 몽모렌시라는 폭포가 나온다. 어느 폭포도 나이아가라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높이는 더 높은 84m란다. 언덕위의 폭포를 찾아가는데, 작고 지붕이 경사진 몬트리얼 전형적인 집들을 볼 수 있었다.

  

몽모렌시 폭포는 비경이었다. 들은 적도 없는 그 폭포가 가져다준, 시원함은 이 여행에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긴 나무길을 가서, 폭포를 구경하고 폭포위로 설치된 약간의 흔들 다리를 지나 또 한참을 걸어가면 반대쪽에서 폭포를 볼 수 있게 해놓았다.

 

폭포까지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있었지만 문을 닫아놓아 그저 정자에서 사진을 찍기만 했다.

 

몽모렌시 폭포.. 초겨울의 싸늘함이 시원함으로 다가왔다. 28층 높이쯤 되는 곳에서 떨어져내리는 물이 내는 청량함은 "도시여행" 중에 보석처럼 숨은 "자연의 맛"이었다.

 

글쎄 뭐랄까? 어떤 광경 때문이 아니라, 여행이 내 피부속에 들어오는 시점이 있는 것일까? 나는 폭포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싸한 물바람을 피부에 느끼며 "아 정말 좋다"하는 감정이 속깊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살얼음이 살짝 언 길을 걸으며, 일행과 약간의 간격이 있던 나는 이 말을 목청으로 뿜어냈다.

 

이제는 퀘벡 시티를 간다.

퀘벡에 들어가기전 "불어강의"가 버스안에서 열렸다.

 

"자,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혀꼬부라지는 한국말 쓰면 귀엽지요?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한 인삿말을 불어로 하시면 무척 좋아합니다. 여러분만의 시간이 많으니, 한번 써먹어 봅시다"

 

봉주르-낮에 하는 인사말

봉수아-밤에 하는 인사말 .. 봉숭아를 생각하세요

남자-미슈

아가씨-마드모아젤

부인-마담

그러니까 아저씨보고는 봉주르 미슈 하시고 아가씨 보고는 봉주르 마드모아젤 하세요오..

 

고급불어(?)

How are you-커먼사바 (껌만사와)

Thank you-멜시

very much-뽀꾸

                합해서 멜시 뽀꾸(멸치볶음)

 

excuse me-익스큐즈 모아

bye-어부구와(애기를 "어부구와")

so so(그저 그렇다)-꼼시 꼼사

 

가이드의 불어수업이 제대로 된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어쨋든 나는 익스큐스 모아와 멜시뽀꾸를 한번 해보았다.^^

 

퀘벡 거리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형성되어 있었다. 아랫마을에는 입체벽화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건물벽화의 한 장면이 되려고 애쓰면서..윗 마을에는 화가의 거리도 있다. 화가들은 그림을 전시하고, 관광객에게 팔고 있었다. 어쩐지 가난한 보이는 거리.. 예술은 어느 곳이나 "빈티"가 흐르게 되어있나 보다.

 

4백년전부터 형성된 마을, 촘촘한 건물들이 역사를 고증하고 있다. 내년이면 퀘벡시티 400주년이 된다 한다. 도시는 그를 계기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여러가지 아이디어 모색으로 바쁘게 되겠지.

그 건물에서 장사도 하면서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퀘벡 구시가지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계단과 마을전경.

 

입체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들. 벽화속 인물들은 실제크기로 그려졌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왼쪽 언덕에 높이 솟은 건물은 샤토 프랑티낙 호텔. 오른쪽 살벌한 대포쏘는 무기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격전지였던 것을 기념, 장식해놓았다.

 

샤토 프랑티낙이라는 오래된 성채같은 호텔속도 구경했다. 금색으로 장식한 로비, 그리고 지하의 상가들. 호텔 로비엔 고풍스런 의자들도 많다. 앉으면 왕이 되고 왕비가 될 것 같은 그런 화려한 의자들. 

 

예전 여름에 왔을때는 많은 음악도들이 악기를 들고 거리 곳곳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철지난 관광지. 그들은 다음해를 위해 어딘가에서 충전을 하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퀘벡을 떠나 오타와로 가기 시작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들이 나라안에서 싸우고 있을때 빅토리아 여왕은 수도를 옮기기로 한다. 지도를 펴놓고, 전국에서 가장 중심지가 어딘가 했더니, 오타와여서 이곳이 캐나다의 수도가 되었단다. 오타와는 자연적으로도 수려한 풍광을 지닌 전원도시로 불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뒤섞여있다. 정치가들에게 불어는 거의 필수적인 것 같다.

 

오타와 국회의사당의 웅장함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길을 끈 것은 많은 노숙자들이 한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몰려서서 대화도 나누고, 담배도 피우고 하는데, 말끔한 오타와의 이미지와 영 맞지 않는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그곳은 "복지센터"로 노숙자들에게 밥을 주는 곳인데, 정치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이런 단체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자극하여 "복지향상"에 이바지하는 지도 모르겠다. 숭늉을 찾을 곳을 아는 이들이란 말이지.

 

오타와에는 많은 박물관이 있는데, 우리는 "문명박물관" 한곳을 돌아봤다. 영어로는 "Canada's national museum of social and human history"라는 긴 이름의 박물관인데, 말하자면 캐나다의 역사와 삶의 자취를 담아놓은 박물관이었다. 특이한 것중 하나는 건물의 모양이었다. 인디언이 설계하였다 하는데, 모든 것이 원형이었다. 각이 없고 곡선을 최대한 살렸다. 안에나 밖에나 말이다. 인디언들은 그들의 토속신앙에 원형이 잡귀를 몰아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박물관은 우리가 더듬어온 퀘벡을 중심으로한 캐나다의 역사를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게 해줬다.

 

오타와 국회의사당앞에 설치된 꺼지지 않는 횃불. 게다가 물위에 불을 피워놓았다. 밑에서 개스가 계속해서 올라온다고. 그 주위에 캐나다 각주의 상징마크가가 새겨져있다. 

 의사당 세채의 큰 건물중 하나. 지붕은 동으로 만들어져 세월이 지나 녹색으로 변한 것이라고.

 

 의사당 뒷쪽에서 바라본 강을 낀 오타와 시내. 단정한 것이 마음을 끄는 도시였다.

 

문명박물관의 내부. 천장의 둥근 모양은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카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큰 조각품이 우리나라 천하대장군, 여장군과 닮은 것도 같네.

 

이번 여행에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정중에 몬트리얼의 한 식당에서는 스테이크를 풀 코스로 시식하기도 했다. 이런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한 어머님은 "사진 한번 찍어봐"라는 전에 하지 않던 주문을 하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몇번의 뷔페식이 있었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가 그러했고, 첫날 중국식당, 그리고 마지막 올때 중국, 일본, 베트남식이 섞인 뷔페식당을 들렸다.

 

한국에서 오신 어머님과 이모님은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으며 크신 분들이라, "자기 먹을 것만 챙겨오는 뷔페식"이 영 적응이 되지 않으시는지, 자꾸 공동의 접시를 사용하신다.

 

한분이 나가서 맛있어 보이는 것을 꽤 많이 담아오신다. 같이 먹자는 것이다. 나는 어르신께 맛있는 것 골라드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매번 잔소리하듯 할 수 없어서, "내가 어떻게 먹는지" 보여드린다. 같이 안먹고, 내것을 내가 챙겨먹는 것이다. 음식종류가 100가지나 되는 이런 식당에서 모두 같은 종류를 시식한다는 것은 내 사전에 어림없는 일이다.

 

이제 마무리를 할때다.

 

버스여행의 편리함은 꽤 많았다.

 

긴장이 없다 ..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버린다.

알아서 서 준다 .. 때마다 차를 세워 생리를 해결하게 한다.

먹을것 잘것 걱정 끝 .. 이번 여행에선 참 잘 먹고 잘 잤다. 호텔은 한곳을 잡고 이틀을 묶었다. 깨끗했다.

가이드의 도움이 컸다.. 깊은 지식은 아니어도, 여행지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들려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값도 저렴하다.. 단체 예약이니, 전체적으로 가격이 내려간다. 여행사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주먹구구로 계산해보니, 거의 비슷한 돈이 들었을 것 같다.

 

이제 먼데서 손님이 오면 함께 혹은 따로 이런 여행을 권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