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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내고향 서산앞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부루스 카운티

엄마의 부모님들은 생전에 1남4녀를 두시고 모두 근방에 시집, 장가 보내셨는데 그 이유는 형제자매끼리 가깝게 지내라는 뜻이셨단다. 지금은 군소재지로 변경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서산군에 속한 면이었던 우리집은 대산에, 그리고 큰이모네는 지곡, 둘째이모네는 처마골, 막내이모네와 삼촌네는 운산에 사셨다. 집집마다 또래가 있었던 우리 사촌들은 대산, 운산, 지곡, 처마골을 오가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래 글은 동생이 새해에 쓴 글이다. 그 당시의 아름다운 추억이 잘 그려져서 우리 사촌들의 카페 "이모고모"에서 옮겨왔다.

 

 

 

이모님네의 추억

 

이 미 자

 

어려서 한때 우리 모두는 예쁜 공주가 되고 멋있는 기사가 되는 꿈을 많이 꾸지않는가 싶습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그림책들을 보면서 우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지요. 

그러다가 대부분의 우리는 공주와 기사가 되는 꿈을 실현해 보지 못하고 성년을 맞이하게 되죠.

저에게는 그런 어린시절의 꿈이 작게 펼쳐질수 있었던 곳이 '이모네집' 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엄마에게 졸라 이모네집에 가게 되는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 몰랐어요. 

운산 막내이모네에 도착하면 미열이는 물론, 오래전부터 올것을 기대하고 준비하고 계신

이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셨지요.  이모는 아랫목을 벌써 뜻뜻하게 달궈놓으셨고, 옥수수에

찐빵에 고구마를 따뜻하게 쪄서 배고플 사이없이 우리를 먹여대셨습니다.  

 

배가 부르면 미열이랑 정미랑 밖에나갑니다.  물가에 서있던 멋진 나무에도 올라가 이야기하며 놀던 기억도

있습니다.  놀다가 먹다가 심심해지고, 또 입이 궁금해지면, 아마도 우리는 이모에게 뗑깡을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 충열이 오빠가 동원되었습니다.  이모의 명령을 받은 오빠는 앞장서서 이모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로 우리는 데려갔지요.  헤헤, 거기서 우리에겐 또 조그만 군것질거리가 손에 쥐어지고 

어둠을 헤치고, 좁은 논길을 따라 기사가된 충열 오빠의 인도를 받아 아무 부족함없는 행복한 공주들이 되어

이모집에 돌아옵니다.  

 

잘때가 되면 이모는 가장 따스한 아랫목을 우리에게 내어줍니다.  따뜻한지 몇번 만져보시고, 제일

솜이 많은 이불을 꺼내 우리를 덥어 주셨습니다.  이모랑 이모부는 어디서 주무셨는지, 사촌 언니 오빠들은

어디서 잤는지도 모른채 우리는 그렇게 철없이 행복에 젖어 따뜻한 아랫목에 잠이 들었었지요.

 

운산 이모집에  간 기억이 희미해 지기전, 우리는 또 엄마를 졸라 댔었던것 같습니다.  처마골 이모네 집이

생각나는 거지요.  엄마는 대산을 방문하신 이모에게 우리를 딸려보내거나,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정대오빠랑 정미에게 우리를 딸려 보내거나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정미랑 그 시골길을 따라 이모집 가던길이

그립습니다.  우리는 가면서 꽃도 꺽어보고, 향기도 맡아보고, 게임도하고 이야기하면서 먼길을  지루한줄

모르고 걸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모집은 또 우리 공주들이 머물 훌륭한 성이되어 우리를 기다려 주지요.  정대오빠는 가을에는 감나무나

다른 과일 나무에 올라가 맛있게 익은 과일을 따주며, 어떤 과일이 맛있게 익은건지 감은 어떻게 따야 잘 따는건지

등등을 가르쳐 줬습니다.  또 오빠는 산 기슭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주기도, 언덕으로 데려가 썰매를 태워주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항상 해결해주고 잘 놀아주는 오빠는 저희에게는 영락없이 멋있는 기사였습니다.

정미랑 나랑은 서로 업어주기하며 놀다가 정미를 업은 내가 넘어진 결과로 정미의 팔이 뿌러진적도

있었답니다.  정미의 팔이 뿌러졌다는 것도 얘기해 주지 않아서 그후로 몇달 지난뒤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저녁이 되어 세상이 어두워지면 이모는 호롱불을 켰습니다.  대산은 불빛이 밝은데, 이모집은 유난히 

어둡게 느껴지고, 밤이되면 호롱불밑에서 바느질 하시는 이모곁에 꼭 붙어 집에 가고 싶다고 투정도 하고, 

엄마보고 싶다고 울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이모는 조용조용 우리를 달래면서 잠이 들때까지 옆에 계셔주셨습니다.

 

서산 이모네 집 기억은 큰 오빠가 결혼하던 날이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새언니가 얼마나 얌전하게 하루종일 앉아

있던지 신기해서 자꾸가서 들여다 보곤 했지요.  맛있는 음식이 하루종일 만들어지고 있었고, 손님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있었던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었던 삼촌은 우리의 '물주' 이셨습니다.  경미랑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일하시는 이층 다방 주방 창문을 향해 '엄마 10원만'을 아래층에서 부터 소리높여 노래하곤  했습니다.  엄마는

그소리에 지쳐서 20원을 2층창문에서 던져 주셨고, 우리는 그동전을 가지고 구멍가게를 향해 달음질하곤 했습니다. 

라면땅과 눈깔사탕에 전재산을 탕진하고 나면 우리는 삼촌을 찾아 큰길에 나갑니다.  큰길가에서 놀다가 뒷짐을

쥐고 걸어오시는 삼촌을 보면 우리의 입가에는 회심이 돕니다.  우리는 삼촌뒤를 따라가며 '삼촌 10원만'을

나올때까지 외칩니다.  헤헤, 그러면 그날의 수입은 두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렴풋한 기억들이, 그렇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이 저에게는 이모네집을 둘러싸고 많이 있습니다. 

따뜻했던 이모들, 사촌들, 저에게는 잊어버릴수 없는 아름다운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모님들, 숙모, 사촌오빠 언니들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 우리 어머니 세대들이 지켜왔던 그 정다운

가족 전통을 우리 세대에서도 계속 이어가는 따뜻한 새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내가 살고있는 부루스 카운티가 내 고향 서산앞바다를 많이 생각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마을 저마을 지나치면서, 과수원이 많은 동네를 보면 처마골 이모네를 떠올리기도 한다.

 

사실 모든 시골들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물, 가축, 과일나무, 벌판, 농가들.... 이런 것들이 주는 시골스러움말이다.

 

여름이면 찾아나섰던 독곳, 벌말, 삼길포등 해변가는 곳곳에 즐비한 강과 휴론 호수와 닮아있기도 하다. 호숫물도 가끔씩 비릿한 갯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바닷물이 야성적이고 세다면 이곳 호수물은 조금 더 얌전하고, 지적이다. 내가 물에 열광하는 편인데 이것 역시 어릴때 환경탓이지 싶다.

 

사람들도 그렇다. 태어나서 한번도 이 고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도 많고, 어릴적 친구가 늙고 나이들어 죽어가기도 하며, 고등학교때 만난 사랑하는 사람과 잘살기도 하고, 이혼도 하고... 부모끼리 친구인 집안은 자식세대에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시골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 있다. 한사람과의 불화는 그 집안과의 불화를 불러오기도 하며, 한사람과의 친화는 그 집안과의 친화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 말이다. 동네에는 꼭 반장역할을 하는 아줌마도 있고, 동네 경비를 자처해서, 하루종일 다운타운 주변에서 죽치는 노인도 있다. 

 

우리가 이곳으로 떠나올때 지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돈 벌어서 돌아오쇼!"라고. 페이슬리 가게를 아직도 경영하고 있으니 그 세월이 짧진 않았는데, 가끔 토론토에 나가면 "아직도 그곳에 사쇼? 적막해서 어떻게 사나"하며 의아해 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도 "유리한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처분하고 떠날 생각"을 품고 산다. 삶의 터전을 바꿀 생각을 이처럼 식은 죽먹기로 생각한다는 것은 좀 심각히 따져볼 일이다. "삶의 기반을 무엇에 두고 있느냐"를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동네가 내 고향같은 생각이 드는 또하나의 이유는 이모, 삼촌네를 찾아 나섰던 것처럼 마을에 한두집 있는 한인가구들이 어릴적 친척같은 생각이 든다는데 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 민족이라는 것 하나로도, 서로간의 배경에 상관없이 친구도 되고 선배도 되곤 한다. 뭐, 나는 당신네를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데?하면 할말 없으나, 그저 한인 한집이 있다는 것이 그 지역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다. 큰애는 한국인 남자친구를 고려해보지 않는다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한국인은 모두 친척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인들에게 쓴맛 단맛 모두 보지만, 오늘 이런 분위기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내게는 몇몇 친하기 어려운 이들을 제외한 많은 한인들의 친절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것도 한인이 귀한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르는 특별한 것이 있다면 과장일른지. 

 

고향의 향수를 생각하며 그레이 부루스 카운티의 맛을 조금 보여드리고자 한다.

 

 

                                                       Kincardin(킨카든)                                                                  

 

킨카든에서 장사하시는 황언니의 초청으로 아줌마들이 회동했었다. 밭에서 기른 야채를 곁들인 정성스런 비빔밥을 얻어먹고 킨카든 비치주변의 산책로를 걸었다. 모래가 곱게 퍼진 나무길을 걸으니, 나무가 주는 편안함을 느끼며 쪽빛 호숫물을 바라보는데 눈이 시리다. 휴양도시인 킨카든에는 고가의 별장들이 많다. 10년 전에는 최고가가 1백만 달러 집이었는데, 현재는 2백만 달러 넘는 것도 있다는 황언니의 귀뜸이다. 비치 주변이 아주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길가의 벤치들은 기증자의 이름을 새긴채 곳곳에 놓여있고, 한그루의 꽃나무에도 키우는 이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동네 조경에까지 신경쓰는 것 같다.

 

 

 

 

                                 킨카든 휴론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별장. 이 별장도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정원손질은 그 집의 품위를 한껏 높여준다.

 

 

                     작은 배가 한척 떠있다. 역시 배는 안에서보다,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 잔잔한 평안을 준다.

 

 

                                                          노란꽃 하트. 심고 물을 준 정성이 느껴진다.

 

                                                                        Stokes Bay(스톡스 베이)

 

막내딸의 유치원때부터의 친구 조던의 부모가 별장을 구입한 건 작년 10월. 그때부터 자랑이 넘쳐났고, 초대의 말도 있었는데 이번 여름을 맞아 큰애를 빼고 그대신 둘째의 친구를 덤으로 넣어 온가족이 별장방문을 했다. 그것도 1박2일의 긴 일정 동안. 상주인구가 30명이고, 여름이면 150명쯤된다는 작은 마을이라는데, 여름이라 술렁대는 별장들을 보니, 그렇게 작은 마을이란 생각이 안든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샤론의 남편 마이클의 아내사랑과 가족사랑이었다. 마이클의 사랑안에 있는 샤론을 보니, 그녀의 한번 이혼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안전하고 평안해 보였다. 샤론은 지난 6월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는 이상한 질병을 경험했다. 그때의 충격이라니. 특히 그녀는 할말이 많고, 쾌활한 전형적인 수다 아줌마 스타일이 아니던가. 지금은 쇳소리가 섞였지만 괜찮은 편이다. 전문의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아침일찍 한의원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한눈을 뜨고 보내놓고, 나는 아침 11시까지 잤다. 샤론이 걱정말고 충분히 자라고 그전날 말해줬지만, 남의집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오랫동안 누워있었다니.. 별장다운 어두컴컴하고 게으른 분위기에 빠졌는지, 아이들은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마이클도 그전날 설치하다만 야외천막을 완성해야 해서 샤론과 나는 근방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샤론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캔들샵과, 빵집.. 모두 독특했다.

 

 

 

 

내부는 작지 않았다. 초를 살라 없애버리기엔 너무 아까와보이는 예술적

조각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코렛 쿠키같아 보이지만, 쿠키 초.

 

 

                                                                                     이건 각종 야채모양의 초.

 

                                                                                 근사한 둥근 초.

 

 

 베이커리 간판을 보고 따라들어가니, 이런 특별한 건물에 예술적인 빵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런데 이 빵집보다는 빵집에서 바라보이는 옆집은 마치 동화책에서 금방 솟아나온 것처럼 정말 만화적이었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서 차한잔을 얻어먹을 수 없냐고 부탁해보고싶기까지. 밑에 사진들을 보시라.

 

 

 

 

                                                       나무로 만든 용이 집 입구에 보초서고 있다.

 

 

                                도네이션이라 쓰여있고, 그 밑에는 상자까지. 아무래도 연구대상 집인 것 같은데.

 

 

                                                             집뒤에 보이는 화단. 백설공주와 난장이가 묶고있는 집인지..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스톡스 베이에 있는 작은 비치(little beach)로 놀러갔다. 19도 정도. 수영하기엔 좀 추운 날씨. 아이들이 물온도를 점검하고 있다. 그래도들 걸친 옷들을 벗어던지고 수영에 몰입하기도. 입술들은 새파래졋었지만..

 

 

천막 완성을 서두르고 있는 마이클(뒤)과 남편. 천근은 되어보이는 천막지붕을 마이클 혼자 올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샤론네 앞마당에서 본 별장들. 휴론호수와 이어지는 작은 만을 두고 몇채의 별장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