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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특별한 분들을 모시고 여름여행 마무리하다

 

"네 가족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공원의 규칙은 최대한 6명이 한 사이트에 묵을 수 있으며, "가족"이어야 한다고 토를 달아놨다.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야, 내 안에서 합리화를 이미 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이번 캠퍼들은 남편의 삼촌, 숙모님(내게는 시숙부, 숙모가 된다) 그리고 우리를 중매해주신 이정준씨와 그분의 남편 이상묵씨였다. 60대에 들어선 두부부들을 모시고, 여름 마지막 캠핑을 주선했다. 별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직 경험이 없으실테니, 한번쯤 트레블 트레일러에서 보내는 캠핑을 맛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글을 쓰시는 이상묵씨에게는 조지안베이 트레일의 맑은 물을 선물로 드린다면 글감 한조각 선사할 수 있지도 않을까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다.

 

 

 

이정준씨를 만난 것은 이민오고 신문사에 들어가서였다. 내안에서 많이 반추되고, 또 가까운 이들에게는 몇번씩 말했던 사연이겠지만, 오늘 이자리서 다시 한번 회상해보면... 그분은 내가 신문사 신입기자일때, 여성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민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가족에 의해서 "끌려왔던" 나는 언제나 한국을 그리워하고, 돌아갈 날을 손으로 꼽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보나 시들하고, 홀로 고립된 듯이 모든 것들이 생경했다. 그런데 그날 여성회 무슨 행사인가를 취재갔는데, 이정준씨가 회장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발성법도 참 특이했다. 성우들의 목소리가 그럴까. 귀에 박히는 말논리정연함, 그리고 여성회가 이민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한꺼번에 알수 있는, "똑똑한" 모임이었다. 나는 그때 "번쩍" 내 머리를 치는 것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민의 땅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 내가 이곳에 살수도 있겠구나, 한국 여성들이 대단하구나.. 그런 느낌들이었을 것이다.

 

이정준씨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뒤로 여성회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취재기자로 그 내막을 조금 알고 있는 내게 어느날 이정준씨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오셨다. 말단 나이어린 여자기자에게 "울먹였다"는 것을 이정준씨가 기억하고 있을 줄 모르겠다. 그 뒤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정준씨는 여성회를 사랑했고, 온힘을 다하여 성장시켰다. 그런데 그런 여성회가 "와해"의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정준씨와 만나, 여성회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게 됐다. 어느정도 이야기가 마쳐진 다음에, 아마도 우리는 서로 많이 이해하게 되고, 편안해 졌었나 보다.

 

그때 그분이 내게 말했다. 이기자, 사람 만나보지 않겠어요?라고.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사람이 그 당시 유학와 있던 현재의 남편이다.

 

이정준씨와의 만남이 그랬지만, 이상묵씨와의 만남도 또한 특별하다.

 

신문사 편집부에서는 아침에 기사작성이 끝나면 편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당시엔 청타로 기사를 찍어서 그걸 오려내서 종이뒤에 왁스를 발라, 신문 크기만한 도화지에 붙인다. 제목은 사식기로 글자를 크게 뽑아내서 기사위에 오려붙이는 방식으로 편집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그래서 설명하기도 어려움을 느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어쨋든 어느날이던가, 3면 하단에 "금주의 시"란에 어떤 시가 붙어있었다. 그 란은 캐나다 거주 시인들이 돌아가며, 시를 게재하는 곳이었는데그런데 그 시가 나를 붙잡았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 캐나다에 살고있구나캐나다 굉장하구나... 그랬었다. 이상묵씨는 시인으로도, 또한 칼럼니스트로 현재까지 예리한 글을 쓰고 계시다. 최근에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이란 여행기도 펴내기도 하셨다.

 

이렇게 글로 쓰고보니 참으로 각별한 사이이지만, 그렇다고 만남이 빈번한 것은 아니다. 멀리 살고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이고, 어른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철없는 부부"인 것이 그 두번째다.

 

그러나 우리에게 큰일이 있을때마다 그분들이 먼저 떠올라, 가족 다음으로 애정이 자연히 간다. 말처럼 커버린 우리 아이들을 언제나 "꽃밭의 공주님들"이라고 불러주시는 그분들과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됐으며, 이런 분들이니, "가족"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사실 가족이 아니라고 했으면, 돈을 더 냈어야 했을게다.. )

 

 이정준(오른쪽)씨와 이상묵씨 부부.

삼촌과 숙모님.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6명이 사블 폴스 주립공원에서 자고,

1시간 30분쯤 올라가서 부루스반도 국립공원내 조지안베이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했다. 

 

이정준씨는 같이 하이킹을 하면서 요즘에 장사가 안된다는 말을 들어서 밤에 잠을 안자며 생각하셨다며, 내게 아이디어를 나눠주셨다. 한의원을 하니, 차와 커피를 파는 작은 카페를 열고, 그안에 약초와 한의학 관련 잡지들을 상비해 여러 사람이 편안히 앉아 기다릴 수 있는 장소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셨다.

 

최근에 장사가 안되고는 있지만잠을 안자면서까지 걱정하셨다니, 우선 죄송스럽다.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때내던 열심이 다 사라졌다는 것을 고백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가게 살리기에 투자를 해야, 두분의 염려를 줄이는 일 같다. 가게에서 덜 벌고, 한의원에서 더 버니괜찮다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이번 여행에 관해서 이상묵씨가 캐나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올리셨다이선생님의 글을 이곳에 옮겨싣고자 한다. 삼촌, 숙모님도 건강하셔서, 가쁜히 등산에 성공하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서로의 "방귀소리"까지 들리는 캠핑 트레일러에서 한밤을 자면서 한

6명의 여름여행을 아름답게 글로 지어주신 이상묵씨께 감사드린다.

 

 

여름 나들이

 

이상묵

 
숲속에서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암벽을 내려가면 호수.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두 섬들. 케이블처럼 단단한 수평선이 포획한 두 마리의 고래처럼 섬들을 끌고 간다. 10시 방향의 뒤처진 섬이 유명한 꽃병 섬(Flowerpot Island)이다. 수평선은 또 다른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지언 베이는 망망할 수밖에 없다. 모터보트의 소음도 없고 갈매기도 별로 없다. 햇빛을 받은 물밑의 조약돌들이 흔들리면서 반짝인다.



민디가 지난 주 메일을 보내왔다. 그녀는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인 다음에서 ‘민디가 전하는 캐나다 이야기’로 인기 높은 블로그를 꾸려온 지 오래다. 금년에 대학 가는 첫 딸을 합해 딸만 셋을 두고 있는데, 그 보단 아내가 중매를 서서 성공사례가 된 사람이다.

“캠핑 트레일러 안에 잠자리와 화장실, 부엌 시설이 되어 있으니 다른 준비물들은 필요 없습니다. 장소는 브루스 반도 국립공원입니다. 사이프러스 호수를 낀 트레일과 조지언 베이 트레일을 따라 걷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숲과 물이 조화된 아름다운 곳입니다.”

노동절 연휴가 다가왔고, 이젠 여름도 떠날 채비를 하는 마당이니 하이킹을 같이 가자는 초대였다. 초대를 받자마자 챙긴 것은 수영복이었다. 하이킹을 가는데 웬 수영복인가 하겠지만 집을 나설 때마다 수영복은 필수품이다. 어떤 여행이건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기 위한 욕심 때문이다. 눈으로만 보는 이미지들은 시나브로 삭제된다. 하지만 몸을 담군 바다나 호수는 피부에 영구 저장된다. 아테네를 갔을 때도 호텔 근처의 지중해에 들어갔고 캐나다 동해안에 가서도 대서양 물에 몸을 담갔다.

물은 차가웠지만 헤엄을 힘차게 했더니 견딜만했다. 더운 물을 섞은 수영장 물이 아니어서 외려 신선하다. 너럭바위 위엔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들의 몸이 눈부시다. 미혹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다. 몸매들의 곡선이 한결 예리하다. 이 물가는 조약돌과 석회암 바위들로 이뤄진다. 한길 깊이 물속의 조약돌엔 이끼가 보이지 않는다.

석회암 바위들은 구름다리를 만들고 동굴을 형성한다. 아, 실수했다. 동굴이 아니라 석굴이다. 석굴은 영어로 그로토(Grotto). 동굴은 영어로 케이브(Cave) 아니면 캐번(Cavern)이다. 석굴은 물의 침식으로 바위가 패이거나 사람이 돌을 쌓아 만든다. 나폴리 앞 바다에 있는 카프리 섬의 유명한 ‘푸른 석굴(The Blue Grotto)’은 앞의 경우이고, 경주의 석굴암(영어로 Seokguram Grotto)은 뒤의 경우다.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지언 베이의 석굴은 아직 이름이 없다. 그냥 그로토(Grotto)라고만 지도에 나와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인어 석굴(Mermaid Grotto)’이라고 명명한다. 얼핏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석굴 속에서는 인어 같은 10대의 소녀들이 물속으로 다이빙하고 있었다. 워낙 역사나 전설이 빈곤한 곳이고 보니 달리 이름 붙이긴 어려울 게고 관광 효과를 노리자면 팬시한 이름이 제격일 것 같다.

카프리 섬의 ‘푸른 석굴’은 로마가 싫어서 피해온 황제들이 목욕하던 곳이었다. 모르던 석굴이 발견된 건 1826년. 조류가 낮을 때만 보트들을 타고 들어간다. 햇빛이 푸른 바닷물을 반사해 석굴 안이 온통 푸른색으로 변하는 환상의 경치를 체험할 수 있다. ‘인어 석굴’도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사람 하나 겨우 빠져 나가는 개구멍을 기어 내려가는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 ‘인어 석굴’엔 물밑에 수중 통로가 있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그 물길은 스쿠버 다이버들만이 통과할 수 있다.

민디 부부는 브루스 반도 국립공원에서 한 시간 이상 남쪽으로 드라이브해야 하는 페이슬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토론토의 가게들이 위축되고 있을 때도 시골 경기는 괜찮았다. 하지만 인구 8천도 안되는 인근의 포트 엘진에 월마트 슈퍼스토어가 들어서면서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행히 민디 아빠가 한의로 일하기 때문에 염려가 좀 덜하다. 하지만 예전만 못한데도 우리를 초청해준 성의가 고맙다. 자연을 생각하면 이 여름은 역시 위대하지만 경제를 생각하면 잠시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이번 나들이었다.


 
 
• 캐나다 한국일보
발행일 : 2009.09.08

 

석굴속으로 내려가는 이상묵씨.


 

이상묵씨와 남편이 조지안베이 차가운 물에서 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