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추억중에서 인상적인 것으로 당신은 무엇을 꼽을 것인가? 내게는 스케이트를 빼놓을 수 없다. 스케이트날의 날까로운 이미지, 논의 가장자리부터 녹기 시작하던 얼음결정체들의 아우성, 그리고 찬바람과 친구들이 한꺼번에 영상처럼 펼쳐진다.
시골에 살때 논물이 다 빠지지 않아 작은 얼음판이 생기면 썰매를 탔다. 성능좋은 썰매 하나 갖는 것이 우리 자매들의 소원이 되곤 했는데, 그 당시 목수였던 막내 이모부가 뚝딱뚝딱 썰매를 만들어주셨던 기억…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스케이트가 점차 시골로도 침투했다. 도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나도 그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중에 한명이었던듯 싶은데, 썰매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속도감을 즐길수 있어서 우리들의 겨울 오락으론 스케이트가 단연 으뜸이었다. 스케이트를 타러 좋은 얼음판을 찾아 논뚝을 헤메고 다녔고 그 얼음판에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라도 합류하게 되면, 있는대로 멋을 부리며 스케이트를 탔고, 그들이 떠나면 그만 스케이트 지치는 것이 시들해졌었다.
스케이트에 대한 또하나의 기억은 스피드 스케이트와 피겨 스케이트에 대한 혼란이었다. 우리가 롱 스케이트라고 부르던 스피드 스케이트를 타고놀 무렵, 또하나의 유행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피겨 스케이트의 출현이었다. 피겨 스케이트는 “여자용”이라며 “롱스케이트”를 타는 여자아이들은 유행에 뒤쳐진 것처럼 여겨졌다. 피겨 스케이트를 빌려신어본 바로는 떼뚝거려 제대로 스케이트맛을 즐길수가 없었는데도 피겨스케이트가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쨋든 그런 기억때문인지 내가 좋아하는 겨울 풍경은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스케이트를 지치는 모습이다. 마을 공동회관에는 스케이트장이 있게 마련이고, 그안에는 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부터 자유스케이트 시간에 몰려든 스케이터들이 있지만, 사각진 건물안에서가 아니라, 갈색의 나무들이 호위하는 야외에서 타야 제격이 아닌가 싶다.
가끔 다른 도시를 방문해보면, 시청앞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놓아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바람을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보면, 그 도시의 시장이 대단하게 생각되고, 도시의 행정에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그리고 꼭 한번 그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지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몇년전 연못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겨울에 썰매나, 스케이트를 탈 수 있지 않을까, 내심 마음이 부풀어올랐었다.
눈이 많은 동네, 지난 3년간 입을 딱 벌리고 쏟아지는 겨울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겨울 동안 쌓이기만 하는 뒷마당쪽은 그야말로 지척이 십리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변경”이 일어나곤 하였다. 눈덮인 연못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지, 그곳에서 썰매를 타고, 스케이트를 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만에 하나 얼음이 단단하지 않아서 물에 빠진다면 어쩌겠는가 꿈도 꾸지 않았다.
우리 둘째는 아마 모를 것이다. 오늘 엄마의 작은꿈이 자신으로 인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그녀는 단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뿐이다… 그녀와 세 친구들이 뒷마당의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그게 다다.
눈 긁어내는 삽으로 조금씩 밀어내며, 얼음을 지친다. 피겨 스케이트를 신고도 스피드도 내고, 돌기도 하면서, 아직은 눈밭인 연못을 칼자욱을 내면서 돌아다닌다.
그들을 창문으로 보면서, “아하, 그러니까 내가 꿈꿨던 바로 그 모습이 내 뒷마당에서 벌어지고 있구나, 근데 어렵지 않은 일을 왜 안하고 있었지?” 새삼 놀랍게 생각됐다. 새집에 와서 3번째 겨울이 되서야,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탈수 있게 되었다.
이제 종종 아이들과 스케이트를 타야겠다. 무엇인가에 적응하고, 내것으로 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위험한 것은 무조건 피하고 보는 나약함” 때문에 남들의 몇배가 걸리는 것도 같다. 이제 머플러를 휘날리며 스케이트를 타보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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