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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자연을 밥상으로.. 임지호에게서 배운다

"이땅의 아이들을 위해 산천은 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청보리밭을 일렁이며 봄은 밥상을 차려가고 있다."

 

봄이 시작될때쯤 찍은 다큐멘타리 "방랑식객"의 바람소리같은 나래이션의 목소리다.

어느 문학작품에 나올법한 문장들이 그 프로그램 제작자와 작가들의 손에 의해 씌여진다.

오래전에 시청했던 방랑식객 3부를 다시 찾았다. 

 

자연요리 연구가 임지호씨를 쫓아다니면서 촬영한 "아이들의 봄을 찾다"편은 감동에 출렁이게 했다. 약간 비염에 걸린듯한 임지호씨의 말투가 아직도 귀속을 뱅뱅 돈다.

 

그의 이번 미션은 아이들이다.

 

야채를 안먹어, 성장발육이 늦고, 화가 잦은 아이,

아토피로 심한 피부가려움증이 있어, 밤에 잠도 못자고 긁어대어 온 몸과 얼굴의 피부가 열려있는 아이,

할머니손에서 자라, 할머니에게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은 아이...

 

임지호씨는 자연요리연구가로 불린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책도 냈고, 양평에 있는 [산당]이라는 고급 한식당의 주인이기도 하다. 고급 한식당이라 하면, 좀은 그의 이지미와 안어울린다. "독특한 한식당"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쨋든 한국에 나간다면, 한번쯤 들려보고 싶은, 그래서 그의 철학이 들어있는 음식맛을 보고싶다.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 텔레비전에서 소개된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는 배낭가방을 하나 메고 산천을 떠돌아 다닌다. 산천에서 음식재료를 모으고, 그날 그의 마음에 끌리는 곳에서 멋있는 밥상을 차려 대접한다. 그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오랫동안 남이 해주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홀로 사는 할머니일수도 있다. 밑반찬이 필요한 집에는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김치도 담가주고 오기도 한다. 그것이 그의 지난 미션이었다.

 

아토피로 얼굴이 볼수 없이 짓무르고 망가진 어린 찬영이를 위해서 그는 깊은 산속 어려운 지형에서 자란 소나무의 이파리와 줄기를 채취한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가 효능이 좋아서, 그는 한가방 솔가지를 꺽어 들고 찬영이의 집으로 온다. 그는 솔나무를 넣고 끓여서 상처에도 바르고, 밥물을 그것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멸치, 다시마, 메주콩으로 국물을 낸다. 이것으로 국도 하고, 무침도 하고 여러가지 소스로 사용한다. 솔잎을 잘게 썰고 찹쌀과 메주콩으로 떡을 만든다. 그리고 녹두를 삶아서 찰떡위에 둥글리면 녹두찰떡 완성이다.

 

망초를 수수에 버물려 망초 된장국을 끓이고, 몇가지 나물을 우려낸 국물에다 집간장을 넣고 무쳐낸다. 아토피 찬영이를 위한 밥상이 차려진다. 솔잎다린 물로 한 밥, 몇가지 무침, 녹두 떡, 망초 된장국. 그런 뒤에 그집의 냉장고를 열곤, 각종 시중에서 파는 맛을 내는 조미료등을 가려낸다. 아토피가 공해병, 현대병이기 때문에 자연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그는 찬영이 엄마에게 조언한다.

 

두번째 박제현 어린이의 집.

제현이는 음식에 들어간 모든 야채를 걷어내야 식탁에 온다. 그리고 야채가 곁에 있으면 치우라고 말한다. 냄새가 나서 싫단다. 그애의 엄마는 아들에게 억지로 야채를 먹이려고도 했지만, 구토증세까지 보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제현이는 특별히 화를 많이 낸다. 임지호씨는 제현이를 데리고 들로 나간다. 풀도 보여주고, 토끼우리앞에서 풀을 함께 먹이기도 한다. 제현이는 조금 더 가깝게 식물을 느낀다. 그는 제현이에게는 시금치즙을 내서 찹쌀가루로 경단을 빚어 참기름에 볶아내고, 우엉 콩 다시마 간장을 넣고 소스를 만든다. 우엉은 "화"를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시금치와 벚꽃을 살짝 볶고 김치를 많이 넣고 소고기와 섞어서 김치 스테이크를 만들어, 위에 시금치, 벚꽃을 얹어 스테이크위를 장식했다.

 

그 다음에는 우엉을 얇게 벗겨 튀김을 만들고, 벚꽃도 튀겨낸다. 제현이는 꽃튀김을 먹으면서, 여기엔 뭐가 들어있지? 호기심을 보인다. 임지호씨는 그런 제현이에게 꽃이지, 다른 건 안넣는다.. 이렇게 건조하게 대꾸한다.

알로에를 다져서 단호박과 쪄내고, 문어를 데치고 다져서 찐호박과 버무린다. 양송이 두부조림은 미리 만들어놓은 소스에 조려주고, 머위도 들깨를 넣고 조려낸다. 그리고 무청 시래국 국과 현미밥으로 제현이의 밥상을 마련했다.

 

제현이는 이 식탁의 음식들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임지호씨는 음식에 들어간 재료들을 제현이에게 알려준다. 제현이보다 어른스러보이는 그 아이의 형은 제현이에게 묻는다."제현아, 어떤 음식이 맛있었어?" 제현이는 음식 하나 하나를 가르키며 모두 맛있다고 한다. 양송이 두부조림은 더 없느냐고 묻기까지 한다.

 

임지호씨는 "자기도 모르게 바쁘고 급해서 하다 보니까 사다 먹이게 됐는데 그 결과가 지금 내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공격적으로 돼있고 이기적이고 아토피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감당이 안되는 거예요. 자연을 그대로 밥상으로 옮겨 만든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내서라도."

 

그의 다음 발걸음은 그의 고향 안동이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채취한 버들강아지로 물김치도 담그고, 환상 덩굴김치도 담근다. 잡초를 삶아내어, 김치의 기본양념과 배와 토마토를 넣고 잡초김치도 만든다. 아이들은 김치가 만들어지는 내내 보고있다가 맛을 보고는 모두 눈들이 휘둥그레해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

 

안동에서 만난 소녀의 할머니께서 생신이시란다. 소녀는 할머니에게 생일상을 차려줄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도시의 자식들을 위해 손자 손녀를 돌보고 있는 할머니를 위해 임지호씨는 생일상을 차린다. 전도 부치고, 고기, 생선, 나물이 들어간 푸짐한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상차림이다. 그는 바닷가로 나가서 쓸만한 고목을 가져다 잘 닦는다. 그리고 하얀꽃이 핀 조팝나무를 곳곳에 꽂아 장식한다. 음식을 나무 둥치 이곳저곳에 올려놓는다. 할머니가 눈물을 보인다. 손녀는 할머니를 위해 피리연주를 한다. 그리고 정성껏 마련한 카드를 건네준다. 할머니 생신상 차림처럼 그는 음식의 모양에 신경을 쓴다. 나무와 꽃과 돌로 장식한다. 그야말로 자연을 식탁으로 날라오는 셈이다.

 

임지호씨는 다시 한번 아토피 찬영이네를 찾는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야채를 먹지않던 제현이의 얼굴도 많이 밝아졌다. 이제는 밖에 있는 풀들을 너무 먹으려고 해서 탈이라고 그애의 엄마가 코멘트한다.

 

"음식은 진짜로 여행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맛을 자연에서 몸으로, 혀로 맛을 보는 단순한 작업인 것 같지만, 거기에 사람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고 말하는 임지호씨...  음식방랑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옆사진은  임지호씨가 낸 책의 표지 모습. 텔레비전에 나왔던 모습은 낡은 잠바를 걸치고 베낭을 둘러맨 떠돌이 행색이었다.

이 사진처럼 깨끗하지는 않았다는 말씀. 그런데, 독특한 인간미가 느껴지긴 했었다.)

 

자연을 그대로 밥상으로 가져온다는 그의 철학이 마음을 친다. 꾸미기에 젬병이기 때문일까, 손이 덜가는 요리법, 되도록이면 재료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비단 나만이 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집의 식탁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고기 보기가 쉽지 않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위로 큰애 둘이 동물성 육류를 보이콧하고 있으니, 그나마 열심을 내지 않게 되었다. 남편과 막내가 고기를 먹기는 하지만, 남편은 요즘 배가 나온다며 그 역시 내편이 되어 응원중이다. 막내는 식탁에서 아웃사이더가 될때가 많은 것이 마음이 쓰인다. 그애를 위해선 김치찌개, 생선찌개등 국물이 있는 것을 종종 해주고, 야채 한가지씩 먹기 등을 실천시키고 있다.

 

야채요리도 단순하게 한다. 날것으로 많이 먹고, 가끔은 올리브 오일과 마늘을 넣고 볶고 그곳에 새우를 첨가하면 영양이 균형을 이룰 것 같다고 자평한다. 여러가지 야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샤브샤브가 좋은데, 여름이 되어가니, 김나고 더운 음식이라 자주 해먹게 되지 않는다.

 

야채를 먹게 되니, 장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각종 야채와 과일 위주로 장을 보고 그때그때 재료를 보고, 음식만들기를 결정하면 된다. 임지호씨의 말처럼 우리집 주변에도 먹을 것이 있으면 먹어야 겠다 싶어서, 밖을 뒤진다. 민들레, 씀바귀를 무쳐서 먹고, 뽕나무잎은 쌈잎으로 그리고 또 장아찌를 담가놓았다. 어느날은 뽕나무잎을 따다가 튀김가루를 묻혀서 튀겨내기도 했다. 튀김은 고소해서 언제나 아이들이 환영이다. 체리 나무에서는 체리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반 이상은 새들의 밥이 되겠지만, 생각나는대로 뒷마당에 체리를 따온다.

 

메노나이트 농부와 사귀어놓은 옆마을의 경순언니가 몇차례 상추를 가져다주었다. 그들에게 비료를 사용하느냐고 묻는 것은 거의 우매한 질문이다. 문명을 배척해서 각종 농기구도 재래의 것들을 사용하는 데, 그런 그들이 자연퇴비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농가에서 가져온 상추는 얼마나 연한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요즘은 그 상추와 밥을 먹어서 그런지, "잠양"이 늘었다는 것이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ㅎㅎ

 

음식에 양념을 많이 하게 된 것은 인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중의 하나일 것이다. 재료의 맛에 만족하지 않고, 무언갈 첨가해야 만족감을 느길 수 있게 됐는데 그것이 화를 불렀다. 이곳의 베트남국수는 다시 먹고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육수의 맛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미원의 맛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가끔은 양송이 스프같은 통조림 음식에서도 라면에서 나는 것같은 냄새가 난다. 그것이 화학조미료일 것이다. 몸이 그런 것들에 민감하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징조이다.

 

큰애는 야채를 먹으면서도 아직도 라면을 먹고 좋아한다. 나는 그애의 몸이 아직은 자연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동물 알러지도 있고, 천식기도 있다. 큰애에겐 음식이 중요한데, 라면이 떨어질때까지 먹고 다시는 사다놓지 않을 생각이다. 가려움증도 있어서 걱정이다. 현미밥이 더 맛있다는 둘째는 단기간에 체질을 바꾼 케이스에 속한다. 베지테리안에 대해서 공부를 하더니, 항생제 투여와 열악한 환경의 동물들이 인간들의 식습관 때문에 생겼다며, 혀를 찬다. 생선까지도 안먹는다고 해서, 내가 도리질을 했다. 바닷물에서 나온 것들은 영양면에서 다른 대체음식이 없으니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에는 황성주 박사의 "생식과 건강"에(호도애 간) 관한 책도 읽었다. "생식"은 유행이 지났는가? 아무래도 나는 귀가 얇은 게 틀림없다. 요리하지 않고, 말려서 가루로 낸 생식을 먹어야 소화흡수가 잘되고 영양균형이 맞는다는 황박사의 이야기도 솔깃하다. 많은 아토피 환자 치유사례가 있어서 큰애를 위해 생식을 먹여볼까 궁리중이다. 그리고 야채를 많이 먹지 않는 막내도 하루에 한봉지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할만한 간편한 영양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요즘 남편과 함께 시청한 생노병사의 비밀부터, 건강 100세 스페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의 건강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이쪽으로 관심이 간다. "냉동식품"을 사서 오븐에 구워서 아이들에게 자주 먹였던, 그런 철없는 엄마였던 긴 세월이 있었다. "배"를 채워주는게, 그리고 아이들의 입맛에 맞아서, 불평없이 먹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었다.

 

제대로 된 주부역할이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음식솜씨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어떤 재료를 사용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야채를 볶으면서 두부를 어떻게 조리할까 고민하다가, 단단한 두부라서, 야채볶은후에 함께 넣고 볶았다. 그랬더니 두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야채속에 어울린 두부를 잘 찾아내 먹는다. 음식은 그런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그럴싸한 이름은 없어도, 그럴싸한 레서피는 없어도, 그 재료가 주는 맛을 음미하면서, 내 몸안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에 관심갖는 것 그런 것 말이다.

 

한가지 미스테리한 것이 있긴 있다. 제대로 먹는 것 같은데, "건강체질"로 주장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이라는 것. 남편은 "이부실" 여사라고 나를 놀리기도 한다. 그러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 왜 이럴때 자꾸 개그말투가 생각나는 지 모르겠다. "여성들이여, 제대로 된 식탁을 차리는 그날까지..." "남성들이여, 여성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의 다른 버전이다. 개콘들을 보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