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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성혜랑 그녀의 이야기.. 분단체제의 희생양

 

 

차창밖으로 부자나라 스위스의 깨끗한 농촌이 흐르고 근심걱정없이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널어놓은 빨래에서까지도 강렬하게 안겨왔다. 남들은 저렇게 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불합리란 말인가. 남조선은 우리 최대의 적이고 북조선은 서방에서 사회주의 시조 소련보다도 더 꺼리는 악한 내지는 옴쟁이 정도는 되고 있는 듯했다. (402)

 

 

 

하왕십리 등나무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대부분을 북한에 있다 1996년 북한을 탈출한 성혜랑씨의 가장 큰 소원이 위의 글에 잘 나타나있다. 평안한 일상을 사는 것..

 

한반도는 북한과 남한을 아우를때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두 체제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게 될까? 그건 누가 하는 걸까? 한반도의 이런 문제와는 멀어졌던 내가 최근에 읽은 책 등나무집은 우리 민족의 현실을 생생하게 일깨워줬다.

 

이 책은 우리 민족의 분단사 안에 있는 북쪽의 체제를 그안에 있던 사람의 시각으로 고스란히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분단사만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조선 반도와 그전에 유교문화로 으깨어진 여성들의 권리등 모든 질곡의 역사가 그안에 담겨있다.

 

 

 

 

우리 민족이 이러한 길을 걸어왔구나, 정말 믿을 수 없어서 한숨이 나온다.

시대가 좋아서 세상에 빛을 본 것이 확실한 등나무집은 한국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나, 학생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을까? 발간이 2000 12월이고 초판2세가 2001 1월이라고 나와있으니, 출판하자마자 재 인쇄를 한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 절판이라고 나오니,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 된 것 같다.

 

성혜랑씨의 등나무집은 일제시대에서 남북이 나뉘게 되는 과정부터 현재까지 한 집안사와 더불어 꼼꼼히 기록했다. 우선 진솔한 인텔리 집안의 자녀로 그녀의 기록 모두는 그녀의 신념과 관찰, 그리고 생각을 엮은 것으로 거짓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러길 바란다)

 

어쩌면 일찍 한국을 떠나와서 성혜랑과 그녀의 동생 성혜림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 모른다.(뒷북을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할지도 모르겠다) 김정일의 연상의 숨겨진 여자였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씨가 이 글의 저자이다.

 

서울 출신이었던 신여성 김원주는 일제말 태동하던 두개의 이데올로기중에서 공산주의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주출신이었던 그녀의 남편 성유경도 재산을 모두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월북하여 북한 공산당의 시작부터 동참한 골수분자(?)들이다. 이 둘을 부모로 하여 태어난 성일기(맏오빠, 17살때 대남 유격대로 떠나 50여년간 생사를 몰랐다) 성혜랑, 혜림 남매는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체제안에서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커서 성혜림은 결혼했지만 김정일의 눈에 들어 이혼하고 김정일의 숨은 여자가 되고, 그녀의 언니와 엄마는 김정일의 울타리에서 음지의 사람들로 살아간다. 무려 20여년간. 그리고 성혜랑과 그녀의 딸은 북한을 탈출한다. 그 몇년후 성혜림은 죽고, 성혜림이 낳은 김정일의 큰 아들 김정남은 권력승계에서 밀려난 삶을 살고있는 것으로 서방세계에 비쳐지고 있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똑똑한 엄마덕에 이책의 저자 성혜랑도 김일성대학을 나온 인텔리여성이다.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된 공산주의자의 딸이어도 지주출신인 아버지 때문에 사상검증에서는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살얼음판같은 날들을 지내게 된다. 설상가상 그녀의 남편은 결혼후 얼마후 사고사를 당해, 홀로 아이들을 키우게 된다.

 

성혜랑씨에 의해 비쳐지는 북한은 체제모순을 이곳저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특별히 지도자급들의 사상투쟁, 계급투쟁은 그칠 줄 모른다. 다음의 글들은 책에서 뽑은 것이다. 북한 체제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수모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악착같은 고문과 회유를 이기고 옥고를 치르고 나온 남조선의 좌익투사들을 학대한 그 차별정책에는 스탈린식 계급정책 외에 뿌리깊은 파벌주의가 깔려있었다. 그때 평양의 중요간부는 모두 소련 출신이었다. 그들은 남반부 출신 전반에 대해 정치적으로 의심하고 계급적으로 증오했으며 문화적으로 질투하였다.(177)

 

나에게 그늘을 던진 것은 우리가정의 계급적 처지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리워한 새세상은 엄격하고 극단적이었다. 이래도 안되고 자래도 안되고 인간적 생활에는 모두 부르조아적이라는 말이 붙는 것 같았다.(178)

 

미소대립이 결정적이며 아시아 침략의 교두보인 조선반도, 이땅을 미국이 탐내어 북조선을 말살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덤벼드는 이 전쟁은 조국의 운명을 사수하고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철저히 교양되어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전쟁의 성격은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이 누구를 위해 진행되었는가에 따라서 규정된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설이 가르쳐졌고 공자의 말씀에도 있다는 것이 수령님의 기준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전쟁이 잘못 타산된 전쟁이며 민족의 앞날에 끼칠 그 전쟁의 후과를 너무 경솔히 무시한 수령의 오류를 그때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할수 있었으랴..(198)

 

전후 40년 대학생들은 의무적인 노력동원 적위대 훈련으로 몇달씩은 빼앗기고 그 결여를 보충할 기회없이 사회로 나온다. 100만 인텔리 대군이 지닌 이 엄중한 골다공증은 40년간 서서히 이 나라가 기울게 된 원인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258)

 

북조선의 모든 숙청은 그 내용이 오직 하나다. 이런저런 죄목이 나열되어도 핵심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 척도가 문제다. 때문에 누구나가 걸려들 수 있고, 이런 계기마다 미온분자, 즉 충성이 뜨겁지 못한 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265)

 

독재에 의해 기형화된 인간들, 그것은 무지, 비문화에서 광신적 이데올로기병에서 나온다. 지성, 문화, 교양, 인간성. 이것이 과거 잘산 것들의 장식물이라고 착각하는 일부 군중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반감을 품고있다.(296)

 

 

 

이런 체제에 대한 일례로 미술사학자 김용준의 자살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김용준은 지나간 신문을 버리는 과정에서 김일성초상화를 떼어내지 않고 버렸대서 비판을 받게 된다. 결국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는 도서정리 산업도 기록했는데, 이 또한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북한내에 있는 모든 책이 검열대상이었으며, 심지어 똑같은 책도 일일이 다 살펴서 체제에 반하는 내용은 뜯어내고, 칠하고, 딱지를 붙이곤 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김일성에 대한 실화만들기 조작도 빈번하게 이뤄졌으며 모든 예술활동도 그런 기준에 의해 재단되어졌다고 술회한다.

 

저자는 한번도 마음편할 날없이 일생을 노심초사하면서 보낸다. 김정일의 사랑을 받던 동생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의 개인교사로 성혜림의 집으로 들어온 그후로 그녀의 어머니와 자신의 아들과 딸은 김정일의 보호와 관찰 아래 지냈다. 그때 그녀는 김정일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김정일은 자신의 여자와 아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빨래비누부터 아이들 유학문제까지 일일이 통제했다. 모든 일에 김정일의 허가를 거쳐야했던 일상은 말그대로 김정일의 안색을 살피며 살아야 하는 눈치의 달인들이 되어야 했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녀의 어머니 김원주는 17살되던 아들을 무장군인으로 남한에 내려보낸후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았고, 공산주의자 이전에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성본능은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어도 고치기 힘들었다. 성혜랑 역시 아들과 딸의 장래와 안전에 대해 어미로서의 보호본능을 글 곳곳에서 대할 수 있다. 그렇게 지켜냈던 아들이 1982 9 28일 제네바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공중에 떠버린 그녀의 아들 일남이 때문에 그녀는 거의 제정신을 잃는다.

 

아들을 잃고 쓴 그녀의 기록은 어머니의 비장한 마음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성숙한 아름다운 한편의 글이 되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가 애타게 찼던 그녀의 아들 이일남은 한국에서는 귀순자가 되어 나중에 연락을 받게 된다. 그 이름 이한영, 그리고 아들과 전화연락이 되고도, 진실을 믿지 못하는 그녀는 아들이 타살당할때까지 한번도 아들 얼굴을 보지못하는 비극을 갖게 된다.

 

동생 성혜림도 혜랑이 탈북한 이후로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고, 북한에는 그녀가 정을 주었던 혜림의 큰아들 정남만이 있을뿐이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동물같은 본능으로 자신의 신변을 은폐하며 숨소리조차 크게 못쉬면서 사는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일상의 삶을 포기한 그녀가 한없이 안타깝다.

 

한국전쟁때 헤어졌던 오빠와도 모스크바에서 만남을 갖게 된다. 50년만의 만남인데, 글쓴이는 감동이 없다. 어던 음모가 북한에서든, 남한에서든 없나 눈을 치켜뜨고 생각한다.

 

 

몽이 오빠! 50년 동안 우리 가족의 전 생활을 지배했던 이름, 그가 살아서 이렇게 내 앞에 서 있는데 내 감정은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다. 할말도 없었다

내 앞에는 생소한, 큰소리로 떠드는 중늙은이가 앉아있었다. (중략) 나는 무슨 말을 했던지, 시시부시한 소리를 몇마디 했던 것 같다. 마음은 우주, 말은 거미발, 50년이란 세월끝에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어떤 의미도 한계를 넘은 감정은 마비된 채 멎어있었고.(513)

 

 

 

 

아들의 전화와 오빠와의 만남후, 그리고 공부하러 떠난 딸과의 관계 사이에서 저자는 최후의 결정을 해야 한다. 김정일이 마련해준 관저에서 죽을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보다는 아들이 있는 남한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 모르겠다.

 

제네바에서 탈출을 하고도 전화가 도청될까봐 아들과 마음놓고 통화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사이 아들은 보고싶은 어머니와의 재회도 하지 못하고 저격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아들이 죽었다는 기사조차 의심한다. 조작일거야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이모저모로 분석하기까지 한다.

 

그녀의 피해망상은 거의 병으로 보인다. 그녀가 겪어온 세월이 누구도 믿지못하고, 평상적인 일을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 가파랐고, 정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녀는 숨어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긴 장편의 수기를 펴낸 것이 대단하게 생각된다. 그녀의 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북한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남북전쟁이 휴전이 되고 분단이 고착화 된 것이 근 60여년이 되어간다.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느라, 뻣뻣한 차렷총 자세로 지난 60년간을 국민들을 긴장시켰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그 누구도 감히 물꼬를 잡을 수 없을 것만큼 체제가 틀어져있다.

 

자식을 지키고자 성혜랑씨는 그녀의 동생에게조차 말못하고 북한을 떠난다. 동생의 그늘 아래, 그래도 헐벗지 않고, 권력의 비호를 받았지만, 결국 그들을 배반할 수밖에 없는 한 여자의 고뇌를 읽게 된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이 성혜랑 그녀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인생의 최고목표가 되어있는 것 같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딸이 안전하게 잘 자라주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어미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자신은 평생을 그늘에서 살아도 된다고 최면을 걸고 있을 것 같다. 이 시대의 비극은 언제 끝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