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사이에 옅은 그림자가 있는 것같아서 안과에 갔다. 라식수술의 부작용인가 아니면 눈 한쪽에 백내장같은 것이 생겼나, 검사를 받았다. 젊은 남자의사는 눈에는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눈앞에 옅은그림자가 있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짐작하는 게 있긴 하다. 라식수술 하면서, 오른쪽눈은 책읽기용으로 고치고, 왼쪽눈은 일상생활용으로 고쳤다. 말하자면, 두눈이 심각한 짝짝이다. 그 두 눈사이의 불협화음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 같기는 하다. 눈에 이상이 없다니, 우선 다행이고, 불편한대로 내가 선택한 나의 눈에 적응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2년전 라식수술을 할때, 모두 잘보이는 눈수술을 하면, 책을 보려면 그날로 당장 돋보기를 껴야 한다고 했다. 안경을 쓰지 않으려고 비싼 라식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깨어있는 절반의 시간에 돋보기를 써야 한다는 것은 간신히 결심한 라식수술에 대한 회의를 가져온다. 그들이 제안한 대안이 모노 라식수술이다. 짝짝이눈 수술을 하려면, 일단 뇌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짝짝이 렌즈를 통해 검사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지럼증, 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고 들었다.
나는 렌즈 시험에 무사히 통과해서, 모노 라식수술을 받았지만, 완벽한 것은 없는 법, 이렇게 두 눈 사이에 옅은 구름이 낀 것같은 착시에 시달리고 있다. "그림자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는 책을 읽는 일에 불편을 겪지 않는 “책보기용” 눈이 있다는 것에 혼자 흐뭇해하곤 했다.
사실, 학자도 아니고 가정주부인 내가 책읽을 일이 얼마나 많다고 두눈을 짝짝이로 할 생각을 했나, 의아해 하는 주변인들도 많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역시나 교정이 필요해질 것이라 말하긴 했다. 그 시간을 연장해줄 뿐이라고. 어쨋든 나는 "활자"를 읽기 위해 그런 눈을 선택했다.
책은 내게 무엇인가. 각각 다른 색을 지닌 친구들이다. 인생이 심심할 사이가 없다. 읽을 거리가 곁에 있는한, 언제나 할일을 다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나름대로 “바쁜삶” 안에 나를 놓게 된다. 책이 우선이 될때도 있고, 책이 나중순위가 될때도 있는데, 그건 책의 흥미여부와 관계가 있다.
누구에게나 책의 선호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책”이라는 단어는 80% 이상은 문학서적을 뜻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사진, 요리, 건강에 관한 책들이다.
대학 졸업반때 첫 직장이 문학잡지 만드는 곳이었고, 짧은 시간 이후에 해고를 당한 뒤에, 다시 취직한 곳도 출판사쪽이었다. 책이 책으로 되기전에 원고 한자한자를 읽어내고, 틀린 것을 잡아내는 작업은 정말 “오감”이 즐거운 환상적인 일이었다. 책과 끈끈한 정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젊은 시절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활자가 맥을 못추는 북미에 떨어졌다.
외국에 나오고나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한국 대형서점의 풍경이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읽던 서점의 통로에서 피어오르던 종이에 섞인 젊은이들의 훈김냄새, 서점에서 만나기로 한 “녀석”을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신간코너에서 나를 쏘아보는 듯한 편집자의 예리한 눈과, 교정지를 들고 인쇄소를 왔다갔다하는 내 모습이기도 했던 책 만드는 사람들의 마른 발걸음까지.. 그래서 이곳에서 도서대여점을 하기도 했다. 외국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한국책을 쥐어주고 싶었다. 대여점은 2년만에 망했다. 굳이 원인을 꼽자면 책은 빌려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나마 빌려보는 사람들조차 많지 않았었다.
대여점 실패가 원인이었을까? 그뒤로 책과 담을 쌓았다. 시골로 이사와서, 장사꾼으로, 아이들 키우는 애기엄마로 있는 동안, 책은 현실에서 없어도 되는 물건이었다. 그러면서, 책읽는 것에 대한 비판도 은근슬쩍 하기도 했다. “책읽기는 참 게으른 사람들의 습관이야. 글쓰는 사람들의 흐미하고, 안개낀 것같은 태도를 참아낼 수 없어” 등등의 말을 내질렀다.
현실에 코박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무척 긍정적으로 생각되기도 했을 것이다. 열심은 “돈”이라는 “경제의 권력”을 몰고왔으니까.
몇년이 지나고, 무언가 내삶을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인터넷의 작은 게시판에 내 이야기를 쓰면서, 활자와 멀어졌던 삶이 활자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끄적이고, 읽는 삶과 멀리 할 수 있었는지.
한국문자를 보지 않던 시절에 했던 것이 있다. 여기 활자를 읽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가게를 지킬때면, 신문부터, 잡지까지 해석이 잘 되지 않는 것들이었지만, 자꾸 집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책읽는 자는 어떤 것도 할수 있다”고 말이다. 기술이 부족하면, 기술을 가르쳐주는 책을 보면 되고,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그 분야의 건강서적을 들여다보면 된다. 외국생활에서 외국어가 중요하다면, 책을 읽는 자들은 그것을 따라잡는데, 남들보다 그 길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우선 활자에 대한 친근감과 이해력이 그런 것들을 가능케 해준다고 믿는다.
최근에 읽은 책
옆마을의 시인 언니가 빌려준 세권의 책읽기를 마쳤다. 전경린 소설집 “물의 정거장”,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밤범신 연작소설 “빈방”이 그것이다.
이 3권은 책읽기를 “우선순위”에 두게 하는 깊은 흡인력이 있었다.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과 교제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우선 신경숙 작가에게 사과를 해야만 한다. 나는 그녀의 글 “외딴방”을 읽고 혹평을 한적이 있다. 그녀의 문체가 늘어지면서 낑낑대는 것을 봐줄 수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때 나는 생활의 “전사”로 확실하지 않은 것은 모두 단죄의 칼로 내려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엄마를 부탁해” 소설은 참 평이한 단어들로 이뤄진 점이 눈길을 끌었다. 평이한 언어들의 조합이었는데, 전연 다른 색감과 질감의 글이 나왔다. 특별히 소설속의 화자를 “너”로 표현한 것은, 이 책의 수준을 한꺼번에 몇계단 비상하게 하는 것 같았다. 문학은 낯설게하기라고 말들 하지 않는가. 내 책이었다면, “엇! ‘나’가 ‘너’로 오자가 났네”하면서 볼펜으로 빨갛게 줄칠뻔 했다. 나를 객관화해서 ‘너’로 볼수 있는 신경숙 작가, 새롭게 친해보고 싶다.
전경린 작가는 참으로 예민한 작가이다. 십대 소녀였다면, 불량소설을 읽는 맘으로 이불속에서 가슴졸이며 읽을 법한, 감각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많다. 전경린 작가는, 작가일 수밖에 없는, 남들이 흉내내지 못할 표현법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중년 아줌마”의 입장으로 보면, 현실을 뒤흔들려는 전경린 작가가 위험하고, 불손해 보이지만, 그런 것이 인간세상인 것을 그녀를 통해 배운다.
박범신 작가는 연예인식으로 말하면 “영원한 오빠”가 맞다. 그는 늙어가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인간성을 알것만 같은 그의 소설들이다. 그는 “상상하고 또 사실적으로 느끼거니와 내 몸안에 늙지 않는 예민하고 포악한 어떤 짐승이 살고 있다. 그놈은 날카롭고 긴 가시발톱을 수없이 갖고 있어서 내가 쓰지 않으면 생살을 찢고 나오려고 지랄발광을 하니 쓸 수밖에 없다”고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책은 이런 고백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들이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밖으로 품어낼 수밖에 없는 마음의 아우성을 우리는 아주 작은 “값”을 치르고 공유할 수 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문맹자이다. 그녀는 작중 소설가로 나오는 딸의 작품을 읽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그 대목은 “The Reader”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우리 엄마도 늙어서야 한글을 떼셨다. 아주 쉬운 책 없니, 예전에 엄마가 물어오셨다. 내게는 쉬운책으로 생각되는것을 갖다줬는데, 아마도 읽지 못하신 것 같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가 재미있으시다고 하셨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속 엄마나 우리 엄마처럼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외국에 나와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 다양한 책을 접하지 못한다. 그리고 물건너 온 물건이니, 가격은 원가의 2배가 넘는다. 또한 책을 읽기 위해선 눈이 자유로와야 한다. 노안이 심해지면, 책 읽기가 불편해진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있음을 감사하며 책장을 열어야 할것이다. 누굴 위해서? 바로 나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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