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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뉴욕에서 마음의 균형을 잃다

어디서 읽었던가?

영화를 보는 그 자체보다, 영화표를 예매하고 그 시간에 맞춰 갈때까지의 그 설레임이 사실은 영화표로 인한 행복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는.

 

그렇게 말한다면, 여행도 그럴 수 있다.

어디로 갈까, 어떤 방법으로, 누구와 갈까 요리저리 궁리하는 것이, 실상 여행 전체를 통해 절반의 기쁨을 차지하는 것도 같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다 모였고, 애들을 위해 무언가 해준다는 "부모의 잘난 마음"이 한켠에 있었다.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 가게 헬퍼가 이제는 한명이니, 그녀 혼자 가게를 책임지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연말인지라, 다른 가게들의 오픈 시간도 들쑥날쑥했다. 하룻밤 정도 여행은 가능할 것처럼 생각됐다. 너무 멀지 않은 곳, 겨울여행으로 쌈박한 곳이 그렇게 쉽게 눈앞에 드러날 리 없다. 헌츠빌에 있는 스파가 있는 리조트가 유혹한다. 헌츠빌까지 6시간 정도 가서, 호텔에서 하루 자고 오는 것은 참 싱거울 것 같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가까운 곳을 찾았더니, 오웬사운드에도 호텔겸 스파가 있다. 오웬사운드는 집에서 한시간 조금 더 걸린다. 왜 집놔두고 그곳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온단 말인가? 그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하룻밤 여행에서 뉴욕으로 갑자기 변경하게 된 것은 고민하던 그때쯤 읽은 한국신문의 영향이 컸다. 버스여행 목록를 나열해놓은 광고를 보니, 이렇게 하면 되겠군,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다. 내가 계획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다 계획해놓은 일정표대로 따라 움직여주기만 하면 되는... 참으로 쉬운 여행방법이 나를 꼬시고 있었다. 나는 3년전 자매들과 뉴욕여행을 했었다. 남편은 그전에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어 흥미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뉴욕여행을 제안했더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2박3일간 가게문을 일찍 닫기로 했다. 헬퍼가 한명으로 줄어드니, 온가족이 움직이는 게 점점 어렵게 되어간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점은 첫날 뉴욕가는 차안에서 절친(?) 이웃 백선생님 내외를 만난 것이다. 그분들은 친구부부와 함께 자동차로 뉴욕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버스떠나기 하루전날 예약했다 하였다. 너무 반가왔다. 우리 7명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타임스퀘어 고생담을 적나라하게 적고보니, 뉴욕에 만정이 떨어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뉴욕여행 가이드는 뉴욕만큼 "생생"하며 "흥미진진"한 도시도 없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없는 게 없는 도시라나.  뉴요커를 상징하는 세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손에 스타벅스 커피컵을 들고 있고, 둘째는 고디바 초코렛을 먹으며, 셋째는 애인에게 티파니 반지를 선물하는 것이란다. 고디바 초코렛은 "포레스트 검프"에도 나온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뉴요커를 부러워해야 할 이유가 그 세가지 중에는 없다. 

 

 

 

우리집의 세 아이들.. 어느새 많이도 컸다.

 

뉴욕 맨하턴은 고층빌딩들의 숲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르는 옵션관광과, 록펠러 센터 타워에 오르는 옵션관광이 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한번 올라가 봤던 경험이 있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뉴욕 전경을 팔아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도 복잡다단했다.. 뉴욕은 모든게 "돈"과 연결된다.  잘 차려놓은 명품가앞에 싸구려 노점상도 있다. 관광객들의 주머니는 쉽게 열려질 수밖에 없다. 명품들이 몰려있는 5번가에는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 흐른다. 

 

우리는 Forever 21이란 샵에 들렸다. 한국사람이 만든 브랜드가 맨하턴 명품거리에서 사람들을 끈다. 들어가는 것조차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포에버 21은 지난 6월 개장했단다. 1층 매장만 둘러봤지만, 산뜻한 진열이 돋보였다. 그리고 "친절한" 가격. 스웨터 하나에 기백불 하는 것도 보았는데, 이곳 제품들은 싼것은 10달러 짜리들도 있다. 둘째는 스커트 한장을 샀다.

 

그 길로 쭉 내려가니, 큰애가 좋아하는 "애플" 매장이 있다. 베어문 애플이 그들의 상징이다. 사과가 "그들의 수호신"인양 유리벽안에 높이 매달아놓았다. 애플 스토아앞에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서있다. 그 안에 들어가니, 빨간 옷을 입은 직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맨하턴 거리에서의 "거래수치"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 비싼 땅에 매장을 냈다는 것은, 그만큼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맨하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백선생님 내외와 다른 일정을 만들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 의 여신상을 보러가기 위해 배타는 곳.. 맨하턴에 붙어있다. 뉴욕 워터 택시라고 쓰여진 노란 배가 인상적이었다. 뉴 욕에서 운행되는 물택시.. 역시 뉴욕은 뭔가 다르긴 달라.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길을 끈다. 대형 전구가 전시된 어느 건물앞. 물도 잔잔히 흐른다.

 

 

한 건물을 포장하여 놓았다.

 

 

월 스트릿에서 포즈를 취한 아이들.

 

 

백선생님 내외는 뉴욕에 오게 된 절반의 이유는 "횟집"을 가보려는 것이었던 듯싶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횟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플러싱에 있는 횟집 제주도를 수색해놓고 계셨다. 여행온 기분으로 우리도 횟집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플러싱까지 가려고 한인택시를 불렀다. 오고갈적 한인택시를 탔는데, 참으로 묘했던 것은 네트웍으로 택시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택시캡을 지붕에 달지 않아서 일반 차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뉴욕은 한인들의 상권이 한인식대로 조직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값도 흥정해야 했다. 그러나 큰 "바가지"는 없었고, 차도 고급차였다. 플러싱은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으로 이곳 사람들은 "플러동"이라 부른다고 택시 기사는 말했다.

 

플러싱에 있는 제주도 횟집은 스시바에 대여섯명의 "칼잡이(?)"가 있는 대형 식당이었다. 소박한 음식만 먹어왔던 우리 가족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였다. 7명중 큰딸은 생선을 먹지 않으니, 6명이 먹기에 좀 과하다 싶을 것같은 200달러짜리 모듬회를 시켰다. 우리 아이들은 정식 스시가 나오기전에 애피타이저로 나온 음식도 너무 많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나중에 큰 한판의 회가 나왔는데, 그 푸짐함 때문에 모두가 놀라워한 몇분의 시간이 흐른뒤, 내 맞은편에 앉았던 둘째의 얼굴색이 하얘져간다. 그애쪽에 놓여있던 가재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몸통의 살은 파여서 횟감으로 올라와있고, 머리와 팔,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그 모양을 처음본 그애는, 거의 죽음 직전이었다. 잘게 썰어놓은 낙지가 꿈틀거리는 건, 숫제 애교스럽다.

 

 

 

이런 회가 나왔던 것이었다!! ㅎㅎ

 

 

그렇잖아도, 채식주의자면서, 동물애호가인 그녀의 눈에는 살아있는 생물이 인간들의 식탁에 올라온 것이 거의 충격을 넘어선 것이었다. 사실 우리들이 먹는 음식은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걸 눈으로 확인해야 했던 것은, 그애에게 가혹한 일이었던 듯 싶다.

 

우리보다 일찍 수저를 놓은 아이들에게 밖에 나가서 공기를 쐬고 오라 일렀다.

 

그제서 어른 넷은 그동안 못먹었던 싱싱한 회를 맛보며, 회포를 풀수 있었다. 회에 관한한 전문가가 아니어서 다 읊을수는 없지만, 싱싱함으로 그 맛이 고소했던, 광어, 소라, 참치, 멍게, 해삼, 우럭, 게 등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마직막에는 팔 다리를 움직이던 게를 끓여내온 매운탕으로 입가심을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제주도 횟집앞에서 삽으로 눈을 퍼내는 남미계통의 사람을 볼 수 있있다. 우리가 뉴욕을 방문하기 며칠전 폭설이 내려서 도시 곳곳이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던데, 그 아저씨는 눈을 퍼서 찻길에 내던지고 있었다. 내 집앞에 있는 눈을 차들의 통행이 잦은 길에 뿌리는 것이, "도덕적인 캐나다 시골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만 보인다.

 

오고갈적 가이드는 참으로 많은 말을 들려줬다. 캐나다의 역사부터, 미국의 근현대사를 다 훑었다고 할까? 그중에는 야사에 가까운 것도 있어서, 진실여부 때문에 적지 못하겠다. 대학시절에 배운 것이라곤 벽돌깨는 실력밖에 없다던 가이드는 386세대인가 보다. 911도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데 무게를 두는 말을 했으며, 미국의 달착륙도 조작된 것으로 말할 정도였다. 그중 록펠러 가의 부정부패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도 수긍이 갔다. 현재 쌍둥이 빌딩 자리에 다시 빌딩을 짓고 있는데, 그 빌딩도 록펠러 재단의 것이란다.

 

 

911 추모 조형물. 처참하게 무너졌던 그 당시를 상상하기엔 깨진 조형물이 너무 멀쩡하게 보인다.

 

 

 

그라운드 제로... 911으로 함몰된 쌍둥이 빌딩 자리에 다시 세워지고 있는 빌딩.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한편을 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리 티켓팅을 했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1인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티켓값이 부담되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싼값에 살수도 있을 거라는 말에 의지했다. 그러나 시간도 없었고, 그렇게 쉽게 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뮤지컬이 그저 그랬다면, 또한편의 후회스토리를 썼을 것이다. 쇼핑이든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든지, 충분히 지출할 마음도 능력도 없으니, 뉴욕을 즐기기엔 자격이 모자랐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불균형"이었다. 맨하턴에 잘 차려진 화려한 숍에선 내가 궁색한 느낌이 들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극과 극 안에 있는 여행자 자신을 느끼게 된다. 위화감과 오만함 사이의 감정에서 왔다갔다 한다. 서브웨이를 타고 기차를 갈아탔으면 고생을 덜 했으련만, 지도상으로 너무 가깝게 보여 내처 기차역까지 걸었던 것, 결국 서브웨이 값 2달러 50센트가 아까와 걸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데서 필요없는 지출을 하면서, 정작 필요할때는 작은 돈도 아깝게 느껴지는... 모두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새벽 뉴욕거리를 헤맸던 것도 마음의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돈계산을 안했겠는가? 뉴욕 버스여행은 가격면에서는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같은 값으로 부모된 입장으로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고 먹을곳, 잘곳, 갈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속편한 일인가?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조금 더 고민했어야 했고, 발견해내는 기쁨들을 무시하지 않았어야 했다. 한동안, 버스여행은 안하게 될 것 같다. 여행을 한번 떠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실패하는 여행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래도 새벽에 무사히 호텔에 돌아오게 된것, 자신의 아이들에게 타임스퀘어를 보여주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된 것, 좋은 자켓과 부츠를 산 것 등등을 이번 여행의 성과로 꼽았다. 지도자(부모)의 역할이 너무 중요한데,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원래 까다롭기가 하늘을 찌르는 나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넉넉함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돈이 없다고, 물건에 욕심을 내지 않은 일, 4명이 쓰는 호텔방에 5명이 입실했는데(돈절약 때문에) 이틀 다 군말없이 바닥에서 잠잔일, 타임스퀘어에서의 고생도, "그럴 수 있는 일"로 너그럽게 넘어가 준 것 등등. 아이들은 몇번씩 바뀌면서 크는가 보다..